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조 선생님은 내가 한국을 방문하였던 작년 10월에 94세의 연세로 별세하셨다. 호텔에서 신문에 난 기사를 읽고 알았다. 새벽 3시 쯤에 이건청 선생님께서 아산 병원에서 문인장이 열리는데 가신다고 페북의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하지만 나는 김남조 선생님도 이건청 선생님도 한 번도 직접 뵌 적이 없다. 아직 문인이라 하기엔 멀었단 생각에, 그리고 그날 난 한국을 혼자 돌아보기로 시작한 날이라 '저는 제 여행을 갑니다' 란 메시지를 보냈던 것 같다. 아래의 골무란 글은 30여년 전 '소설문학'에 연재하였던 40여편의 콩트 형식의 산문중 하나로 그녀가 고희때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책을 출간하였는데 거기에 실린 글이다.]
골무
/김남조
"아무래도 가긴 가야 할 텐데"
혼잣말처럼이 소릴 또 하고 있었다.
"당신이나 다녀오시라니까요"
돋보기를 쓰고 비단 조각으로 골무를 깁고 있던 아내가 말을 받아준다.
"무슨 소리요. 혼자서 가는 은혼 여행을 봤어?"
짜증스레 내뱉고 나서 담뱃불을 붙인다.
이들이 부부된 지 어느덧 25년이 되었다고 해서 미국에 살고 있는 아들 내외가 미화 몇 백 불과 함께 '두 분이 제주도 여행이라도 꼭 다녀오세요'란 편지를 보내 왔다. 처음엔 그 마음 씀씀이만으로도 흐뭇하더니 막상 그 날짜에 임박하고 보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단 둘의 여행이라는 걸가 본 적도 없거니와 성북동 골짜기의 작은 집이나마 누구에겐가 봐 달라고 맡겨야 할 일이 매우 난감했다.
이 몇 해 사이 그의 소일거리라야 여남은 포기의 화초 돌보기와 담배 피우고 책장 뒤적이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이름 석 자 위에 시인이라는 관사를 얹고 지내는 처지여서 춘하추동 원고지의 강박 의식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아내는 아내대로 손바닥만한 채소 밭에 마음 붙이는 한편, 자잘한 헝겊 조각들과 색실 나부랑이를 늘어놓고 골무를 만드는 일을 낙으로 여기는 형편이다.
'나야 글줄 쓰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없는 재주를 짜낸다 하겠건만 저는 뭣이 재미있다고 저 모양인가!'
그는 아내의 골무 취미야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까마득히 거슬러 올라가는 신혼 시절부터 그녀는 이를 테면 골무광이었다. 백 개쯤도 더 되는 색색의 골무를 알록달록 집어넣은 커다란 유리 항아리를 신접 살림 새 새간들과 함께 지참해 왔었고 틈만 나면 눈도 어지러운 헝겊 조각, 색실들, 가위며 풀 따위를 꺼내 놓고 골무 만들기에 정신을 쏟곤 하였다. 집집마다 재봉틀을 쓰는 요즘 세상에 고작 옛 시절 민예품에 불과한 골무를 만들면서 앞뒤 판에 깨알같은 수를 놓기까지 하는 거동을 바라보고 있으라치면 속이 뒤집혔다.
"당신은 태평도 하구려. 골무 따위나 깁고 앉아서..."
그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
"그것도 제주도에 가져갈 건가?"
"글쎄요?"
숙였던 머리를 들고 잠시 궁리하는 표정인 데엔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거 정말 뭣하는 일이요. 수 놓는 게 재미있어서 그러나?"
그녀는 대꾸도 없이 수실을 겹으로 꽈서 두 쪽의 이음새를 한 뜸 한 뜸 야무지게 꿰메고 있다.
"이봐! 도대체 몇 살 적부터 그짓인 게요. 응?"
"열아홉부터예요"
"며칠에 하나 씩을 만들다가 그 사람이 죽은 뒤부터 대충 틈이 나면 만들곤 하지요?"
"뭣이 어째? 죽긴 누가 죽어?"
"어떤 남자였어요"
"도대체 무슨 소리야. 왜 이제사 말을 해?"
단숨에 질문을 내쏟았다.
"그야 한 번도 안 물어보는 걸 어떻게 말해요"
그녀는 아무런 동요도 없어 보인다.
"누가 죽었다구? 정말 남잔가?"
