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오세영
나무가
꽃눈을 피운다는 것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찬란한 봄날 그 뒤안길에서
홀로 서 있던 수국
그러나 시방 수국은 시나브로
지고 있다
찢어진 편지지처럼
바람에 날리는 꽃잎
꽃이 진다는 것은
기다림에 지친 나무가 마지막
연서를 띄운다는 것이다
이 꽃잎 우표 대신, 봉투에 부쳐 보내면
배달될 수 있을까
그리운 이여,
봄이 저무는 꽃 그늘 아래서
오늘은 이제 나도 너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다.
//발이 없는 것들은, 걸을 수 없는 것들은 기다림의 은유에 적합하다. 나무가 그런 은유의 소재다. 시인은 나무의 기다림에 꽃눈을 적시하여 그 기다림이 사랑하는 사람임을 더했다. 수많은 꽃들이 피고 기다림의 간절함은 더 짙어진다. 그럼에도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는다. 꽃잎이 떨어진다. 그는 꽃잎이 마치 그리운 이에게 가는 편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봄이 간다. 그리운 이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기로 한다. 서정시가 아름다운 것은 그 안에 서사(epic)가 있어서다. 이 시에도 사랑의 서사가 있다. - 이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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