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여름에 받은 편지
/허수경
지난주까지 이방의 병원에 있었습니다
끼니마다 나오는 야쿠르트를 넘기며 텅 빈 세계뉴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나날이었어요
병원 옆에는 강이 하나 있다고 하나
강물은 제 갈 길을 일찌감치 다른 곳으로 돌려 병원 옆 강에는
무성한 풀이 돋고 발 달린 물고기들이 록밴드처럼 울고 있었어요
어제 당신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피곤한 눈 대신 귀가 당신의 편지를 읽었어요
아마도 이웃집 기타리스트에게 기타는 빌려온 연인인가봅니다
빌리는 시간이 그냥 지나쳐버릴까봐
기타리스트는 기타의 심장에다 혀를 가져다 대고 있는데
아버지는 또 군대를 그곳으로 보냈나요
소리 없이 그곳으로 보냈나요
그래서 아이들은 부엌에 앉아 감자 껍질을 벗기며
오래된 동화책에다 물을 주고 있나요
어제는 하릴없이 마흔 살에 죽었다는 철학자의 초상을 들여다 보고 있었어요
어제는 하릴없이 스무살에 죽었다는 시인의 몸에 대한 환상을 읽고 있었어요
까르륵거리며 새들은 학교에서 돌아오고
도르륵거리며 다람쥐들은 철근공사판에서 돌아오는 나날이었지요
울까봐 두려워 잠을 자지 않았어요
꿈이면 언제나 울었거든요
//여름이 추우니 희망이 있을리 없다. 겨울은 얼마나 추울까 짐작이된다. 세상 소식은 허무하고, 주변의 모든 것들 또한 허무함에 울고 있다. 일이 없는 기타리스트, 일찍 죽음을 선택한 철학가와 시인들, 절망한 그녀는 꿈에서조차 우는 것이 두려워 잠을 자지 못했다. 이 시는 독일에 살던 허수경 시인이 암에 걸려 투병할 때 지은 시다. - 이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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