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와 관련된 정치와 시사

[정치논평에서의 가치개념의 도입-시대정신(時代精神)의 독해]신평

양곡(陽谷) 2023. 12. 3. 23:50

[정치논평에서의 가치개념의 도입-시대정신(時代精神)의 독해]

소위 ‘조국사태’를 계기로 나는 정치논평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내 논평은 어떤 점에서 약간이라도 합리적 근거를 가지는 것일까? 20년간 헌법학자로서 쌓아온 학문적 식견, 수십 년간 매일 영어방송을 시청하여 얻어진 개방적 사고체계, 여러 나라에서의 장기체류경험이 안겨준 보편적 시각, 시를 쓰는 사람이 갖는 공감적 표현의 체득 등등이 생각난다.

이에 더하여 나는 한국의 정치현실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주목한다. 그중에서도 박성민 씨의 글은 반드시 찾아 읽는다. 한국의 정치현실에 대한 귀중한 인사이트를 얻는다. 그러나 조금 아쉬울 때가 있다. 왜 박성민 씨를 포함하여 정치논평자들은 정치의 현실만 다루지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한사코 언급을 삼갈까?

그런 면에서 나는 지금의 한국 정치에 어느 정도 가치개념을 도입하여 바라보아야 한다고 믿는다. 거대한 국민이라는 집합체는 집단지성의 힘으로 보다 더 나은 국가와 사회를 이룩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이 현상을 논평에 어느 정도 수용해야 보다 정확한 시각이 주어지리라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지금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부정적인 어둠으로 작용하는, 그래서 우리 공동체가 향후 마땅히 배제해 나가야 하고, 또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배제될 세 가지 요소를 지적하고자 한다.

1. 운동권 세력의 기만성: 이 세력은 반일을 내세운다. 그것은 그들의 본질적 정체성이자 거의 생명 같은 것이다. 그리고 반일이라는 동전의 뒷면은 친중국, 친북한이다. 아니, 뒷면을 위해 앞면의 반일을 짐짓 내세우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의 기본은, 조선 왕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일본은 그 고상한 조선을 멸망시키고 조선의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그들은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인류사에서 노예제를 취한 나라에서 노예의 비율은 대체로 전체인구의 10% 정도였다. 그러나 조선조에서는 그 몇 배나 되었다. 그리고 특이하게 노비는 전부 동족이었다. 또 노비에게 ‘개조지’ 같은 상스런 멸칭을 붙여, 가령 미국에서의 노예제와도 구별되는 극단적인 차별을 행하였다. 일제 36년의 무단통치 질곡에 묶이고 민족적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안았다. 그러나 과연 객관적 증거로 나타난 사실을 두고 볼 때, 운동권 세력의 정신적 기반인 위정척사의 기운이 왕성하던 조선왕조의 통치와 일본의 식민통치 중에 어느 것이 더 민중의 삶에 억압적이고 폭력적이었을까?

2. 기득권세력의 부패: 한국과 같이 인종적, 문화적으로 단일한 사회에서는 끼리끼리 챙겨주는 연고주의의 병폐가 아주 크다. 그만큼 기득권세력이 형성되기 쉽고 또 그 세력의 부당한 이익수취의 정도가 크다. 이 기득권세력은 민주당보다는 국민의힘에 더 많이 분포한다고 본다.

3.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 세력의 위험성: 그가 한결같이 부당한 축출에 대한 설욕을 내세우는 외에 그의 사고체계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실력주의, 능력주의다. 이것은 시대에 많이 뒤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정치세력은 불가피하게 여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제도화 쪽으로 나아갈 것이다.

정치논평을 할 때, 지금 우리 공동체에 짙게 드리운 세 가지의 어둠을 걷어내고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의 가치를 우선시키려는 것이 합당하다. 이것은 바로 이 방향을 향하여 움직이는 국민의 집단지성의 힘에 대한 신뢰이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물결이 아니라 강을 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시대정신’이 읽히고, 그 ‘시대정신’을 주목할 때 논평에서 하는 예측의 적중률이 높아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