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와 관련된 정치와 시사

대한민국은 선거를 통해 탄생한 나라이다.

양곡(陽谷) 2026. 10. 6. 05:48

서울의 올림픽 공원 핸드볼 경기장에서 20-30 세대들이 중심이 되어 4개월을 넘겨 계속하고 있는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관하여 나라를 걱정하는 분들이 이글을 읽고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동복 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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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선거를 통해 탄생한 나라이다. 대한민국은 1947년 11월 14일자 유엔총회 결의에 의거하여 한반도의 38선 이남 지역에서 유엔의 감시하에 1948년 5월 11일 실시된 총선거를 통해 같은 해 8월 15일 수립되었다.  

북한지역에서는 그해 9월 9일자로 별개의 공산정권 수립을 선포했지만 유엔은 그해 12월 12일 채택한
총회결의 195(III)호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보통⁃직접⁃비밀⁃평등 선거”를 통해 수립된 “한반도의 유일합법 정부”라고 선포했다.

유엔은 이 결의에서 북한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을 하지 않음으로써 북한 정권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그 논거는 북한 지역에서는 유엔이 인정하는 “직접⁃보통⁃비밀⁃평등 선거”가 시행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선거는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담보가 되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문제의 선거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선거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부정선거’ 논란이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야기되어 온 ‘부정선거’ 시비가 지난 6월 3일 실시된 ‘전국 지방 선거’를 계기로 드디어 화산과 같은 대폭발을 일으켰다.

‘송파구 개표장’으로 사용되었던 올림픽 공원 핸드볼 경기장을 무대로 하여 지금 4개월을 넘겨서 지속되고 있는 ‘부정선거 규탄 시위’는 특히 이 나라의 미래 세대인 2030 세대가 주도하고 있어서 정계는 물론 국민의 차원에서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올공 시위’로 충격을 받은 정계가 2개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국회가 구성한 ‘특조위’와 정부에서 구성한 ‘특검’이다. 그러나, 이 “특조위‘와  ’특검‘의 결과에 대해서는 낙관보다 비관이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왜냐 하면, 이 ’특조위‘와 ’특검‘은 모두 지금 국회에서 절대 다수 의석을 무기로 삼아 무소불위의   ”입법독재“를 구사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입법만능주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결국 많은 국민들 사이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특조위‘와 ’특검‘으로 시간을 벌어 ’올공 시위‘의 김을 빼면서 ’투표지 부족‘ 사태를 손질하는 정도의 지엽적 선거법 손질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의 판사 겸직을 바꾸는 정도의 땜질로 수습하려 할 것이고 ”정치적 웰비잉“이 체질화되어 있는 국민의힘이 이를 수용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4개월 이상 지속되면서도 열기가 식지 않고 있는 ‘올공 시위’가 이를 용납할 것 같지 않다. ‘올공 시위’의 정신은 ”부정선거 재선거⁃당일투표 수개표“의 14자 구호에 담겨 있다. 즉, ”부정선거인 6.3 지방선거를 전면 재선거하라“는 요구와 ”사전투표를 폐지하고 개표는 수개표로 하라“는 요구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이 구호에는 ”6.3 전국 지방선거의 전면 재선거“ 요구와 함께 향후의 선거에서는  ①중앙선관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여 현직 법관의 중앙 및 지방 선관위원장 임명을 중단할 뿐 아니라 선관위 직원들을 전면 개편하며 ②사전투표를 전면 폐지하고 ③전자기기의 개표 업무 사용을 중지하는 대신 모든 개표를 수개표로 하는 등의 제도 개혁 요구가 함축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장기화되고 았는 ‘올공 시위’는 만약 ‘특조위’와 ‘특검’의 결과가 이 같은 전면적 개혁 요구를 외면하고 용두사미가 될 경우 부정선거에 대한 국민적 항의가 ‘올공’ 핸드볼 경기장의 울타리를 넘어서 전국화의 길로 비화하여 ‘제2의 4.19’를 지향하게 될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에 관해서는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역사의 교훈이 있다. 그것은 1960년 3.15 정부통령선거 때의 '4할 사전투표'의 선거부정 행위는 4.19 이후 수립된 허정 과도정권은 물론 그 뒤 실시된 7.29 총선거를 통하여 탄생한 민주당 정권 때까지도 실체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다가 1961년 5.16 군사혁명으로 등장한 군사정권에 가서야 전모가 드러나서 최인규와 이정재가 사형에 처해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올공'의 구호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 투표 수개표"의 결실도 더불어민주당의 '입법독재'의 산물인 소위 '특조위'와 '특검'을 통하여 구현되는 것은 사실상 무망하며 결국은 '국민 저항권'의 행사를 통하여 현 더불어민주당 정권을 퇴장시키는 혁명적 상황 전개가 선행된 뒤에라야 가능해 지는 것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 주고 있다. 앞으로 '올공'의 진화에 대해서는 그러한 관점에서 주시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李東馥
전국회의원 (15대)/자유대한원로회의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