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함포(含浦)와 망월(望月)의 광야(廣野)에 서서!/권세준 시인

양곡(陽谷) 2023. 10. 15. 12:01

함포(含浦)와 망월(望月)의 광야(廣野)에 서서!

씁슬한 흔적만 남기고 가을을 보낸다.
가을이 짙어가는 10월 어느날!
고향으로 기는 열차를 탔다.
차창으로 비쳐지는 들녘은 가을이 익어가고 세월이 흐른다.

황금 물결 넘실대는 고향의 들녘은 지난 여름의 재난을 이겨내어 풍요를 이루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행과 함께 맞질을 지나 금당으로 향하는 마음에는 코스모스와 잠자리가 날으는 고향의 마음을 품었다.

갈 때는 몰랐다.
돌아 오는 길이 이렇게 허망하고 씁쓸할 줄을ᆢ

봄이 오면 즐겨 부르며 노래하던 나의 봄, 고향의 봄은 이 가을의 씁슬한 회환이 되고 말았다.

오백년 이어온 고향의 봄은
폭풍과 광풍의 세속에 찌든 역사와 전통과 문화에 함몰되어
바람에 휘날리리는 가을 낙엽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씁쓸한 이 가을에도 봄은 다시 돌아오고 절치부심으로  감춘 속내의 발톱이 조금씩 드러나는 한천의 내성천!

씁흘한 이 가을에 새로운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나의 노래
고향의 봄을 다시 노래한다.

봄이 오면 봄 맞으러
맞질의 봄 맞으러
내 고향 맞질의
봄 맞으러 가야지ᆢ

한천 구비구비 거슬러 오르고 정산육녀봉 휘돌아서 서면
용계천 안온한 들녘 펼쳐지고
다정한 우리님 손짓하고 미소 지으면ᆢ

길다란 초가엔 봄 향기 가득하고
활짝 핀 살구꽃에 봄 눈 내리는
내 고향 맞질의 봄 맞으러 가야지

원대골 양지에 할미꽃 피고
작약산 옥봉산 꽃 피는 날엔
풀 무덤 연두빛 고운 숲 속으로
다정한 내 님을 살포시 안으면

살구 꽃 피고 지는 길다란 초가집엔 몽실몽실 그렁그렁 봄비 내리고,
봄바람 부는 흰꽃 단비 내리는
내 고향 맞질의 봄 맞으러 가야지ᆢ

해질녘 용계천 낚시 망태엔
하얀 모시 밀집모자 세월 낚으며
올망졸망 어린 자식 앞뒤 따르고
붓 끝머리 문필봉을 아쉬워하는

그리운 내 님을 가만히 안으면
살구 꽃 하얀 눈 둥근 달빛에
그렁그렁 세월 속에 님을 그리는
내 고향 맞질의 봄 맞으러 가야지

봄이 오면 봄 맞으러
맞질의 봄 맞으러
내 고향 맞질의
봄 맞으러 가야지ᆢ

오백년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를 이어온 나의 고향 맞질의 봄은
편향된 인식에 함몰되어 바람에 날리는 씁쓸한 가을 낙옆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함에도 고향의 봄은 다시  돌아올 것이고 나는 다시 나의 봄을 노래할 것이다.

광풍과 폭풍이 몰아쳐도  
나는 다시 고향의 봄!

맞질의 봄이 돌아 오기를
함포와 망월의 광야에서
목 놓아 소리쳐 불러보리라!

권함춘 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