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유병옥
긴 여로 거친 호흡
연무에 내빝기도 했지만
미새 꽁지 동그라미
그리기도 했었다
버드나무 파르르
숨결 열려도
삶은 언제나
꽃구름 언저리
에라 태초는 무극이다
//폐친 유병옥 시인의 시다. 윤동주의 '서시'를 모두 알지만 '서시'의 의미를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서시란 책의 첫머리에 서문 대신 쓴 시 또는 긴 시에서 머리말을 의미한다. 그러니 서시를 이해하면 시집 한 권에 담긴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하겠다. 각설하고 '긴 여로', '호흡' 이란 시어에서 짐작이 가는 것은 삶과 그것을 증명하는 호흡이다. 거친 호흡을 내쉬니 삶이 만만치 않았다. '버드나무 파르르 숨결 열려도'란 구절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꽃구름 언저리'의 은유는 열심히 살았지만 목적한 이상향엔 근처에 까지 간 것 같은데 그 안에 들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 연의 '에라 태초는 무극이다' 란 구절이 재미있다. 아마 페친들 모두는 이솝의 '여우와 포도' 이야기를 알 것이다. 어느날 여우는 잘 익은 포도가 달린 나무를 보고 뛰어올랐지만 높아서 도저히 딸 수가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자 여우는 포기하며 하는 말이 '흥, 저 포도는 시어 터져 맛이 없을 거야!'였다. 우리가 삶의 끝에 도달한 날 심정이 그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걸 시인은 '에라 태초는 무극이다'라 하였다. 갈갈갈. - 이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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