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란 신사와 구름이란 낭만 - 이해우
어제의 비가 지상의 먼지를 씻어내고 간 자리, 세상은 촉촉한 여유를 머금고 숨을 쉽니다. 오늘 하늘은 참으로 근사한 정장을 차려입은 신사를 닮았습니다.
어제 약간의 비를 보내어 세상을 촉촉히 적신 여유가 천지에 가득합니다.
문득 칼릴 지브란의 문장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의 불안은 단지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통제하고 싶어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무언가를 억지로 붙들려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불안은 커지기 마련입니다. 통제라는 족쇄를 풀어헤칠 때, 비로소 하늘처럼 광활한 자유가 찾아옵니다. 저 구름을 보십시오. 제 몸을 억지로 가두지 않기에 저토록 풍성하고 자유로운 형상을 빚어낼 수 있는 것이겠지요.
뭉게구름
/ 이해우
마음이 무거워 고개를 들었더니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거야'
풍만한 가슴을 열어
안기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급했지?
무엇을 잡으려 했나?
당신의 그 낭만이
당신의 그 여유가
마음이 어느새 풀어져
당신에게 안깁니다
구름이 하늘을 한껏 꾸며 준 날입니다. 마치 신사의 정장 같으면서도 그 안에는 자유가 충만합니다. 하늘은 살이 좀 쪘는지 구름옷이 아주 풍성합니다. 흰 양복을 입고 선 맥도날드의 로날드 맥도날드 할아버지 같습니다.
오래전 받았던 편지의 글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한국을 떠났을 때, 나를 그리워하던 한 후배 여자애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보고 싶을 때면 종로 거리의 맥도날드 아저씨 앞에 서서 "형, 잘 지내?"라고 안부를 물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때부터 몸집이 좀 좋았습니다)
멋과 낭만, 그리고 절제된 매너를 갖춘 신사에게 숙녀의 시선이 머무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요. 오늘 저 푸른 하늘은 구름 정장을 하고 그 어떤 신사보다 당당하고 눈부신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섰습니다.
이때는 이런 시가 어울립니다. 나태주 선생님은 '너를 두고'란 시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물론 이 시는 나태주 선생님이 따님에게 주는 말입니다만, 신사가 숙녀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너를 두고
/ 나태주
세상에 와서
내가 하는 말 가운데서
가장 고운 말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가진 생각 가운데서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표정 가운데
가장 좋은 표정을
너에게 보이고 싶다
이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진정한 이유
나 스스로 네 앞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다.
그래서일까요. 구름이 멋진 날엔 하늘이 내게는 낭만적인 신사로 보입니다. 이 눈부신 멋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혹은 그녀)에게 '당신은 보는 눈이 좀 부족하군요'라는 가벼운 농담을 건네고 싶군요.
커뮤니티 센터 뒷마당, 탁구채를 휘두르면서도 나의 눈동자는 자꾸만 높은 곳으로 향합니다. 랠리가 멈춘 짧은 휴식 시간, 나는 서둘러 휴대전화의 렌즈를 들어올립니다. 하늘만이 아닌 정원의 풀과 나무와 돌과 기둥까지도 다 아름다운 오늘입니다.
살다가 마음이 조금은 무겁고 낮게 가라앉는 날, 오늘 담아 둔 이 찬란한 빛조각들을 꺼내 볼 것입니다. 꽃과 나무, 풀과 바람, 땀과 열기, 그리고 이토록 다정한 하늘. 오늘은 하늘이 건네는 다정한 악수에 내 마음을 온전히 맡겨 봤습니다.
오늘 캡처한 사진을 페친들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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