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721

가을교제交際 /정 순 영 시인

가을교제交際 정 순 영 녹음으로 방자放恣하던 여름에게 안쓰러운 마음이듯이 낙엽 휘몰리는 거리에서 우리 서로 눈물 젖은 가슴을 내어주자 흙으로 만들어 주신 몸에 생명의 입김이 잠시 잠깐이면 떠나리니 골고다 언덕의 나무십자가에서 흘러내리는 선홍의 사랑으로 인생의 죄를 하얗게 씻어 준 눈부신 말씀을 보듬고 우리 서로 영혼의 옷깃을 여미어 주자 하동출생. 1974년 추천완료. 시집; “시는 꽃인가” “침묵보다 더 낮은 목소리” “조선 징소리” “사랑” 외 7권. 부산시인협회 회장, 한국자유문인협회 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이사장, 동명대학교 총장, 세종대학교 석좌교수 등 역임. 부산문학상, 한국시학상, 세종문화예술대상, 한국문예대상, 월강문학부산시장상 외 다수 수상. 동인.

시와 음악 2023.11.05

11월 / 이해우 재미 시인

11월 빛나는 태양아래 내몰리던 사람들과 너무나 환한 빛에 베어진 상처들 詩集과 옛 인연들의 편지에 치유되네 서늘한 손을 닮은 십일월의 초승달에 상처는 아물고 세상은 아름다워라 서늘한 11월의 따스함 잎마저 꽃이 되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며칠 후 /김소연 조금만 더 그렇게 하면 예순이 되겠지. 이런 건 늘 며칠 후처럼 느껴진다. 유자가 숙성되길 기다리는 정도의 시간. 그토록이나 스무 살을 기다리던 심정이 며칠 전처럼 또렷하게 기억나는 한편으로 기다리던 며칠 후는 감쪽같이 지나가 버렸다. //김소연 시인은 이 시를 '며칠 후엔 눈이 내리겠지'(프랑시스 잠의 시선집)의 레오폴드 보비가 이 시집의 답시를 적는다는 심정으로 썼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는 물과 같다는 말과 같이 그렇게 간절히 소망하던 스무 살 시..

시와 음악 2023.11.04

老松의 스승 /이해우

老松의 스승 /이해우 학들이 날아와서 세상을 얘기하면 안 듣는 척 귀동냥 들리는 걸 어쩌겠어 그들의 얘길 들으면 세상은 위기였어 아득한 저 하늘과 깊고 깊은 저 계곡 천당과 지옥 사이 어디도 아닌 이곳 연옥에 살고 있는 게 실감 나는 순간이지 어떻게 살까 하다 수경 선생* 떠올랐어 이래도 좋다 하고 저래도 좋다 하던 당신의 호호(好好)한 마음 이제 조금 알겠어 *수경선생 사마휘(司馬徽, ? ~ 208년)는 중국 후한 말의 인물로, 자는 덕조(德操)이며 영천군 사람이다. 그는 누구의 말에도 항상 '좋다, 좋아!'라고 대답을 해서, '호호선생(好好先生)'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는 유비에게 복룡(제갈량)과 봉추(방통)을 소개한 인물이기도 하다. 때때로 하는 생각인데, 만일 수경선생이 없었다면 삼국지도 없었을..

시와 음악 2023.11.03

겨울 강에서 /정호승 / 이해우 해설

겨울 강에서 /정호승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겨울 강 강언덕에 눈보라 몰아쳐도 눈보라에 내 몸이 으스스 쓰러져도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강물은 흘러가 흐느끼지 않아도 끝끝내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어 쓰러지면 일어서는 갈대가 되어 청산이 소리치면 소리쳐 울리 *정호승(1950- )-대구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거쳐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에에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었다. 시선집 , 산문집 등이 있으며 등 다수의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갈대를 보며 화자는 갈대와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일테면 시련이 와도 좌절하지 않는 의연한 갈대가 됨을 다짐한다는 말이다. 이 시에서 '흔들린다'는 ..

시와 음악 2023.11.01

개안 /이해우

개안 /이해우 젊음이 떠난 후엔 새벽에 눈을 뜨면 한 잔의 물을 찾아 주변을 더듬는다 사막을 걸었었는지 아침마다 목이 탔다 한 잔의 물이 들면 마른 몸엔 피가 돌고 사막은 신기루처럼 흩어져 사라지고 全裸의 삶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전엔 보지 못한 실상과 허상들이여 코끼리를 더듬었던 소경이 나였구나 아 나는 바보였구나 내가 사막이었던 걸

시와 음악 2023.11.01

낙화 /조지훈

낙화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모든 삶의 종점은 죽음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던 그곳에 도달한다. 죽음은 자연의 순리이기에 그렇다. 별이 지고 새벽이 온다. 여명에 산이 가까와 보인다. 이제야 어두운 시간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희망의 시간이어야 하는데 빛 속에 우리는 떨어진 꽃을 본다. 미닫이 문은 시인의 마음이고 그 마음에 떨어진 붉은 꽃의 물이 들었으니 슬픔을 은유한다. 그이의 고운 맘은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울고 싶은 심정이다...

시와 음악 2023.10.26

내 안에 오시어/정 순 영 시인

내 안에 오시어 정 순 영 내 안에 오시어 나를 살리시네 세상에서 들숨 날숨이 어수선할 때 하늘 한 움큼 먹여주시네 내 안에 오시어 나를 깨우시네 세상살이 게으름이 하늘을 가릴 때 산만한 안개를 걷어주시네 내 안에 오시어 나를 이끄시네 세상바람에 비틀거리며 헤매 일 때 하늘빛 한줄기 길을 밝혀주시네 하늘 숨을 쉬어라 내가 먹여 주리니 은혜 숨을 쉬어라 내가 다시 오리니 월간 2022, 12월호. 통권414호.

시와 음악 2023.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