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사 연재 30. 20세기의 역사적 교훈
19세기 서구 문명은 자유주의와 국민주의, 산업혁명과 사회주의, 국가통합과 제국주의, 사회 문화적 진화의 유산을 남기며 전진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 세계는 두 개의 큰 전쟁과 대공황을 체험하였다. 1945년 이후 세계는 미국과 소련의 군사적 대결로 냉전 속에서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 등의 국지전을 체험하였고, 후자의 여파로 1973년 OPEC의 석유 수출금지는 국제문제를 군사적 대결보다 경제적 협력으로 해결하도록 유도하였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어 국가 간에 이념적 장벽이 사라지고 문물의 교류가 자유로워지는 세계화의 시대가 열렸고, 정치에서 자유주의와 경제에서 시장주의 물결이 넘쳐흘렀다.
(a) 정치와 경제의 상호작용
대공황과 독일의 재무장: 미국의 대공황이 유럽에 확산하여 고용-소득-소비-생산이 연쇄적으로 감소하고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한 독일은 무거운 배상금으로 소비 수요가 바닥까지 내려왔으며, 1929 -39 기간에 폴란드, 독일, 오스트리아는 국민의 20%가 실업자로 산업생산량이 40% 감소하였고, 1932년 무역액은 1929년의 1/3 수준에 머물렀다. 독일의 전쟁배상금 지불 능력이 소진하여, 도스 계획(1924)으로 미국은 독일에 5년 동안 민간투자로 40억 불을 대출하고, 1921-30 기간에 유럽에 총 78억 불을 대출하였다. 유럽은 대부분 금 본위 화폐제도로 물가와 환율을 안정되게 유지하였으나, 금 본위는 통화 확장정책에 제한을 주었다. 유럽은 국내시장 보호를 위하여 1920년대에 무역장벽을 강화하고, 미국의 보호 무역정책(1930)은 불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1933년부터 불황이 점차 회복되기 시작하였으나 1940년 미국의 실업률은 15% 선에 머물렀다. 전후 대공황이 독일을 강타하여 바이마르 공화국의 통치력이 약해지고 나치당이 지지를 얻어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였다. 히틀러는 1935년 재무장을 선언하고 기계, 화학, 조선, 항공기 등 군수산업을 일으켜 기술개혁의 전기를 만들었고, 독일은 군사력 건설로 대공황을 탈출하였다.
일본 근대화와 세계대전: 일본은 1868년 도쿠가와 막부를 끝내고 메이지 왕이 서방의 제도를 도입하여 20년 넘게 근대화로 아시아의 제일 산업국이 되었고, 양원제 입헌 군주국가의 헌법을 제정하여 1890년 일본제국을 선포하였다. 일본은 청일전쟁(1894)에서 승리하여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고, 조선에서 중국세력을 축출하여 친일 내각을 구성하며, 중국의 랴오둥반도와 타이완을 얻었다. 일본은 러일전쟁(1904-05)으로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여 남부 사할린을 양도받고 만주에서 많은 채광권을 취득하였다.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으로 미국의 필리핀 지배권과 일본의 조선 지배권을 서로 인정하여, 한일 합병조약(1910)으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일본은 일차대전 승리로 중국과 태평양에서 독일 식민지를 인수하고 신탁통치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며, 중국에 침투할 발판을 마련하고, 군사적으로 태평양에서 최강의 해군국이 되었다. 일본이 동남아로 팽창하자 미국은 일본이 1931년 이후 점령한 모든 영토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하였다. 히데키 내각은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을 개시하였고 미국은 1945년 8월 2개의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하여 전쟁을 종결하였다.
마셜 플랜과 유럽의 회복: 전후 미국은 소련과의 관계가 나빠지고, 그리스와 터키 문제에서 소련이 개입하여 그리스에 대한 영국의 원조가 중단되자, 미국은 원조 방향을 전환하였다. 트루먼 행정부는 그리스와 터키에 $4억의 원조를 제공하고 미국의 군인과 민간인을 파견하였다. 투르먼은 [그리스 내전에서 공산주의의 승리는 터키의 정치적 안정을 해치고 중동지역의 정치적 안정을 위태롭게 한다. 공산주의 확산은 국제평화의 기초와 미국안보를 허물기 때문에, 미국은 전체주의 정권과 싸우는 자유 국민을 돕도록 강요받고 있다. 미국의 안보를 위하여 소련 전체주의가 자유 독립 국가로 확산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국무장관은 마셜 플랜(1948)으로 유럽재건을 위하여 $130억(2016년 $1300억)을 유럽에 무상원조하였다 (영국 26%, 프랑스 18%, 독일 11%). 소련은 이에 대응하여 몰로토프 계획을 시행하였으나 큰 효과가 없었다. 마셜 플랜은 1948-52 기간에 유럽의 산업생산을 35% 증가시켜, 내핍수단이나 배급제도를 완화하여 국민의 불만이 감소하고 정치적 안정을 가져왔다.
