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이별離別에게/김현승

양곡(陽谷) 2024. 1. 13. 12:01
이별離別에게
/김현승
지우심으로
지우심으로
그 얼굴 아로새겨 놓으실 줄이야……
흩으심으로
꽃잎처럼 우릴 흩으심으로
열매 맺게 하실 줄이야……
비우심으로
비우심으로
비인 도가니 나의 마음을 울리실 줄이야……
사라져
오오,
영원永遠을 세우실 줄이야……
어둠 속에
어둠 속에
보석들의 광채를 길이 담아 두시는
밤과 같은 당신은, 오오, 누구이오니까!
//이 시는 좀 어려운 시다. 제목이 '이별에게'이니 이별이 이 시의 주인공이 분명하다. '이별'이란 단어에 '에게'를 붙여 의인화하였다. 그는 누구일까? '지우심으로', '흩으심으로' 그리고 '비우심으로'라는 존댓말을 썼다. '비인 도가니 나의 마음을 울리실 줄이야'란 귀절에서 우린 그가 나를 주관하는 절대 존재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떠난 이의 기억을 지우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잊지말라고 새기신 것이다. 흩어지게 한 줄 알았는데 거기에서 열매가 나온다. 열매란 성숙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날 비우시게 하였다. 뭘 비웠을까? 미움과 원망, 애증과 그리움이 아닐까? 이젠 이별의 추억마저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어둠 속에 보석들의 광채를 길이 담아 두시는'이란 귀절이 답이다. 끝으로 시중화자는 질문한다. 도대체 이런 이별을 주관한 당신은 누구냐고? '오오, 누구이오니까!'란 구절은 신앙적 우상을 은유한 것이다. 시인은 기독교인이었으리라 짐작된다. - 이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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