시와 음악 723

삼월 /박서영(1968~2018)/ 이해우 해설

삼월 /박서영(1968~2018) 꽃잎들은 긴 바닥과 찰나의 허공이라는 계절을 지나는 중이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왜 그리 짧게 살다 떠나는지. 변하고 돌아서는지. 무덤 속에서 튀어 올라오는 사랑과 입맞춤을 한다. 나는 북쪽에 살아. 피부는 들판의 풀들처럼 자라면서 늙어가고, 가끔은 잠적하지. 그리곤 튀어오르지. 무덤 위에 피는 꽃처럼 잠시 아름다워지기도 해. 생일(生日)과 기일(忌日)이여. 점점 더 멀어져라. 나의 울음과 너의 울음이 다르다. 저녁과 아침 사이 밤이여. 점점 더 캄캄해져라. 나는 남쪽에도 살고 북쪽에도 산다. 꽃 피고 지고. 밤하늘이 바닥까지 내려와 있다. 바닥에 흐르는 은하수. 바닥의 애벌레좌. 얼룩진 한쪽 벽 구석의 거미 좌. 이젠 천천히 기어 너에게 간다. 길의 점막에 달라붙은 꽃..

시와 음악 2023.12.28

헌화가 /신달자 / 해설 이해우

헌화가 /신달자 사랑하느냐고 한마디 던져놓고 천길벼랑을 기어오른다 오르면 오를수록 높아지는 아스라한 절벽 그 끝에 너의 응답이 숨어 핀다는 꽃 그 황홀을 찾아 목숨을 주어야 손이 닿는다는 도도한 성역 나 오로지 번뜩이는 소멸의 집중으로 다가가려 하네 육신을 풀어풀어 한 올 회오리로 솟아올라 하늘도 아찔하여 눈감아버리는 깜깜한 순간 나 시퍼렇게 살아나는 눈맞춤으로 그 꽃을 꺾어드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신달자의 시다. 첫 연의 '사랑하느냐'라고 던진 말은 질문이다. 그는 답을 기다리지 않고 절벽을 오른다. 왜냐하면 그 질문은 누구에게 물은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했던 물음이다. 속으로 자신이 대답을 했으니 기다릴 이유가 없다.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는 목숨을 건 것이다. 사랑은 받으려면 먼저 사랑을 주어야..

시와 음악 2023.12.26

함박눈 산책 /이해우

함박눈 산책 /이해우 1. 밤새도록 눈이 왔고 세상은 백색이다 세상이 바뀐 게 아닌 걸 알면서도 잠시의 허상이지만 나는 몰입했었다 2. 어제의 세상일랑 당분간 잊어보자 오랜만의 미답지를 천천히 걸어가면 조심한 발자국들이 행진하듯 따라온다 3. 내 生의 日記같은 수많은 자국들아 누군가의 발자국에 덮이고 지워졌지만 지금 난 앞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힌다

시와 음악 2023.12.26

소풍 /홍성란

소풍 /홍성란 여기서 저만치가 인생이다 저만치, 비탈 아래 가는 버스 멀리 환한 복사꽃 꽃 두고 아무렇지 않게 곁에 자는 봉분 하나 //천상병 시인의 소풍이 죽어 가는 소풍이라면, 홍성란 시인의 소풍은 우리의 삶이다. '어디로 소풍을 가는가'는 '어디로 삶을 끌고 가는가'란 질문이다. 시인은 그곳을 '멀리 환한 복사꽃'으로 은유를 하였다. 하지만 그 복사꽃에 도달했지만 그는 그것과 상관이 없는 '봉분 하나'로 남는다. 죽으면 그토록 바라던 것이 결국은 무용한 것이라는 은유다. - 이해우

시와 음악 2023.12.23

숲속에서 / 성지민

숲속에서 / 성지민 숲속 나무사이 마른 풀잎을 밟을때면 지난날의 그리움을 주체할수없어 나는 한없이 방황을하게된다 지다남은 잎새는 쓸쓸히 가지에서 떨고 내 마음은 더욱더 외로움이 깊어만간다 나를 찾기위해 들판을 헤매며 다녀도 보이지않는 자연의 숨소리만 들려올뿐 다정한 그 목소리는 바람결에 사라지고 세월이 지나간 자리엔 이름모를 꽃들만 피어있네

시와 음악 2023.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