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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사 연재 22. 19세기 유럽의 경제와 사회/ PhD. Hugo W. Kim

양곡(陽谷) 2023. 9. 5. 14:48

문명사 연재 22. 19세기 유럽의 경제와 사회

산업혁명으로 산업의 새로운 제조과정이 1760년대 수준에서 1840년대 수준으로 변화하여 섬유, 기계, 화학, 철강 등이 공장체제로 발전하였다. 영국은 1824년 기술자 이민을 허용하고, 1843년 기술이전에 대한 모든 제약을 해제하였으나 대륙으로 기술이전에 시간이 걸리고 기술과 경험이 부족하여 모방 과정에 문제를 초래하고, (노동-자본-자원의 불리한 여건으로) 선진 기계의 수요가 부족하여 새로운 기술의 이전이 지연되었다. 대륙 국가들은 교육과 훈련, 연구개발, 행동을 통한 학습, 특허권의 매입 등으로 기술적 간격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 후진한 경제에서 수입대체는 흔히 틀린 기술을 다른 분야에 투자하고 비교우위를 상실하며, 규모의 경제가 부재하고, 이윤 없는 생산으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본 연재는 (a) 인구와 농업 (b) 기술 변화와 산업화 (c) 새 영토의 상업과 수송 (d) 재정 금융과 산업혁명 (e) 발전하는 시대의 대중사회 순으로 기술한다.

(a) 인구와 농업

지구상의 인구는 1800년대에 10억이 되었고 1920년 20억 1960년 30억 2011년 70억 2021년 79억으로 증가하였고, 2045년에 90억이 될 전망이다. 세계인구는 1750-1950 기간에 유럽과 아메리카에 완만한 증가가 있었고 1950년대 이후에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에 집중하여 폭발적으로 인구가 증가하였다. 2021년 6월 현재 아시아 인구는 41.8억(세계인구의 59.2%)으로 중국은 14.4억(18.3%), 인도는 13.9억(17.6%) 이다. 세계의 절대 인구는 증가하지만, 모든 지역에서 인구의 증가율은 감소할 것이며, 부유한 국가의 연간 인구성장률은 이미 감소하고 있다. 인구 성장의 요인은 고 출산 저 사망률에 있으며, 집단이민 인구의 증감이 부차적인 요인이다. 출산이나 사망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시대별 지역별로 상이하여 다음에서 인구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유럽의 인구: 1800-1900 기간에 유럽 인구는 [1800년 1.5억, 1850년 2.1억, 1900년 2.9억]으로 100년 동안 1.93배가 증가하였다. 그중 영국은 [1,090만, 2,090만, 3690만], 프랑스는 [2,690만, 3,650만, 4,070만], 독일은 [2,450만, 3,170만, 5,060만], 오스트리아-헝가리는 [2,330만, 3,130만, 4,700만], 이탈리아는 [1,810만, 2,390만, 3,390만]으로 증가하였다. 이 기간에 인구증가는 영국 3.38배, 프랑스 1.51배, 독일 2.06배, 오스트리아-헝가리 2.02배, 이탈리아 2.02배에 달하였으며, 그중 인구증가율은 영국이 3.38배로 가장 높았고, 프랑스가 1.51배로 가장 낮았다.

도시화: 산업혁명의 중요한 결과의 하나로, 농촌의 노동력이 도시로 집중하여 급격한 도시화를 이루었다. 1800년 유럽에서 10만을 초과하는 도시는 23개뿐으로 총인구 550만이었으나 1900년에는 135개 도시에 총인구 4,600만이 되었다. 1801년 총인구의 17%가 도시에 거주하였으나 1851년에 35%, 1891년에 54%가 도시에 거주하였다. 유럽 각국에서 다른 시기에 농업이 기계화되고 노동력이 도시로 유입되어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였다.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면서 교외거주자가 증가하여 1861년 런던의 교외거주자는 인구의 13%에서 1891년 25%로 증가하였다. 도시 인구의 증가로 공중위생의 결핍, 하수처리의 누적, 빈번한 질병, 범죄, 절망적 빈곤 등의 문제가 발생하여 공공보건 운동이 일어났다.

사망률: 1750-1800 기간에 사망률이 감소하였고, 흉년 질병 전쟁이 감소하여 사망률도 계속 낮아졌다. 유럽은 1830-37 기간에 콜레라가 발생하여 프랑스에서 10만, 영국에서 5만 이상 사망하였다. 그 이후에도 1847-49년과 1851-54년에 발생하였고, 1855년에 재발하여 크리미아 전쟁에서 병력손실을 크게 가져왔다. 유행병 예방을 위하여 위생 코드를 수립하고 위험한 여행자를 방역 격리하였다. 영국에서는 1830년대에 박애주의자, 의회주의자, 여타 동조자들이 위생개혁 운동을 전개하여, 위생조건과 도시 행정을 향상하고 도시환경을 개선하였다.