OPEC 석유 수출 금지(1973-74): 1973년 10월 이집트는 시나이반도로 공격하고 시리아는 골란 하이트로 진격하였으나, 이스라엘은 반격하여 격퇴하였다. 사다트는 미국과 소련이 교전에 개입해 주기를 요청하여, 미국이 이를 거부하자 소련은 일방적으로 군사적 개입을 선언하였다. 이에 닉슨은 전 세계 미군에게 핵 경고를 발령하자 소련도 즉각적으로 대응하였다. 소련이 중동에서 발판을 구축하려는 야욕에 대해, 국제 세력균형에서 급속한 변화를 방지하려는 미국의 결의가 분명하였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7,000명의 UN 비상군을 창설하여 휴전을 감시한다고 결의하여 제4차 중동전쟁의 확대를 피하게 되었다. 시나이반도에서 휴전 위반을 탐지하는 기술적 장비로 미국과 UN이 감시하는 완충지대를 구성하는 조건으로, 1975년 9월에 이스라엘군이 일부 시나이반도에서 철수하였다. 소련은 협상에 개입하지 않았다. 석유 수출국 기구(OPEC)는 1973년 10월 석유 가격을 인상하여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이로 인해 국제정치는 군사적 대결보다 경제적 협력으로 분쟁을 해결하도록 방향을 전환하였다.
소비에트 연방 해체: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1985년 개방정책인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여 공산주의 국가들이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서 새로운 생각을 가지는 개혁과 개방을 추구하였다. 1987년 12월 고르바초프와 레이건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에 서명하고, 유럽에 배치한 단거리 및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폐기하였다. 고르바초프는 1988년 2월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러시아 병력을 철수하고, 브레즈네프 독트린(1968)을 폐기하여 동유럽 국가들이 자신의 내정문제를 자유롭게 결정하는 불간섭 정책을 발표하였다. 1989년 말 동유럽 국가들의 수도에서 폭동이 일어나 널리 파급되어 이들 국가가 통제력을 상실하여, 의도하지 않은 소련 연방의 붕괴를 가져와, 유럽 공산 국가들은 경제적 개혁이 없이 정치적 해방을 맞이하였다. 1991년 12월 보리스 옐친이 대통령에 선출되어 러시아는 사회주의 경제를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하면서 경제적 충격요법, 환율 자유화, 사유재산 인정, 가격 통제 철폐 등을 시행하였다. 소련 정보장교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에 선출되어 2012년부터 현재까지 장기집권으로 권위주의적 통치를 해왔다.
중국의 등장: 1979년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외교 관계를 전환하였다. 미국이 취하는 하나의 중국 정책은 [타이완]의 주권에 대한 베이징의 요구를 승인하는 것이 아니며, 타이완에 무기판매를 중국과 논의하지 않았다. 미국-홍콩 조약(1992)은 미국은 [홍콩]을 무역과 투자에서 중국과 분리하여 대우한다고 명시하였다. 마오쩌둥 사후에 [덩샤오핑]은 1978년 외국기업에 문호를 개방하여 1980년 4개의 경제특구를 열고 감세와 저임금으로 외국기업의 투자와 무역을 확대하였다. 그는 정치적으로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의 이득을 극대화하는 일거양득의 현대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중국은 개방 초기에 정부의 감세와 보조금 지급으로 노동집약적 상품을 수출하여 자본과 기술을 축적하고, 철강 기계 전자 통신 분야 등 자본 및 기술 집약 산업에 진출을 시도하였다. 중국의 연평균 무역 성장률은 1978-1990 기간에 15%였으며 다음 10년에도 고도성장을 계속하였다. 서방세계와 교류 증가로 자유주의적 사상이 유입되어, 1989년 베이징에서 대규모 학생의 민주화 시위가 발생하였으나, 정부는 군대를 투입하여 이를 진압하였다.
