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735

<눈>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시와 음악 2024.09.23

<폭포>/ ㅡㅡ김수영/권숙희

폭포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사이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

시와 음악 2024.09.23

그리운 사춘기 /이해우

그리운 사춘기 /이해우 보름달을 동경한 상현달 비슷했던 그때의 내 얼굴은 참 많이 낯설었다 덥지도 않았는데도 날마다 목 말랐다 달리다 넘어지고 구르다 부딪지고 싸움이라기보다는 전쟁과 같던 날들 바람에 쓰러졌어도 좀비처럼 일어났다 뜻대로 이뤄진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정의와 자유만이 내 삶의 이유였다 불꽃이 튀던 그날들 질풍노도의 그날들

시와 음악 2024.09.21

ㅡ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ㅡ 성지민

ㅡ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ㅡ 성지민 무더위도 어느듯 사라지고 가을의 정취가 느껴지네요 벼가 익어가는 황금들녁 어느듯 인생도 가을이 되었네요 풍성한 계절의 손님 귀뚜라미 우는소리 들려오고 숨가쁘게 흐르는 세월 붙잡아도 소용없고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사뿐사뿐 가을이 다가오는 소리에 그리움도 밀려오네 밖으로 나와보니 곡식이 여물어가고 과일들도 익어가고 ㅡ 가을꽃들은 꽃봉오리가 맺히고 피기시작한다 이 여름도 그리운 추억이되고 또 겨울이 오겠지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며 오늘도 또 아쉬운 하루가 소리없이 저물어간다

시와 음악 2024.09.13

남한산성에서 정순영

남한산성에서 정순영 남한산성 성벽아래서 붉은 그림자를 띤 쪽빛 큰제비고깔을 만나고는 울음이 차올라 우거진 풀숲을 헤쳐 나오는 바람 꽃대에 주렁주렁 매달린 보랏빛 꽃송이마다에 이슬로 맺혀있는 조선의 한恨 임금의 눈물을 보았다. 등 굽은 역사가 햇빛을 받아 이리도 슬퍼 보이고 쪽빛 하늘이 아려 붉은 그늘로 비치면 보라빛 아픔 꽃 핀다. 바람 한자락이 성벽을 어루만지며 흐느끼고 있다.

시와 음악 2024.09.12

이어도 아리랑

이어도 아리랑 이 달 마라도 너머에서 연자매 돌아가는 소리 들려온다 하늘 길을 거스르며 뒷덜미를 잡아채는 거센 바람에도 움츠러 들지 않는 숨은 보물섬, 너, 이어도를 만난다 수만리 태평양에서 밀려오는 파도의 원망을 들려주려는가 수억 년 엎드렸던 인류의 상처를 보여주려는가 달을 보고 우는 연자매는 깊은 바닷속 여인의 숨소리로 끌려나와 꿈을 꾸듯 에메랄드 바람을 빚어내고 십 리 바위 뒤에 숨은 이어도 사내의 그림자를 밟는다 이어~ 이어~ 이어~ 바위 뒤에 숨어 우는 이어도 사내를 따라 간다 바다의 물길이 모이는 새벽, 달의 문이 열리고 연자매를 닮은 별자리 하나 백록담에 닿는다 아, 여기 한반도의 뿌리를 이어, 이어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물길이 있다 아리랑 아리랑, 이어 이어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이어 이..

시와 음악 2024.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