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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사 연재 28. 20세기의 정치철학 (Continued 1)/PhD Hugo W. Kim

양곡(陽谷) 2023. 9. 23. 21:42

문명사 연재 28. 20세기의 정치철학 (Continued 1)

(d) 실존주의 (Existentialism)

실존주의는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유럽을 풍미하던 사상적 흐름으로, 장 폴 사르트르와 그의 동료들(사이먼 보부아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알베르 카뮈 등)에 의해 점화되어 문화 운동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실존주의의 개념은 프랑스의 사르트르나 카뮈 등이 저술을 통하여 잘 표현하였고, 문학과 예술의 동인들과 연계되어 1970년대 중반에 지배적인 사상으로 유행하여 그 문화적 이미지는 일상이 되었다. 실존주의 선구자인 키르케고르와 니체의 저술에서 존재의 문제가 잘 나타나 있다.

쇠렌 키르케고르: 존재의 단일성은 윤리와 종교적 믿음의 갈등에서 온다. 신의 계시는 믿음의 정열로 정당화하여 (객관적 이성이 아닌) 불확실성을 초래한다. 실존은 인간의 주체성에서 출발하며, 내가 있다는 전제로부터 자아와 세계를 연결한다. 실존하는 개인은 관객이 아니라 행동하는 주체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실존은 도덕적 자율과 도덕법 밖의 자율 간의 구분에서 철학적 문제로 출현하며 그 성패를 측정하는 표준이 있어야 한다. 기독교는 허무주의에 대한 기본적 해독제이다. 만일 신이 죽는다면, 인간이 매달릴 아무것도 남지 않으므로, 신이 없는 우리의 존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1927)에서 현재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실존이며, 실존은 죽음에 의해 한정되므로, 현재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 존재의 시간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 실존은 본질의 예시가 아니며, 일반적 또는 공식적으로 미리 준비된 체제에 의하여 결정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만들어지는 존재 그 자체이다. 실존주의는 보편주의적 규범(본질)에서 해방되어 개인의 자유, 책임, 주체성을 중요시하는 철학적, 문학적 흐름이며, 자기 삶을 통해 주체성을 회복한다고 강조한다. 실존적 자유: 인간은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주체적 존재이다. 즉 인간은 단순히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자기 삶의 실천자로서, 실존이 본질을 결정하는(본질로부터 탈출하는) 실존적 자유를 가지고 있다. 실존주의는 규범적 윤리학(가치이론)을 개발하지 않지만, 자신이 만든 실존의 개념으로부터 어떤 가치이론과 도덕 심리학에 접근한다. 실존적 도덕 심리학은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고 도덕적 양심에서 허위, 자기기만, 위선의 근원을 밝혀낸다.

[장 폴 사르트르(1905-1980)] 1924년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여 철학, 사회학, 심리학을 전공하였고, 1929년 1급 교원 자격시험에 합격한 후 군 복무를 마치고 1931년 파리 근교 고등학교의 교사가 되어 1945년까지 재직하였다. 제2차대전에 참전하고 포로가 되어 1941년 석방되었고, 레지스탕스에 참여하면서 알베르 카뮈를 알게 되었다. 1945년 종전 후 잡지 <현대>를 창간하여 실존주의를 전파하면서 다채로운 문필활동에 종사하여다. 1964년 노벨 아카데미는 그에게 문학상을 수여하였으나 거절하였다. 여성 운동가인 시몬 보부아르와는 일생의 동반자로 지냈다.

존재와 무(1943): (1) 즉자존재(in-itself)는 <존재> 그 자체로서 보이는 대로가 전부이고, 대자존재(for-itself)는 <의식> 그 자체로서 자기 자신과 대면할 수 있으며, 대타존재(for-other)는 <인간> 그 자체로서 타인과 대면하는 것이다. 즉자존재와 대자존재는 상호 배타적 특성을 가졌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벗어나 외부를 지향하는) 의식을 가진 개인으로서 항상 상황에 있는 존재이지만, 상황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사실성과 초월성의 혼합체로서, 선택과 책임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2) 의미를 부여하는 의식 활동이 중단되면 대자존재의 벌거벗은 본모습(본질)은 서로 갈등하고 투쟁하는 관계가 되어, 의식의 알몸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무(Nothingness) 자체가 된다. 존재는 즉자존재이며, 무는 대자존재의 의식 없는 알몸으로, 자아는 의식의 주체가 아니고 결과물이다. (3) 인간은 자유를 원하나 책임을 회피하여 (자기기만으로) 대중을 따라서 그 속에 숨는다. 타인들이 생각하는 기준으로 평균화된 삶을 사는 것은 타인이 바라는 것을 자신이 성취하여 인정받으려는 것이다. 이는 자기를 잃어버린 획일화된 삶을 사는 것으로서 타인은 비극이며 지옥이다. 자신의 삶을 살지 않으면 무책임한 타인(대중) 속에서 자신의 실존적 의미를 상실한다.

