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학의 자주성에 대하여
1. 사회복지학은 어떠한 학문입니까?
통상적으로 사람과 사회를 연구하여 보다 바람직한 관계를 실천적으로 원조하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응용학문, 실천학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한 가지 더 ‘순수학문’이라는 것도 추가해야 합니다. 순수는 정체성과 결부되어 있는 개념입니다. 학문의 본질은 작게는 인간의 살림살이, 크게는 우주의 살림살이의 이치을 찾고 규명하고 연구하는 것이며, 또한 그 이치를 실제적으로 전환, 변용하여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도록 실천하는 것입니다. 저는 실천성이 강한 학문이라면 마땅히 그 이치도 두루 넓고 깊게 갖춰진 학문이라고 봅니다. 실천성이 강한 사회복지학문은 그 이치가 두루 넓고 깊은 학문이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을가요? 사회복지학이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토대로 서구와 대등하게 비교할 수 있는 학문입니까? 아니면 그저 서구의 이론을 수입해 와서 우리 실정에 맞게 응용한 학문입니까? 단지 응용만 강조한다면 그것은 학문이 아닙니다. 기술입니다. 기술만 유용하게 잘 쓸 수 있으면 되나요? 어떤 마땅함의 정신없이 오로지 유용하게 쓰일 것에만 정진하면 될까요? 무엇이 근본인지 모르고 오로지 사람들한테 도움만 된다면 족한 것이 사회복지학일까요? 사회복지학문의 근본 정신은 무엇입니까?
2. 자주적 사회복지학
“인간이란 무엇입니까?”
“그거 알아서 어디에다 쓸건데?”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책에서 나온 대목입니다. 본질을 알고자 물은 것인데 그것이 실질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되묻습니다. 본질에 대해 물은 것도 좋고, 그것의 실제적 효용에 대해서 물은 것도 좋습니다. 본질에 대해 아는 것도 마땅합니다. 그것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도 마땅합니다. 본질을 제대로 알아야 그 기준이 마련되어야 그에 합당한 효용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제대로 알아야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 효용 이전에 이치를 따지지 않음은 잘못된 일입니다.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과 연구 없이 어떻게 실질적으로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사회복지학문이 우리를 제대로 아는 학문인가 하는 점에 초점을 둘 수 있습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한국사회복지학이 한국 사람을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학문인가 하는 점입니다. 한국사회복지학은 한국사회복지학 이전에 한국학입니다. 한국학은 우리 한민족의 정서와 문화를 반영한 것입니다. 한국사회복지학은 우리 민족의 정서와 고유한 문화를 충분히 반영한 것입니까?
근대에 우리 선인들이 동도서기론을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도(道)에 관해서 풍부한 학문이 있으니 서구의 기(器)를 받아들이자고 했습니다. 이론은 충분하나 실천기술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서구의 우수한 과학기술을 받아들이고자 한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마땅한 과정입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6.25동란, 미군정,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 100여년은 이전에 비해 우리 자주성의 역량을 더욱 무참히 짓밟힌 역사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선조들의 학문과 상당한 단절과 간극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서구의 이론의 자리는 득세하고 우리 전통 학문의 이론은 그 유용성을 서구에게 물려주고 이젠 이론적 위치까지 물려주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생깁니다. 과거 동도서기론을 주장하여 서구의 과학기술만 수입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이론마저 수입해옵니다.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정신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다듬어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언젠가 존경하는 사회복지학과 교수님께 사회복지학과 우리 전통 학문의 접목을 말씀드렸더니, “원래 우리 것이 어디있냐? (근래에는) 다 비슷해졌지.”고 반문하셨습니다. 저는 틀린 말씀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것이 정말 없을까요? 저는 다시 반문했습니다.