농업과 의학의 발달은 사망률을 광범위하게 낮추었다. 1851-1860 기간과 1901-1910 기간의 1,000명당 [평균 사망률]을 비교해 보면, 영국은 22.2명에서 15.4명으로, 프랑스는 24.0명에서 19.4명으로, 독일은 26.4에서 18.7명으로 감소하였다. 프랑스 남성의 10,000명당 [평균 생존자]는 1801-07년과 1900-02년에 1세의 경우 7,930명과 8,410명 (+480명), 20세의 경우 5,853명과 7,310명 (+1,457명), 60세의 경우 2,870명과 4,179명 (+1,300명)으로 100년 사이에 평균 생존자 수가 모든 연령대에서 많이 증가하였다. [평균 기대수명]은 영국의 경우 1838-54년과 1901-10년에 남성은 39.9세와 48.5세 (+8.6년)이며, 여성은 41.8세와 52.3세 (+11.5년)이며; 프랑스의 경우 1817-31년과 1908-13년에 남성은 38.3세와 48.4세 (+10.1년)이며 여성은 40.8세와 52.4세(+11.6년)로 모두 증가하였다.

출생률은 인구 1,000명당 연간 출생하는 총수로서, 특정 국가의 출생 인구에서 사망인구를 빼면 인구증가율이다. 일반적으로 제1단계는 산업화 이전의 저개발 사회에서 사망률과 출생률이 모두 높아 인구는 안정적이다. 제2단계는 개발된 국가에서 식료품 보급과 위생의 개선으로 사망률이 하락하여 기대수명이 증가한다. 제3단계는 피임수단의 발달, 임금상승, 도시화, 고역 농업의 감소, 여성 교육의 증가, 아동노동의 감소, 부모의 교육투자 증가 등으로 출생률이 급격히 하락한다. 제4단계는 출생률이 감소하여 대체인력 수준 이하로 추락하고, 사망률이 감소하여 인구가 노령화된다. 출생률은 [결혼율]과 관련되어 있다. 프랑스는 1811-20 기간에 인구 1,000명당 새로 결혼한 사람은 연평균 15.9명이며 그 수는 상당 기간 유지되었다. [출산율]은 39세 미만의 기혼여성은 5년마다 2자녀를 출산하였다. 프랑스의 경우 귀족 가정의 평균 자녀 수는 1650년 6.15명에서 1800년에 2.0명으로 감소하였다. [출생률] 인구 1,000명당 연평균 출생자는 1908-12 기간에 영국 24.9명, 프랑스 19.5명, 독일 29.5명, 오스트리아 31.9명, 이탈리아 32.4명, 러시아(유럽) 45.6명이었다. 프랑스는 60세 이상 생존자가 1,000명당 71명(1778)에서 124명(1901)으로 증가하였다.

이민: 이주비용 감소, 이주 혜택 증가, 이주 장벽 완화로 인해 집단 이민이 발생한다. [18세기] 프랑스의 캐나다 이민자는 1763년 5.6만에서 1800년 10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영국은 아메리카 대륙에 1715년까지 25만 명, 1800년까지 5백만 명이 이주하고 그중 5만 명(1%)은 범죄자였다. 독일은 1776년까지 20만 명이 미국에 이민하였고,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한 용병 가운데 17,000이 1784년에 미국에 영주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1800년까지 57.5만 명을 시베리아로 이주시켰고, 스위스는 30만 명을 인접 국가에 용병으로 보냈다.

[19세기] 1841-80 기간에 유럽인 1,300만이 해외로 이주하였으며, 그중 80%가 영국 이민자들이고 50%는 1850-70 기간에 일어났다. 연평균 유럽 이민자는 1875-80 기간에 28만, 1880-85 기간에 68.5만, 1885-90 기간에 78만으로 증가하였다. 1871-1914 기간에 3,400만 유럽인이 신세계로 이주하였고, 그중 2,500만이 영주하였다. 1880-90 기간에 영국이민은 감소하고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의 이민이 증가하였으며, 1890년부터 동남 유럽인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인)이 이민을 시작하여 20세기 초부터 이들이 유럽이민의 주류를 이루었다.