[알베르 카뮈(1913-60)] 카뮈는 프랑스계 알제리 이민 2세로 어려서 가난하게 살았고, 알제리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폐결핵으로 중퇴하여, 잡다한 임시직으로 전전하며 1935년 철학학사 과정을 마쳤다. 1935-39년 노동자의 극장을 설립하고, 알제리 공산당에 가입하여 사회주의적 작품을 쓰고, 좌익 성향의 기자로 활동하였다. 그는 제2차대전 초 반전주의자였으나 1941년 파리에서 독일군의 만행을 보고 레지스탕스에 가담하면서 소설 이방인(1942)을 출간하였다. 1943-47년 신문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1949년 폐결핵 재발로 은둔하면서 반항하는 인간(1951)을 발표하였다. 그는 공산주의에 대한 강한 비난으로 사르트르와 소원하게 되었다. 카뮈는 1957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방인]에서 어머니의 사후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식이나, 살인을 저지르고 반성하지 않는 죄인이, 사형을 선고받고 죽음에 직면한다. 우리가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삶의 부조리(죽음)를 의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페스트]가 퍼지자 사람들은 도피, 순응, 저항한다. 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삶의 윤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성실성을 지키는 것이다.

(e) 현상학 (Phenomenology)

오귀스트 콩트는 감각적 경험과 실험적 검증으로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실증주의 철학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실증주의에 반대하는 현상학자들은 모든 학문에 단일한 수학적 방법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으며, 각각의 학문에 적합한 인식의 원리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드문트 후설은 현상학은 다양한 현상 속에서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여 자아의 순수의식으로 환원하는 이론을 확립하였다.

[에드문트 후설(1859-1938)] 후설은 체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876년 라이프치히대학에 입학하여 2년 후 베를린대학에 전학하여 수학과 철학을 공부하였고, 1883년 비엔나대학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884년부터 동 대학에서 철학 코스를 공부하여 1887년 할레 대학에서 자격을 인정받아 철학 강의를 시작하고, 1901년 괴팅겐 대학으로 옮겨 철학을 가르치고 1912년 학술지를 창간하여 현상학 논문을 발간하였다. 1916년 프라이불크대학 정교수로 전근하여 1928년에 은퇴하였다. 그는 수학 박사이며 철학 교수로서 현상학을 새로운 분야로 정립하였다.

의식과 존재의 관계: 철학은 의식과 존재의 관계를 정립한다. 의식 현상의 본질은 대상을 지향하는 지향성에 있고, 의식을 가진 주관이 객관적 대상을 지향하여 인식할 때 인식된 대상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후설은 의식을 가진 주관이 대상을 직관하여 본질을 파악하려고 시도하였다. 인간의 직관은 지각, 표현, 상상, 판단, 느낌 등이 함께 자신에게 바로 주어지는 선험적 의식 행위이다. 이러한 의식의 행위와 객관적 실재가 현상이며, 현상학의 대상은 내재하는 직관이고, 목적은 그 행위의 본질적 구조와 이에 상응하는 객관적 실재를 파악하는 것이다.

현상학의 기본방법은 환원(Reduction) 이다. 직관은 의식의 대상에 대하여 똑바른 방향을 향하게 한다. 제1단계 본질적 환원은 의식 내용을 자유롭게 변경하여 가변적 요소를 제거하고 불변요소인 본질을 직관적으로 포착한다. 제2단계 관념적 환원으로 본질을 이해하는 수단은 본질과 본질 구조를 직관하는 것이다. 이 경우 하나가 다수를 형성하여 변화가 없는 다수의 본질은 동일하고 불변이다. 제3단계 초월론적 환원은 개개의 구체적 대상의 의식으로부터 순수한 본질의 초 경험적 영역으로 움직여서, 임시적 또는 돌발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하여, 본질과 본질적 구조를 파악하고, 자아의 [순수의식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마틴 하이데거(1889-76)] 후설이 현상학은 초월론적 의식의 개념이 이론의 중심에 있었으나, 하이데거는 존재의 의미에 관한 새로운 철학적 의문을 가졌다. 그는 서양철학이 플라톤 이후로 어떠하다(성질)는 뜻을 존재라는 개념을 써서 접근하려고 했으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하이데거는 이미 상정한 (존재의) 전제를 분석하는 것이 실재하는 대상을 탐구하는 것 보다 우선적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프라이부르크대학 총장으로 재직 중 나치 참여를 권유하는 연설을 하였다.