“그렇다면 문화의 차이는 없습니까? 언어가 분명 다르고 게다가 문화도 다른데 다른 나라 것을 우리 것이라고 말합니까?” 한국은 한국어를 이용하고 한국어로 정체성을 이야기합니다. 중국은 중국어를 이용하고 중국어로 정체성을 말합니다. 분명 위 이야기는 저와 교수님의 관점의 차이에 불과합니다. 두 사물을 유사성에서 바라보면 공통점이 많을 것이고, 차이성에서 바라보면 다른 점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 유사성이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확립한 유사성일까요? 우리 나라에 빗대면 우리 문화와 학문이 특히 사회복지학이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확립한 것이라고 대답할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사회복지학이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학문이라고 이야기할 사람은 더욱 드물 것입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님은 <조선 독립의 서>에서 독립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물짐승은 날짐승과 함께 모여 살지 못하고, 날짐승은 곤충과 함께 모여 살지 못하며, 동일한 물짐승이로되 기린과 여우는 그 거처가 다르고, 동일한 날짐승이로되 기러기와 제비, 참새는 그 뜻이 아주 다르고, 동일한 곤충이로되 용과 지렁이는 좋아하는 바가 서로 달리 있으며, 동종물 중에도 벌과 개미는 자기 무리가 아니면 절대로 배척하여 한 곳에 같이 살지 아니하나니. 이것은 유정물의 자존성에서 나옴이니, 이는 반드시 이해득실의 차이를 계산하여 남의 침략을 배척할 뿐 아니라 딴 무리가 자기 무리에 대하여 이익을 주려고 한다 하여도 또한 배척하나니 이는 배타성이 주체가 되어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무리에 대해서는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자존을 경영하는 고로.....중략...그런즉 자기 민족이 딴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려 함은 인류 공통의 본성이니 이에 대하여는 다른 민족이 이를 막지 못할 뿐 아니라 자기 민족이 스스로 자기 민족의 자존성을 억제하고자 하여도 불가능이라........」
왜 그토록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독립을 하려고 할까요? 독립은 자주성과 정체성을 되찾는 것입니다. 누구의 지배와 종속이 아닌 우리가 우리를 만들고 이끌어나가는 것입니다. 한국사회복지학은 5,000년 우리 민족의 역사를 메고 미래를 선도하고 창달하는 학문입니까? 한국 사회복지학은 우리 학문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많은 한국 학자들이 서구 이론을 공부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유교, 불교, 도교를 공부합니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철학이 동양의 유불도와 맞닿아 있음을 발견하고 다시 우리 것에 주목한 것입니다. 이미 우리 학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우리 것에서 보지 않고 그 멀리 유학의 길에서 배워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반성하고 통탄해야 할 일입니다. 이는 우리 학문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이고, 우리 학문의 단절이 지속되어 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서구의 우수성을 이야기하고 수입해서 응용만 하겠습니까? 우리 전통 학문에도 복지적 가치는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3.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학문에 있어서 차이와 다양성
차이와 다양성은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지속됩니다. 대화는 대등함을 전제로 합니다. 대등하게 비교해야 차이와 다양성이 가능해집니다. 진정한 세계화는 차이와 다양성이 전제되면서 제1세계, 제2세계, 제3세계 각국의 학문과 문화가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하고 토론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사회복지학의 자주성, 전통학문과의 연계성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전통 학문을 제대로 말하고 서구와 대등하게 비교, 고찰한 사회복지학입니까? 무엇이 가장 한국적인 사회복지학입니까?
제1세계의 선진 문물이 세계화의 잣대는 아닙니다. 제 1세계가 우수하다고 하여 기타 다른 나라를 짓밟고 자신의 힘을 강요하고 또한 무조건적 수용은 세계화가 아닙니다. 세계 모든 민족 각자의 우수한 문화와 학문들을 상호 대등한 관점에서 비교 고찰 연구하여 세계적인 공동체의 구도를 형성해 나감이 진정한 세계화입니다. 즉 각 나라, 각 민족마다 자체의 고유성과 자주성에 바탕을 두고 비교 고찰한 것이라야 합니다. 한국이 한국 고유의 것을 제대로 이야기하고 연구하고 발전시키고, 제3세계 민족들이 자신들의 문물을 마음껏 주장하고 펼치게 하여 그들 나름의 고유성을 존중해주고 우수성을 입증하게 하는 것이 또한 복지가 아닐까요? 그것이 자주적 세계화, 사회복지학의 세계화, 세계의 복지화의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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