(b) 이론과 실제의 관계
미국의 실용주의: 찰스 퍼스, 윌리엄 제임스, 존 듀이가 선도하는 미국의 실용주의는 1870년대에 일어난 사상으로 생각의 기능이 개념적인 것보다 문제 해결과 행동을 위한 도구라고 믿고, 원칙이나 개념보다 실용성을 중시하였으며, 근본적으로 관념주의 철학을 거부하였다. [찰스 퍼스] 실용주의 철학에서 과학적 방법만이 바른 것이며, 철학의 과제는 애매한 관념이나 언어의 의미를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분석하는 것이며 논리학은 개념을 분명하게 하는 방법이다. [윌리엄 제임스] 진리는 사실로부터 출현하며, 그 사실은 다시 새로운 진리를 창출하거나 나타내므로, 무한정으로 계속된다. 사실 자체는 진실이 아니며, 진리는 사실 가운데서 출발과 종착이 가져오는 믿음의 함수이다. [존 듀이] 심리학에서 관념주의와 경험과학을 접목하려고 시도하였다. 인간 의식의 최고는 유동성이며 정체된 인생은 낙후한다. 고정된 법률이나 목표는 인생의 전진을 방해한다.
대공황과 케인스의 거시경제학: 케인스의 일반이론에 의하면, 총수요의 부족이 경기 침체의 원인이며, 물가나 임금이 신속히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총수요가 부족하면 재고가 쌓이고 고용이 감소하며 실업증가로 소비가 더욱 감소하고, 따라서 총수요가 감소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침체된 경기를 회복하기 위하여는 정부가 총수요를 증가시키는 재정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총수요가 국민소득을 결정한다는 이론은 경제학계에 큰 반응을 불러왔다. [Y = C + I + G + NE] 수식에서 Y는 국민소득, C는 총소비, I는 총투자, G는 정부 예산(정부 소비와 투자), NE는 순 수출(총수출-총수입)이다. 고로 국민소득은 총수요(총소비, 총투자, 정부 예산, 순 수출)와 같으며 정부가 총수요를 증가하기 위하여 팽창적 재정정책으로 인프라 구축 등의 건설로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 대공황에 빠졌던 서방국가들이 케인스의 처방을 받아들여 1960년대 큰 영향을 주었다. 1970년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케인스의 영향력을 감소시켰으나, 2007-10년 금융위기에서 금융과 재정의 팽창정책을 적용하였다.
산업혁명과 기업 경영이론: 산업혁명으로 기업의 종류와 규모가 확대되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프레데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이나 엘톤 메이요의 인간관계 이론이 발전하였다. 학자들의 계속적 연구로 경영학 이론이 발전하였고, 체계적 접근 방법을 여기 소개한다. 조직의 체계를 상위체계, 체계, 하위체계로 구분한다. 상위체계는 조직 밖의 환경 요소이며, 체계는 조직 자체이며, 하위체계는 조직 내의 가치와 목표, 편성 구조, 인적자원관리, 재무관리, 공급체인, 정보기술, 통제와 조정 등이다. 새로운 입력이 조직 체계에 유입되면 하위체계가 상호작용으로 출력을 생산한다. 출력이 조직의 목표와 상이하면 피드백이 작용하여 다시 새로운 입력으로 조직에 유입되어 다른 하나의 출력을 산출한다. 이 피드백 과정은 출력이 조직의 목표와 일치할 때까지 계속된다. 가치와 목적에 기초한 조직의 임무와 목표는 내부 역량과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수시로 수정되고 조정되지만, 경영자는 목표를 항상 인식하고 확인해야 한다.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수직적 및 수평적 의사소통이며 간단없는 정보 교환으로 잘못을 줄여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c) 주요 강대국 간의 관계발전
프랑스와 독일 관계: (1) 1799년 나폴레옹이 집권한 이후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의 속국이 되었고. 바바리아는 1806년 왕국으로 승격하여 모스크바 원정에 3만 명을 동원하였다. (2) 프러시아는 1870년 프랑스를 침공하여 파리에서 독일제국을 선포하고, 프랑스는 알자스-로렌을 독일에 할양하고 50억 프랑의 배상금을 완불하여 1873년 주둔군은 완전히 철수하였다. (3) 프랑스는 보불전쟁의 원한으로 독일을 고립시키기 위해 러시아와 동맹을 유지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반 독일 동맹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4) 프랑스는 전승으로 알자스-로렌을 회복하고, 독일이 1923년 배상금 지불을 불이행하자, 라인랜드와 루르 지방을 1925년까지 점령하였다. (5)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는 영국, 미국, 소련과 동맹으로 승리하였고, 마셜 플랜은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였다. 1955년 미국, 프랑스, 영국은 군사점령을 끝내고 서독을 독립시켜, 4년 후에 NATO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 동서 독일은 재통일을 이루어, 프랑스와 독일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
