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그때 그겨울/ 재미작가 영화 김명희

양곡(陽谷) 2024. 12. 30. 21:51

그때 그겨울

햇살좋은 겨울나기 하는 날에
어머니는 밀가루로 풀을 쑤고
문살을 깨끗하게 정리해 놓으셨다
아버지는 솔로 풀을 바르고
문 크기보다 여유있게 자른 창호지
정성스레 얹어 슥슥 빗자루로 쓸면
바람막이 하얀문풍지는 아주 훌륭했다

손잡이 옆부분엔
책갈피에 눌러놓았던
은행잎 단풍잎 꽃잎을 놓아
그 위에 창호지를 덧붙혔다

그래도 미닫이문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쨍하게 매서운 찬바람은
그땐 정말 손시렵고 코시렵고 추웠다

절절끓는 구들장온돌 아랫목에
바삭거리는 하얀 무명이불 속으로
손과 발을 파고들여 놓으면
누구 발가락인지 맞닿아서
누구발일까 맞추느라 깔깔 웃었다

유기그릇에 담아진 하얀쌀밥과 국
조물조물 무친나물에 생선반찬은
몸도 따뜻해지고 마음도 녹았다
밤이되면 웃목 화로에 둘러앉아서
졸며 타고있는 숯불에 구워진 군밤과
파묻어논 고구마를 헤집으며 꺼내느라
늘상 재를 떨어뜨리곤 했다

아, 언제까지나 그리울꺼야
이제 그 시절은 멀리 날아가고
바람에 가슴 시려오는 날이면
창호지 한지에 시 한 수 그리고 있다

- 글 : 炅河 김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