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723

밥풀 /이기인/ 이해우 해설

밥풀 /이기인 오늘 밥풀은 수저에서 떨어지지 않네 오늘 밥풀은 그릇에서 떨어지지 않네 오늘 밥그릇엔 초저녁 별을 빠뜨린 듯 먹어도 먹어도 비워지지 않는 환한 밥풀이 하나 있네 밥을 앞에 놓은 마음이 누룽지처럼 눌러앉네 떨그럭떨그럭 간장종지만한 슬픔이 울고 또 우네 수저에 머물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이 저녁의 어둠 이 저녁의 아픈 모서리에 밥풀이 하나 있네 눈물처럼 마르고 싶은 밥풀이 하나 있네 가슴을 문지르다 문지르다 마른 밥풀이 하나 있네 저 혼자 울다 웅크린 밥풀이 하나 있네 //어떻게 살 것인가? 골라서 살 수 있는 그런 삶은 없는 것일까? 없다. 한 수저의 밥을 벌기 위해 우린 모든 경우의 수와 싸우고 이겨야 한다. 정의로운 싸움도 있었겠지만, 비열하게 이긴 싸움도 있고, 처절하게 패배한 경험도 ..

시와 음악 2024.01.11

눈썹달 /신달자

눈썹달 /신달자 어느 한(恨) 많은 여자의 눈썹 하나 다시 무슨 일로 흰기러기로 떠오르나 육신은 허물어져 물로 흘러 어느 뿌리로 스며들어 완연 흔적 없을 때 일생 눈물 가깝던 눈썹 하나 영영 썩지 못하고 저렇듯 날카롭게 겨울 하늘을 걸리는가 서릿발 묻은 장도(粧刀) 같구나 한이 진하면 죽음을 넘어 눈썹 하나로도 세상을 내려다보며 그 누구도 못 풀 물음표 하나를 하늘 높이에서 떨구고 마는 내 어머니 짜디짠 눈물 그림자 //눈썹달은 초승달이나 그믐달을 표현한 단어이고, 이 시에서는 어머니의 한을 은유한다. 시인은 달을 보며 恨 많은 생을 살으셨던 어머니를 생각하였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차가운 칼처럼 보이는 초승달에서 그녀가 짐작한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이런 시는 어떻게 쓰이는 것일까? 삶의 경험에..

시와 음악 2024.01.10

민들레꽃 /조지훈(趙芝薰)/이해우 해설

민들레꽃 /조지훈(趙芝薰) 까닭 없이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 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 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외로움은(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라고 덴마크 출신의 철학가 키에르 케고르가 말했다. 놀라운 사실이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서로를 떼어날 수 없는 현실에도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외로움은 마음이 소통이 없을 때 온다. 시인은 그 외로움에 빠졌을 때 민들레에서 위로를 받았다. 아마도 시인의 외로움은 사랑하는 이가 ..

시와 음악 2024.01.08

석양/ 이영애

하늘을 유혹하는 석양의 너울 자락이 색색이 수평선에 조명을 켠다 검붉은 윤슬에 취해 춤을 청하는 너른 창공에는 바람 소리마저 우아한 곡선을 긋고 리드미컬하게 이끌어 간다 현란한 춤사위로 온몸을 휘감아 도는 석양의 거친 숨소리 뜨거운 체취로 감정을 사로잡고 한순간 터지는 시선마저 황홀한 몸짓 바람을 타고 넘는 밤의 열기에 동화되어 간다.

시와 음악 2024.01.06

행복(幸福) /유치환(柳致環)

행복(幸福) /유치환(柳致環)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시인..

시와 음악 2024.01.06

새벽의 기도]

[새벽의 기도] /신평 여명이 퍼지기 전 짙은 어둠 마음의 불 밝히고 살펴본다 곳곳에 어지러이 낙엽처럼 쌓인 후회들 한쪽에 치워놓고 기도를 올린다 스쳐 가는 남의 눈빛이라도 가슴에 포근히 안을 수 있는 사람 극단의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고 중간 길 묵묵히 걷는 사람이 되고 못난 내 등 더 구부려 자식들 쉽게 타고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한 마음의 칼로 어둠을 베며 기도한다 미망과 집착에 허우적거리며 후회의 낙엽들을 쌓아나가지만 저 깊이 흐르는 모든 때 벗겨주는 맑은 강물 주님이 여시는 그 물길 바라보며 하루를 여는 기도 올린다 . 덧: 먼 곳에 있는 큰 딸을 뺀 나머지 가족들이 남해로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더 없이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보리암’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시와 음악 2024.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