[국가별]로 보면, 영국은 1841-45년에 총 40만, 1846-50년에 총 103만으로 해외로 이민이 증가하였고, 1901-15 기간에 매 5년 총이민이 117만, 167만, 179만으로 증가하였고 그들 50% 이상이 미국 이민이었다. 독일은 1841-45 기간에 총 5.4만에서 1846-50 기간에 총 18.2만, 1851-55 기간에 총 37.4만, 1881-85 기간에 총 85.7만으로 증가하였다. 독일의 산업화와 경제적 확장으로 이민이 감소하여 1890년 이후에는 매 5년간 총 15만이 해외로 이민하였고. 1870-1910 기간에 총 280만이 이민하였다. 프랑스는 1870-1910 기간에 알제리, 북아메리카, 아르헨티나 등지로 최소한 80만 명이 이민하였다. 이탈리아는 19세기에 이민이 계속 증가하여, 1906-10 기간에 총 179만, 1910-15 기간에 총 155만이 해외로 이주하였다.

유럽 농업의 변화: 농업 인구: 유럽의 인구는 러시아를 포함하여 1700년에 1.2억 1800년에 1.9억 1900년에 4.0억으로 증가하였다. 1800년대까지 유럽의 인구는 주로 농촌의 성장에 있었으나, 1850년경부터 농업사회로부터 도시산업사회로 인구가 이동하였고, 지역에 따라 4가지 발전형태를 볼 수 있다. (1) 프랑스는 1850년경 농업 인구는 총인구의 50%로 안정적이며, 1900년경 총인구의 33% 1950년경 25%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2) 서부 유럽(프랑스제외)은 19세기에 인구가 계속 성장하여 도시와 해외로 이주하였다. 독일의 농업 인구는 1871년 1,870만(총인구의 45%) 1895년 1,850만(총인구의 35.5%)을 유지하였다. (3) 동부유럽과 발칸은 19세기에 인구가 계속 증가하였으나, 서부유럽처럼 도시 집중이나 해외 이민이 많지 않았다. (4) 지중해 국가들은 출생률이 높아 인구 과잉의 문제가 있었다. 1850-1950 기간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인구는 2배 미만으로 증가하여, 농업 인구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헝가리의 농업인구는 1890년 82%이고 1900년에 80%로 미미하게 감소하였다.

농업인구의 변화는 3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1) 급속히 성장하는 인구를 농업이 흡수할 수 없어, 공업과 상업이 급격히 번창하는 도시로 농업인구가 이동하였다. 그러나 산업화가 미진한 국가에서는 20세기 전반까지도 농업사회에 머물렀다. (2)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조그마한 변화는 농촌 가정의 평균 인원수가 변하여 생긴 것이다. 헝가리, 슬로바키아, 남부 유럽의 농업인구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3) 19세기에 농업에 종사하는 절대 인구는 크게 변화하지 아니하였다. 영국의 농업인구 비율은 19세기 후반에 서서히 감소하였으나 농업 절대인구는 급격히 감소하지 아니하였다. 이베리아반도에서 라틴아메리카로 이주하여 인구가 감소하였으나 곧 반전되었다. 서유럽 지역에서 농업인구가 안정되는 동안, 인구가 초과하면 노동력을 추가 투입하여 농업생산을 증진하고 산악지역이나 저지대를 경작하였으며, 인구가 감소하면 기계화로 노동력 절감 수단을 강구 하였다.