미국과 소련과의 관계: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미국은 독일에 대한 금수를 소련에 연장하고, 1918년 일본의 팽창을 우려하여 북부 러시아와 시베리아에 소규모 병력을 파견하였다.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련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대사를 파견하였다. 1941년 독일이 러시아를 침공하자, 러시아는 영국과 상호원조 조약을 체결하고, 미국의 임대차 프로그램으로부터 원조를 받았다. 2차대전 시에 미소 간에 작전 협력은 다른 동맹국에 비하여 미미하였고, 미국은 임대차 프로그램을 통하여 무기, 장비, 전쟁물자를 소련에 대량으로 공급하지 아니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양국 간에 이전의 갈등이 다시 표면화되었다. 미국은 전후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는 소련이 동부 유럽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우려하였다. 소련은 미국의 마셜 계획을 거부하였고, NATO에 대항하여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조직하였다. 1991년 걸프 전쟁에서 미소는 동반자가 되었고, 전략무기 감축 조약(START I)에 합의하였다.
일본과 중국 관계: 일본은 1931년 남만주 철도 폭파를 조작하여, 만주를 점령하고 만주국을 세웠다. [국공내전] 장제스가 홍군과 농민을 격리하여 공산당 근거지인 난창을 압박하자, 홍군의 주력은 강서성의 근거지를 버리고 서쪽으로 탈주하여 대장정에 들어가, 1935년 섬서성 옌안에 도착하였고, 생존한 공산군은 2만이었다. [시안사건] 동북군의 실력자 장쉐량(장학량)은 1936년 공산당 토벌을 위해 시안에 온 장제스를 체포 감금하였다. 중국 공산당과 난징정부의 교섭으로 내전중지-일치항일의 요구를 받아들여 제2차 국공합작을 시작하였다. 일본군이 화북지방을 침략하자, 소련은 중국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항공기, 화포, 전차 등 군수물자를 원조하고, $1억 차관을 제공하며 군사고문단을 파견하였다. 1937년 7월 [루거우차오(노구교) 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선전포고 없이 중국을 침략하여, 중국군은 여러 지방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하였다. [난징 대학살] 그해 12월 상하이 교두보를 벗어난 일본군은 난징으로 진격하여 군인과 민간인을 6주 동안 무차별 학살하였다. 1938년 말까지 일본은 중국의 해안 도시를 거의 장악하였으나, 전선이 장기화로 고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하면서 중국군은 대공세로 반격을 시작하였다. 1940년 일본이 인도차이나반도를 침략하고 추축국과 동맹을 맺자, 미국 의회는 대일수출 금지를 결의하였다. 1941년 장제스의 국민군과 마오쩌둥의 공산군이 한 주일 동안 격심한 내전으로 큰 손실을 가져왔다. 미국은 군사지원단을 중국에 파견하고 중국 전선에 공군을 지원하였다. 1944년 전쟁상황이 연합군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중국군에 막대한 전쟁물자가 도착하고, 일본의 공세가 약화하자, 중국군은 1945년 4월부터 총반격을 시작하였다. 소련은 적군을 시베리아에 재배치하여 8월에 만주를 점령하고 만주국을 해체하였다. [종전 후]에 쌍십협정을 체결하였으나, 국공내전이 재발하고 공산당이 승리하여 1949년 10월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국민당은 패하여 1949년 12월 타이완으로 정부를 옮겼다. 일본은 1978년 베이징과 [평화 우호조약]을 체결하였고, 1990년대 초부터 중국과 경제교류를 시작하였다. 2001년 12월 중국이 WTO에 가입하여, 일본은 중국에 무역과 투자를 확대하였다.
(문명사 연재 30. 20세기의 역사적 교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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