"그래요. 남자예요"
"허어!"
정말 기가 찼다. 그제서야 그녀는 일감을 내려놓고 보온병에서 더운 물을 따라 귤차 한 잔을 풀어 남편 앞에 갖다 놓는다.
"차나 드세요. 어린애같이 구시지 말구"
그녀의 얼굴은 평온한 웃음을 띠고 있다.
"뭣이 어떻게 됐다구?"
그의 어조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알았어요. 당신 속 시원하게 죄다 말할 게요. 벌써 30년도 더 된 일이지만서두"
그녀는 더운 물 한 잔을 따라 작은 찻잔을 손 안에 감싸는 듯이 하면서 찻잔 속으로 시선을 준다.
"우리 집에 놀러 오곤 하던 오빠 친구 대학생 중에 준호란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나를 꼭 만나야 한다고 오빠를 졸라 내 방엘 왔었어요. 전쟁터에 나가게 됐는데 나더러 종이학을 천 마리 접어줄 수 있겠느냐구요"
"......"
"일본 사람들 풍습에 그런 게 있다나요. 종이로 학을 접어서 천 마리를 채울 동안 한 가지 소원을 빌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요. 그 사람은 전쟁에 꼭 이기고 자기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빌어 주겠냐는 얘기였어요"
"......"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소리냐고 하실 테지만 육이오 동란 그 때 사람들은 누구나 낭떠러지에서 떼밀려 있는 상태였어요. 집에만 잠시 들렀다가 즉시 입대해야 한다는 말에 오빠와 난 울음을 걷잡지 못했어요. 그 날 나는 약속을 했어요. 하지만 일본 사람의 흉내 같은 게 싫어서 학 대신 골무를 만들기로 작정했어죠. 천 개를 말이예요"
그녀는 천천히 몇 모금의 물을 삼키고 있었다.
"그 사람은 얼마 못 가서 전사했고 유품이라는 게 부모 앞으로 전해졌는데 거기에 편지도 있었대요. 오빠 앞으로 봉투가 씌어졌으나 제게 남긴 거라나 봐요"
그는 저도 몰래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래, 그 편지 속에 내가 죽더라도 골무만은 계속 만들라고 썼더란 말이지. 아니면 사랑한다 어쩌구 지껄여 놨거나"
그의 심정은 갑자기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고 배신의 돌 기둥이 사정없이 몸 위로 넘어지는 것 같았다.
"아녜요, 여보. 그냥 감사한다는 말뿐이더래요. 그것도 오빠가 말만 해 줬지, 봐선 뭘 하느냐구...."
"그렇담 그만이지, 오늘날까지도이 청승은 뭐람!"
그의 분노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고 그녀 또한 극도의 긴장이 전신을 감아죄는 듯했다.
"당신의 마음을 상해 드렸다면 죄송해요. 그렇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단 말이예요. 남자나 여자나 다 같은 사람인데 전쟁이 나면 남자만이 싸우러 나가구, 저들도 여자처럼 살고 싶을 텐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구요. 난 골무 천개를 꼭 만들어서 명복을 빌어 주기로 맹세를 했었어요. 처음엔 날마다 하나씩 3년이면 만들리라 했는데 죽었단 말을 듣고 나선 열흘에 하나 꼴로 3년 동안 만들어 가기로 생각을 바꿨던 거예요"
"그 동안 하루도 안 잊어 먹었겠구먼!"
그의 감정은 여전히 쓰디쓰기만 했다.
"여보...."
그녀의 말끝이 가늘게 떨린다.
"잊고 안 잊고가 어딨어요. 당신이라면 30년 전 사람을 기억 할 수 있겠어요? 더구나 오빠에게 놀러온 걸 그저 몇 번 본 것뿐인데.... 물론 당신은 왜 하필 나여야 했었느냐고 물으시겠죠. 하지만 그건 나도 몰라요. 그러나 사람이 그 한평생 중 가장 큰 일에 부딪쳤을 때 누군가를 짚어 내어 문을 두드리는 건 예삿일이 아닐 테죠.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도 맹세를 지켜온 거라 싶어요. 죽으러 가는 사람이 내 문을 두드려 준 사실에 대해 뭔가 보답을 안겨 줘야 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얼마나 가엾은 일인가 말예요. 난리 중에 귀한 생명들이 가랑잎처럼 마구 짓밟히고 죽어간 것이"
납덩이처럼 내리누르는 침묵이 얼마간 흐르고 난 다음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또 있어요. 골무를 만듦으로 해서 변함 없는 '나'라는 확인이 되어졌던 것도 같아요. 세월의 앙금 속에서도 녹슬지 않는 자기 자신을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싶지 않겠어요. 숫돌에 칼을 갈 듯이 그 자신의 진실도 칼날을 세워 가는 그런 마음 이해하실 수 없나요? 더구나 당신은 시인이면서...."
