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에게
/오구마 히데오(권택명 역)
아카시아 꽃향기가,
물씬 높다랗게 바람에 떠도는 곳에—,
우리 누나는 불행한 남동생의 일을 생각하고 있겠지요
술에 취해 날뛰던
절제하지 못하던 남동생은
지금 꼿꼿하게 몸이 야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남동생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생이란 게
얼마나 인간을 강하게 하는 것인가를.
나는 슬퍼한다는 걸 잊어버렸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가장 슬프게 하고,
그것이야말로, 나를 가장 용감하게 합니다
내가 몇 번이나 도시로 뛰쳐나갔다가
몇 번이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누님, 당신이 밤새 울면서
충고를 해준 것이
똑똑히 눈앞에 떠오릅니다,
— 얘는 어째서
그토록 도쿄(東京)로 나가고 싶어 하는 걸까,
남동생은 조용히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운명이란, 나에게 지금은
손 안의 한줌처럼 작은 것입니다.
나는 이걸 지그시 강하게,
이 녀석을 움켜쥡니다,
나는 쾌감을 느낍니다,
— 나는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활을 위해 살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할 만큼, 지금은 대담한 말을
뱉어낼 수가 있습니다,
노동을 위해 움켜쥔 손을
나는 가만히 펼쳐봅니다.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증오의 땀을 흘리고 있을 뿐입니다,
안심하십시오,
나는 도쿄에 정착했습니다.
//오구마 히데오는 1901년생 시인이다. 오구마는 1910년 한일병탄에 아파한 몇 안 되는 일본 문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쓴 시 〈장장추야(長長秋夜·깊고 깊은 가을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검게 더렵혀진 흰옷을 방망이로 두들긴다/ 두들기는 손길도 울고 있다/ 두들겨 맞는 들도 울고 있다/ 조선의 모든 것이 울고 있다〉(번역 권택명)
당시 일본 시인 중에 '조선의 모든 것이 울고 있다'고 쓴 몇 안되는 양식있는 시인이다. (- 김태완의 글에서 발췌)
〈누나에게〉는 누나에게 띄우는 편지 형식의 시로 철없던 남동생이 도쿄에 올라가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고생이란 게/ 얼마나 인간을 강하게 하는 것인가를./ 나는 슬퍼한다는 걸 잊어버렸습니다〉라고 담담한 어조로 말하며 힘들지만 그 속에서 삶을 배우며 겸손을 배운다며 걱정할 누나를 안도시키고 있다. '나는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활을 위해 살고 있는 것입니다.'란 말은 얼마나 멋진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말로 미루어 나에겐 그의 삶이 평균적인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숭고해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그런 생을 살았다. - 이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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