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내가 사랑하는 제주/ 재미작가 김명희 2019

양곡(陽谷) 2024. 12. 28. 10:03

내가 사랑하는 제주

여행지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풍경들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멋진 공간에서 하루라도 쉼을 갖는 행복은, 낭만과 설레임을 안겨주는 여행의 즐거움이다.
이런 소소한 감동과 행복이 쌓이고 쌓여지면, 추억을 더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되고, 행복했던 기억들과 추억들은 남은 생애에서 크고작은 힘든일이 온다 해도 살아내고 버텨내는 힘이 된다.
행복은 나침반같아서 어떤때에 내가 살짝 힘나는 기분이 났었는지를 메모해두면, 내 감정패턴이 보인다.

1
제주의 봄은 눈부시다. 에메랄드빛 푸른바다와 푸른하늘에 하얀물감으로 흩뿌린듯한 새털구름.
새하얀 감귤꽃밭과 메밀꽃밭과 마늘밭과 점점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청보리밭과
천연의 울창한 숲과 낭만적인 오름.
한라산길 진분홍철쭉길에 살랑살랑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은 해안도로의 거대한 풍차들을 멋스럽게 돌린다.
바다 위에 점점이 떠있는 그림같은 고깃배들. 비릿한 바다내음과 해안가 카페의 커피향이 어우러진 묘한 이색적인 매력을 갖춘 어장풍경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시편이다.

2
제주의 밤하늘은 도심과는 다르게 맑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은 별을 관측하기가 좋다.  서귀포시 산중턱에 위치한 천문과학문화관에서 망원경으로 우주의 별들을 관측한다. 별빛누리공원에서는 7년만에 찾아왔다는 별똥별이 바로 내 머리위에까지 내려와서, 몹시 흥분했다.
산을 내려오면서 밤하늘 달아래 무리지어 핀 달맞이꽃은, 못 하나 가슴에 박힌채로 살아가는 제주섬의 슬픈이야기처럼 처연한 모습이다.

3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제주가 4월이면 온 섬이 슬픔에 잠긴다. 아픈 역사가 숨겨져있는 섬. 도민 열명 가운데 한명이 유족이라고 하고,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들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4.3사건의 이야기다.

아픈 곳 /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되는 / 상처난 곳 / 그 곳으로 온 몸이 / 온 지체가 움직인다 / 한 지체가 /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 고통을 겪는다

섬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면서, 섬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연과의 끊임없는 싸움과 고된 노력과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었다.
제주 바다의 해녀들은 오랜세월에 걸쳐 일본어선에 납치되어 가는 남편들을 대신해서, 험한 자연환경 속에 생계를 유지하는 어려움을 꿋꿋함으로 살아온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이들은 고통의 운명을 함께 이해하며 서로 협력하는 공동체의 정신을 보여준다.

4
‘제주’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검은돌’ 현무암이다. 구멍숭숭한 검은 돌. 살아숨쉬는듯 소리들리는듯 한데 까맣게 굳어버린 검은돌. 마치 제주섬 해녀의 마음이다.
거친 바다의 바람을 막이하는 돌담은 밀물 썰물 차에 따라 들고나는 물고기들의 가두리 ‘원담’역할을 하고, 밭과 밭의 경계 ‘밭담’역할을 하고, 무덤두른 산담과 동물울타리 ‘잣담’의 역할을 해주면서, 검은 돌담길이 이어진다. 이러한 돌담은 단순한 경계를 넘어, 공동체의 삶을 지켜주는 상징적 존재다.
밭과 밭, 올레와 집, 집과 집, 해안가와 중간산지대로 끝없이 곡선으로 연결하는 검은선 파노라마의 흑룡만리가 연출된다.

행복은 우리가 사랑 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 / 제주섬의 슬픔과 해녀의 아픔 / 하늘과 산과 오름과 바다와 검은돌 / 숲과 꽃과 목초 / 이 모든것들을 /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