그녀는 옷고름을 눈에 대면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시인이면서....'
이 말 한 마디가 흘리고 간 절망의 여운을 목욕물처럼 함빡 뒤집어 쓴 채 그는 새 담배에 성냥을 그어댔다. 잠시 후 그는 집을 나섰다. 둘만이 있고 보니 거북할 땐 먼저 외출하는 게 수라는 처세법으로 매번 선수를 치는 셈이다.
총총히 나서는 남편의 모습을 그녀는 말없이 눈으로만 배웅하고 있었다. 그는 버스에 흔들리면서 거리에 나섰다. 털어버리려 해도 아내의 골무가 자꾸 눈앞에 떠오른다. 지금은 세 개째의 유리 항아리에도 그득히 담겼고 보니 족히 천 개쯤은 될 것도 같았다. 눈앞에 있다면 방바닥에 쏟아놓고 세어 보고도 싶다. 아무튼 그녀와 함께 동고동락의 세월을 보낸 지 25년이건만 단 한 번도 애정을 가지고 골무를 바라 본 기억이 없고 뭔가 설명 못할 적의와 야릇한 질투심에 줄곧 휘감겨 왔었던 게 사실이다.
'좋게 보자면 연연한 보석 자갈이라고도 말할 만 했는 걸.'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가슴 속에 수북한 포화감이 일었다. 책방을 둘러보곤 커피를 청해 마시고 다시 거리를 거닐다가 두어 군데 맥주집을 돌면서 그 집 홀에 설치된 텔레비젼의 야구 구경을 하기도 했다. 실로 감개가 묘했다. 가장 가까이에 두고 있으면서 한 번도 그 속을 들여다보지 않은 검푸른 샘이 있었는데 처음으로 그 수심을 재려 들 때의 가당찮은 긴장과 기묘한 흥분이 그를 휩싸고 있다. 그 감회만 뭉클한 감동이기도 씁쓸한 후회이기도 했다. 그는 날이 온전히 저물어서야 집으로 향한 발걸음을 옮겼다.
집은 조용했고 신발을 끌며 대문을 열어 준 아내는 나직이 이렇게 말하였다.
"저녁을 잡수셔야죠"
"아니오, 먹고 들어왔소"
아내의 얼굴에 시선을 주니 그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떨군다. 실눈썹이 가지런한 게 옛날 청초하던 애티가 아직 남아 있다.이 역시도 신기한 발견이다.
"여보, 예 와서 앉구료"
낡은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으면서 맞은편 의자를 눈으로 가리킨다.
"낮의 얘긴데 말요. 한 가지만 더 말해도 괜찮을까"
이번엔 그녀가 놀라는 표정이다. 아침녘의 그 화제가 아직도 남편의 위장에 남아 소화를 위해 반추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고 좀 전의 그의 음성도 다분히 색달랐다. 그녀는 갑자기 너무나 밝은 조명 안에 덩그렇게 드러난 자신의 처지를 여자의 직감으로 알아차리고 있었다.
"말해봐요, 내가 그 때의 그 청년이라면 당신은 나를 위해서 골무를 만들어 줬겠어? 자, 말해 주구려"
그는 응석받이 아이처럼 대답을 조른다. 야릇한 질투심이 또 한 번 등줄기를 줄달음치고 있었다. 그러한 그의 속마음까지도 꿰뚫어보는 그녀는 어이없는 딱한 어린애를 달래듯 가만가만 대꾸해 주는 것이었다.
"당신은 저 자잘한 골무와도 키를 견주시는군요. 그래서 당신이 더 크다는 걸 알아야만 되겠다는 거죠. 남자의 욕심이란 그렇게도 속이 뻥 뚫렸나요"
잠시 후 그녀는 미소를 띠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당신은 이미 내 인생 전부를 가졌으면서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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