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밥풀 /이기인/ 이해우 해설

양곡(陽谷) 2024. 1. 11. 10:36

밥풀
/이기인

오늘 밥풀은 수저에서 떨어지지 않네
오늘 밥풀은 그릇에서 떨어지지 않네
오늘 밥그릇엔 초저녁 별을 빠뜨린 듯
먹어도 먹어도 비워지지 않는 환한 밥풀이 하나 있네
밥을 앞에 놓은 마음이 누룽지처럼 눌러앉네
떨그럭떨그럭 간장종지만한 슬픔이 울고 또 우네
수저에 머물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이 저녁의 어둠
이 저녁의 아픈 모서리에 밥풀이 하나 있네
눈물처럼 마르고 싶은 밥풀이 하나 있네
가슴을 문지르다 문지르다 마른 밥풀이 하나 있네
저 혼자 울다 웅크린 밥풀이 하나 있네

//어떻게 살 것인가? 골라서 살 수 있는 그런 삶은 없는 것일까? 없다. 한 수저의 밥을 벌기 위해 우린 모든 경우의 수와 싸우고 이겨야 한다. 정의로운 싸움도 있었겠지만, 비열하게 이긴 싸움도 있고, 처절하게 패배한 경험도 있다. 시인은 수저에서 떨어지지 않는, 목구멍으로 넘어가길 거부하는 밥풀을 본다. 아프다. 아마도 그 밥풀은 누군가의 뒤통수를 쳐서 빼앗은 것일 수도 있고, 자존심을 다 버리고 굽신거려서 얻은 밥풀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 밥풀에 비열하거나, 억울하게 소외되었던 지난 날의 자신이 떠오르는 것이다. - 이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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