(f) 정신분석학 (Psychoanalysis)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의 연구와 관련된 한 세트의 이론과 치료기술로서 정신건강의 부조화를 치료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이 이론은 1890년대 초 오스트리아 신경과 의사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확립되었다. 정신분석학의 기본적 교리는 (1) 한 인간의 발전은 유전적 특성보다 흔히 어린 시절의 잊어버린 사건들에 의하여 결정된다. (2) 인간의 행위와 인식은 대개 무의식에 뿌리를 둔 비합리적 동기에 의해 결정된다. (3) 이러한 동기를 알게 하는 시도는 억압과 같은 방어장치의 형태에서 저항을 가져온다. (4) 의식과 무의식 간의 갈등은 노이로제, 신경적 특성, 불안, 우울증 등의 정신적 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 (5) 무의식적인 재료는 꿈이나 무 의도적 행위(버릇이나 혀의 미끄러짐)에 나타날 수 있다. (6) 무의식의 효과로부터 해방은 치료를 통하여 이러한 재료를 의식적 심리로 가져와서 성취한다. (7) 정신분석 과정의 중심은 전이로서, 환자가 어린 시절의 갈등을 재생하여 사랑, 의존, 분노의 분석적 감정에 투사하는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 프로이트는 체코(당시 오스트리아) 모라비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비엔나대학에서 수학하고 1881년 의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1885년 교수자격을 취득하고 신경병리학 직에 임명되어 1902년 비엔나대학 교수가 되었다. 1886년 그는 비엔나에 정신 진료실을 열었다. 1938년 프로이트는 나치 처형을 피하여 오스트리아를 탈출하고,영국에 망명 중에 사망하였다. 정신분석학을 확립한 프로이트는 협회를 이용하여 치료기술을 개발하였다. 프로이트는 초기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동-어머니-아버지) 3자 관계의 성적 역동성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점차 다양하게 분화되었다. 그는 분석과정에 중심적 역할을 하는 자아(ego), 초자아(super ego), 이드(id)의 3원적 기능을 구체화하였다. 무의식을 의식화하기 위하여 자아의 강도(ego strength)가 강해야 무의식적 저항을 다스려 의식의 영역을 넓힐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꿈의 설명(1899), 성 이론의 3 에세이(1905) 등 많은 저술을 하였다. 그의 이론은 임상적 사례연구이며 실험적 연구가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다.

[카를 융(1875-1961)] 융은 독일계 스위스인 의학 교수의 막내로 태어나 1895-1900 기간에 바젤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자격을 취득하여 취리히의 정신병원에 취직하고, 1909년 개업하였다. 융은 프로이트와 밀접한 호의와 직업적 연결로서 의사소통하며 6년간 협력해 왔다. 그는 무의식의 심리학(1912)을 출간하였다. 융의 심리학은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집단 무의식이 대립 속에서 끊임없이 조화를 향해 역동적으로 움직인다고 인식하였다. 1909년 미국 클라크대학 학술회의에 융이 초대되어 프로이트와 함께 참석하였다. 1913년 38세에 융은 무서운 무의식에 당면한 체험을 하면서,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들었다. 이 체험을 토대로 1915- 30 사이에 흑서와 백서의 콜렉숀을 각 한 권씩 만들었다. 1933-41 기간에 융은 취리히 폴리텍대학에서 심리학 교수로 강의하였다.

집단적 무의식: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개인적 차원에서 다루었으나, 융은 이를 문화적 속성으로 확장하고 인류 보편적인 무의식이 존재함을 밝혀 집단 무의식이라 하였다. 인식하지 못하는 삶의 진실이 집단 무의식에 있고, 그것이 꿈을 통해 삶의 목표를 알려준다고 융은 설명하였다. 그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모든 경험의 축적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전 인류에 존재하는 우성인자의 지배적 개념이 원형으로 무의식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집단 무의식에 존재하는 여러 원형이 자기의 의식과 상호작용하여 최종적으로 자기의 원형에 귀착한다고 융은 생각하였다. 자신의 개별 의식과 집단 무의식이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개성화 과정(Individuation) 또는 자기실현의 과정이라 하였다.

(문명사 연재 28. 20세기의 정치철학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