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721

단양 사인암(舍人巖) 광시곡 /이 해 우

단양 사인암(舍人巖) 광시곡 /이 해 우 김홍도가 일 년을 붓을 들지 못하였고 추사가 감탄했던 사인암에 멈추었다 자연이 압축한 단양丹陽이 내 앞에 서 있었다 하늘을 보는 계곡은 들리냐 묻고 있고 귀로 들은 울림은 알겠냐고 흔들었다 안으려 맘 잡았지만 수렁처럼 빠진다 사인암 돌아가는 계곡川의 말굽소리 팔경의 그림자가 천마처럼 날뛰었고 하늘이 방류한 자유가 따르라고 앞장섰다

시와 음악 2023.10.13

추운 여름에 받은 편지 /허수경

추운 여름에 받은 편지 /허수경 지난주까지 이방의 병원에 있었습니다 끼니마다 나오는 야쿠르트를 넘기며 텅 빈 세계뉴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나날이었어요 병원 옆에는 강이 하나 있다고 하나 강물은 제 갈 길을 일찌감치 다른 곳으로 돌려 병원 옆 강에는 무성한 풀이 돋고 발 달린 물고기들이 록밴드처럼 울고 있었어요 어제 당신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피곤한 눈 대신 귀가 당신의 편지를 읽었어요 아마도 이웃집 기타리스트에게 기타는 빌려온 연인인가봅니다 빌리는 시간이 그냥 지나쳐버릴까봐 기타리스트는 기타의 심장에다 혀를 가져다 대고 있는데 아버지는 또 군대를 그곳으로 보냈나요 소리 없이 그곳으로 보냈나요 그래서 아이들은 부엌에 앉아 감자 껍질을 벗기며 오래된 동화책에다 물을 주고 있나요 어제는 하릴없이 마흔 살에 죽..

시와 음악 2023.10.12

천년을 사는 나무/권세준 시인

천년을 사는 나무 살아 오백 죽어 오백 천년을 사는 나무 태백산 고사목ᆢ 주목은 그렇게 천년을 살아 간다ᆢ 비 바람 불어 힘들면 나무가지 돌려 뻗고 눈 내려 버거우면 굽어 털어 비우며ᆢ 곧게 뻗은 유연성 버티고 견디며ᆢ 천년을 살아 왔다ᆞ 우리네 인생살이 주목과 같으니ᆢ 바람불면 부는데로ᆢ 눈비도 맞으며ᆢ 비우고 털면서 더불어 살으니ᆢ 삶도 죽음도 나의 인생ᆢ 얻어 보태며 남기고 떠나는 태백준령 고사목 주목을 주목하리라ᆢ 권함춘재 근서

시와 음악 2023.10.12

부음(訃音) /이해우

부음(訃音) /이해우 잡을 수 있는 건가? 잡으면 무엇하고? 바람처럼 동행하며 골도 넘고 산도 넘고 이따금 돌아보면서 여기까지 왔는 걸 멀었다 가까웠다 앞서다 뒤에 서다 당신은 목적지에 먼저 도달하셨구려 허허허 그냥 웃지요 우리 다시 만날 테니까 //오늘 새벽 이건청 시인께서 김남조 시인 한국시인협회장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오신다고 제 페북의 글에 댓글을 쓰셨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난 오늘 조국의 산하를 구경하러 단양으로 내려갑니다. 잠시 이율배반적 삶의 갈등이 일어났고, 시인이니 시로서 그 심사를 적어보았습니다.

시와 음악 2023.10.12

너를 위하여 / 김남조

너를 위하여 / 김남조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을 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 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시와 음악 2023.10.11

[광야의 푸른 나무]/신평 변호사 ㆍ시인

[광야의 푸른 나무] 신평 숲의 정령이 새벽안개로 축축이 네 몸 감싸고 인사하자 너는 벌떡 깨어났다 간밤 늑대의 거친 포효에 잠을 설치고 대륙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너무 무거웠다 푸른 잎사귀 비늘을 햇살에 반짝이며 일어나 길게 내쉬는 숨으로 구름을 뿜는다 가혹한 생의 조건을 이기고 살아오며 떨어뜨린 상처의 껍데기들 무심코 내려다본다 미지(未知)의 불가측이 벌리는 거대한 아가리 앞 언제건 힘없는 팔랑개비로 뒤집힐 수 있어도 단련된 무욕의 황금보검이 너에게 준 자유 그리고 그 자유가 뿌려둔 처처에 숨은 축복 너를 종신토록 편안케 하리니 긴 겨울 지나 다시 푸르게 살아날 꿈 꾸며 먼 지평선 넘어 찾아올 영원한 안식 불퇴(不退)의 시선으로 기다린다 덧: 일어나면 개들에게 밥을 준 뒤에 연못으로 바로 갑니다. 그곳..

시와 음악 2023.10.09

낙엽부(落葉賦)/ 이해우 재미 시인

낙엽부(落葉賦) 구르는 잎새들이 보라고 불렀어도 넌 죽음일 뿐이라고 지레짐작하였다 눈 돌려 먼 하늘에 뜬 방패鳶을 보았다 투명한 신경들이 달리고 있을 공간 입추의 하늘벌을 점 하나가 지배한다 집중해 오래 봤더니 저 또한 두려웠다 지금은 누워있는 자정이 넘은 시각 의식의 하부에서 복기의 幻이 올라온다 낙엽과 연이 엉키며 들었는가 묻는다 은일을 버리고서 처절히 외쳤었고 넋두리도 아니고 푸념도 아니었다 무엇이 죽은 것이고 무엇이 산 것인가 죽음이라 생각한 건 봄을 위한 준비였다 누린다 생각한 건 자유라는 表象의 點 경의를 표해야 했다 씹어봐야 했었다

시와 음악 2023.10.09

가을 꽃이 익는다./권세준 시인

가을 꽃이 익는다. 언 땅 나목에 서리가 내려 앉아 바람 꽃을 피우니, 만산엔 백설 내려 동토를 덮은 재조산하! 흰 꽃무뉘 정원을 꾸몄다. 산들바람 훈풍에 생기가 돋고 설중매 동백이 봄을 기다리니, 풋푸른 연두빛 고운자태 고개를 내민다. 진달래 개나리 꽃 망울 피우고 살구꽃 피고 지는 고향의 봄에 만산은 춘삼월 호시절! 봄을 노래한다. 폭우와 작열하는 햇살을 견디고 이겨낸 가을하늘! 지난 계절에 움트고 자란 잎새 낙엽귀근의 순환을 알 때가 되니 여름 날 가슴 태우며 남기고 익힌 가을 꽂 붉게 멍들고, 녹음방초 푸르름이 영원할 줄 알았으나 가을바람 선선하니 송한연후에 후조야를 눈치채고 에둘러 물감 옷을 입혔구나! 한 해를 돌고 도는 계절의 순환에 소년은 길을 몰라 이리저리 왔다갔다 갈 길을 재촉하고 청춘은..

시와 음악 2023.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