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윤사월(閏四月) /박목월

양곡(陽谷) 2023. 12. 5. 11:36

윤사월(閏四月)
/박목월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이 시의 전제로 깔린 송화가루와 윤사월과 꾀꼬리, 그리고 '눈 먼 처녀'의 은유가 무엇인지를 알면 이 시가 이해가 된다. 송화가루는 소나무의 꽃가루인데, 보통 곤충에 의해 수분을 하는 여타 식물과 딸리 소나무는 바람에 꽃가루를 날리는 풍매화다. 일반적인 사랑법이 아닌 힘든 사랑법이지만 봄이 되니 사랑을 퍼뜨린다. '외딴 봉우리'라는 단어에서 우린 즉각 산 높은 곳의 외로운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눈 먼 처자가 살고 있다. 윤사월은 무엇인가? 농자들의 역법인 윤사월은 윤달이 4월에 들은 달을 말한다. 다시 말해 한 달이 더 늘어난 해이다. 최근의 윤사월은 2020이었고, 다음의 윤사월은 2050년까지 없다고 하니 만나기 힘든 해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온 사월은 한 달이 아니라 두 달이니 외로움은 극에 달한다. 누구의 외로움일까? 시를 읽어보면 그 사람은 눈이 먼 산지기의 딸이다. 산지기란 단어만으로도 사회와 동떨어짐을 알 수 있는데, 게다가 이 처자는 눈이 멀었다. 다시 말해 눈 먼 산지기의 딸의 은유는 옛날 방정한 행실이 사회의 규율로 강요되던 시대에 살던 여자들의 은유라 볼 수 있다. 때는 봄이다. 이 처녀는 소나무 처럼 꽃가루를 날리지도 못하고 문설주에 귀를 대고 세상의 사랑을 가늠한다. 그녀의 이런 사랑을 동경하는 마음은 윤사월 처럼 어려운 것이다.  시인은 사랑이 규제되어 힘든 시대에 살았던 옛 우리 할머니들의 사랑을 향토적 서정이 담뿍 배인 단어의 은유로 간결히 압축하여 '윤사월'이란 제목의 시로 쓴 것이다. 名詩다. - 이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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