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725

겨울 초입 까마귀 떼

[세상은 신비] /신평 겨울 초입 까마귀 떼 먼 나라 날아와 하늘 덮는다 그들이 지상에 뿌리는 가늠하기 힘든 생의 의지 겨울이 가고 내년 봄 아스라이 아지랑이 피어오르면 연못 고기들 몸 풀어 알을 낳고 물 위에 떠오르는 비릿한 기름 응축된 생의 환희는 무언의 힘으로 풀려나간다 세상은 끊임없이 진동하며 신비의 잔상을 남기는 것이니 그냥 가슴에 넣은 채 무릎을 꿇고 경건한 기도 드린다 아득한 높이 기쁨의 파도에 올라타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덧: 경주, 울산지역에는 늦은 가을부터 엄청난 까마귀 떼가 날아와 겨울을 납니다. 나무에 매달린 감 같은 것을 배고픈 그들이 깨끗이 다 먹어버립니다. 저희집 옆 전깃줄 위에도 빼곡히 앉아있군요. 그런데 우주가 왜 생겼을까요? 이에 관해 현재의 과학 수준에서 세 가지 가설을..

시와 음악 2023.12.07

인생 연기/이해우

인생 연기 /이해우 꿈꾸다 깨어났던 복잡한 이 세상은 누군가 날 위해 쓴 리얼한 연극이다 치열히 연기했더니 한 場이 끝나 가 선무당 칼춤 추듯 어설펐던 발연기들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내 역을 사랑했어 쉬운 역 아니었지만 어려워서 더 좋았어 아침에 눈을 뜨면 대본을 생각하지 앞으로 몇 場이나 나에게 남았을까? 인생을 연기하는 건 알아? 내겐 영광이야

시와 음악 2023.12.07

ㆍ먼길 /목필균 (1946-)

먼길 /목필균 (1946-) 내가 갈 길 이리 멀 줄 몰랐네 길마다 매복된 아픔이 있어 옹이진 상처로도 가야할 길 가는 길이 어떨지는 물을 수도 없고, 답하지도 않는 녹록지 않는 세상살이 누구나 아득히 먼 길 가네 낯설게 만나는 풍경들 큰 길 벗어나 오솔길도 걷고 물길이 있어 다리 건너고 먼 길 가네 누구라도 먼 길 가네 때로는 낯설게 만나서 때로는 잡았던 손놓고 눈물 흘리네 그리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미소짓기도 하며 그렇게 간다네 누구라도 먼 길 가네 돌아설 수 없는 길가네 //길이란 단어는 시에서 인생을 은유하는 대표적 단어다. 일본 센고쿠와 에도 시대의 무장이며 정치가 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가는 것이라 말했다. 물론 이 시의 '먼길'도 인생의 은유이다. -..

시와 음악 2023.12.06

윤사월(閏四月) /박목월

윤사월(閏四月) /박목월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이 시의 전제로 깔린 송화가루와 윤사월과 꾀꼬리, 그리고 '눈 먼 처녀'의 은유가 무엇인지를 알면 이 시가 이해가 된다. 송화가루는 소나무의 꽃가루인데, 보통 곤충에 의해 수분을 하는 여타 식물과 딸리 소나무는 바람에 꽃가루를 날리는 풍매화다. 일반적인 사랑법이 아닌 힘든 사랑법이지만 봄이 되니 사랑을 퍼뜨린다. '외딴 봉우리'라는 단어에서 우린 즉각 산 높은 곳의 외로운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눈 먼 처자가 살고 있다. 윤사월은 무엇인가? 농자들의 역법인 윤사월은 윤달이 4월에 들은 달을 말한다. 다시 말해 한 달이 더 늘어난..

시와 음악 2023.12.05

누나에게/오구마 히데오(권택명 역)

누나에게 /오구마 히데오(권택명 역) 아카시아 꽃향기가, 물씬 높다랗게 바람에 떠도는 곳에—, 우리 누나는 불행한 남동생의 일을 생각하고 있겠지요 술에 취해 날뛰던 절제하지 못하던 남동생은 지금 꼿꼿하게 몸이 야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남동생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생이란 게 얼마나 인간을 강하게 하는 것인가를. 나는 슬퍼한다는 걸 잊어버렸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가장 슬프게 하고, 그것이야말로, 나를 가장 용감하게 합니다 내가 몇 번이나 도시로 뛰쳐나갔다가 몇 번이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누님, 당신이 밤새 울면서 충고를 해준 것이 똑똑히 눈앞에 떠오릅니다, — 얘는 어째서 그토록 도쿄(東京)로 나가고 싶어 하는 걸까, 남동생은 조용히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운명이란, 나에게 지금은 손 안..

시와 음악 2023.12.04

[가을의 끝]

[가을의 끝] /신평 가을이면 다 가을일쏘냐 가을다워야 가을이지 나무 이파리들 예쁜 단풍물 못들이면 가을이라 할 수 없지 사랑하는 이 간다고 해서 가게 놔두면 그것이 어찌 사랑이냐 사랑하는 이 제 갈 길 가게 놔두면 뒷자취에 한 떨기 꽃이 피지 그 꽃 바라보며 한세상 환하게 사는 거야 가을이 가을답지 않아도 어느 날 슬쩍 왔다가 남모르게 가는 것이 가을이니 가고 싶어 가는 가을 어찌하리 덧: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데도 경주 남산은 푸르름을 잃지 않는군요. 소나무 숲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겨울이 되면 이곳의 낮은 소나무들이 눈을 이고 감당치 못해 가지가 뚝, 뚝 부러지지요. 그 소리를 들으며 산언저리를 쏘다니는 풍취가 대단히 맑습니다.

시와 음악 2023.12.04

초혼

초혼 /김소월(金素月) (1902~1934)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어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려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金素月 詩人의 가슴 아픈 첫사랑이 담긴 詩 '초혼'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을 비롯하여 산유화, 금잔디, 엄마야 누나..

시와 음악 2023.12.01

이영애 시인

🍂 높아질수록 뿌리와는 멀어져 하늘만 바라보며 자라던 나무가 성장을멈추는 순간이 있어 계속 자라하늘에 닿는다면 뿌리와는 멀어져 양분이 고갈되지 스스로 성장을 멈추는 지혜를 우리는 나무에게서 배워야 함이야 숲에 사는 나무들은 서로간의 약속을저버리지 않거든 서로 자라겠다 경쟁을 한다면 공존을위한 동맹은 깨지고 말거야 경쟁이 난무한 인간은 멈추는 법을 몰라 더불어 살기를 포기하지 우듬지가 필요 함이요 스스로 소멸 할줄 아는지혜를 나무 에게서 배워야 함이야 나이가 든다는건 덜 경쟁하고 덜 벌고 덜 쓰면 되는것을 나에게 필요한 햇빛만큼의 하늘만 있으면 되지 않겠어 우듬지가 사라진다고 길을 잃거나 방황하지 않을 테니까 나이가 들수록 우듬지보다는 틈이 더 필요할거 같다는 생각 🍁🍂

시와 음악 2023.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