농토와 정착: [서부 유럽] 대규모 농지개척은 현대기술이 농업생산에 도입되기 전에 완성되었다. 네덜란드는 해안의 저수면 지대를 간척지로 만들어 농지는 1833년 1.9백만 헥타르에서 1900년 2.1백만 헥타르 1950년 2.4헥타르로 증가하였다. 스칸디나비아는 급속한 인구증가와 인클로저 운동으로 1800년 전후하여 농지 개간이 이루어졌다. [동부 유럽]은 19세기에 경작지가 확장되었다. 발칸지역은 저지대와 고지대에서 농지를 크게 확장하였고, 다뉴브 지역은 티차강의 수위가 다뉴브강보다 높아 그 물을 막아 헝가리 동부 평원으로 돌려 농토에 관개하였다. [남부 유럽] 이탈리아는 북부 평원지역에서 수로를 만들어 농지에 관개하고 중부와 남부의 고지대에서도 관개하였다. 농업 관개시설은 노동력을 많이 흡수하였다. 이베리아반도에서는 무어인의 집약적 경작방법을 버리고, 특권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가축사육으로 전환하였다. [공동재산권 철폐] 반-불모지의 넓은 목장 지역이 공동 목초지에서 퇴출하여, 공동체 재산권이 자연히 철폐되었다. 자유주의는 토지의 경제적 이용에 장애가 되는 목초지의 집단소유를 거부하여, 공유토지 대부분을 개인에게 매각하였다. 일반적으로 서부와 남부유럽의 농업 가정은 산개하여 정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농업혁명 방법과 수단: 연재 17에서 영국의 농업혁명을 논하면서 윤작 체제, 인클로저 운동, 농업기구의 발전, 토양의 개선, 시장의 발달, 가축의 선별적 번식 등을 언급하였다. 농업혁명은 여러 가지 요소가 투입되어 1800년경 농업 생산성은 매년 1% 성장하였고, 1900년대까지 연평균 0.5%에서 2%까지 성장을 유지하였다. (1) 인클로저와 경작체제: 영국은 1760-1820 기간에 여러 개의 작은 농지, 목축지, 유휴지를 통합하여 하나의 큰 농장을 만들어 1인 또는 소수가 소유하고, 통합되지 못한 산간이나 저지대는 목초지로 제한하였다. 이로 인하여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북부 공업지대로 이주하였다. 농지의 통합은 규모의 경제로서 윤작체제의 선행조건이었다. (2) 새로운 작물과 개선된 윤작: 새로운 작물의 유입은 지중해 지역의 큰 혜택이었다. 레몬, 오렌지, 사탕수수가 전파되고 식민지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통해 들어온 작물로서 순무, 클로버, 사료작물 등 여러 종류이며 특히 감자, 옥수수, 토마토, 담배 등은 유럽에 널리 퍼졌고, 사탕수수는 유럽에서 아메리카에 전파되었다 (연재 12의 식민지 작물과 목축 참조). 작물을 밀-순무-콩-클로버 순으로 윤작 하여 토양이 질소성분을 유지하고, 잡초를 억제하며, 밀과 보리 등 주 곡물을 휴경 없이 생산할 수 있었다. (3) 농기구 개선: 수작업이나 가축의 힘으로, 모터의 힘으로, 기계화로 농업기구가 발전하였다. 로더함 보습을 부착한 네덜란드 쟁기는 기능이 좋아, 영국의 농장에서 1770년경 사용하고 미국과 프랑스에 전파되었다. 씨를 파종 수확 탈곡하고 까불어 골라내는 작업을 하는 농기구는 1850년 이후부터 새로운 동력을 이용하여 기계화하였고, 1900년까지 주로 말을 동력에 사용하였다.

(4) 동력 기계: 증기기관과 내연기관을 사용하여 땅을 파고 흙을 고르며, 파종, 관개, 비료살포, 잡초제거, 수확, 탈곡, 수송하는 전 과정을 기계화하였다. 트랙터 이외에도 여러 가지 농업을 위한 수송수단이 발전하였다. 농업기계의 새로운 기술은 20세기에 큰 변화가 없었다. (5) 토양화학과 인공비료: 18세기에 농작물 실험은 농작물의 윤작과 함께 질소를 축적하는 콩과작물 재배와 동물분뇨의 집중사용으로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정도였다. 1839년 영국은 구아노(천연비료)를 페루로부터 수입하여 사용하였으나 1870년경에 소진하여 중단하였다. 1927년 영국의 얼링 존슨은 질소비료를 생산하였고, 1936년부터 미국에서 상용화되었다. (6) 해충과 병균: 1840년 콜로라도 감자 비틀은 주요 해충으로 큰 피해를 주었고, 1950년대까지 구충제로 박멸하였다. 포도나무 뿌리 진디는 1860년대부터 프랑스의 포도원을 덮친 해충으로 현재까지 제거방법이 없다. 포도원의 병균으로 언시눌라는 잎과 열매를 침범하여, 보톡스 용액으로 이른 봄부터 살포하여 예방하고 있다. (7) 유전적 개종: 1890년대 영국의 존 가르톤은 농작물의 잡종 교접으로 번식을 실험하였다. 18세기 로버트 베이크웰은 가축사육에서 이종교배로 새로운 우량종을 개발하였다.

농업과 산업화: 경제발전을 위한 농업의 역할: (1) 국민소득에 기여: 농업의 번창은 국가 경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중요하며 국민소득을 창출한다. 인도는 1960-2019 기간에 국민총생산의 평균 27.83%가 농업에서 왔다. (2) 식품공급의 원천: 경제발전 수준에 상관없이 농업에서 자급자족으로 식량을 조달해야 한다. (3) 원자재의 기본요건: 농산물의 부족은 산업생산에 충격을 주고, 결과적으로 물가를 인상한다. (4) 잉여의 준비: 농업 분야의 발전은 여유농산물을 가져오고 농업 수출을 증가한다. (5) 인력의 이동: 농업은 많은 노동력을 흡수하며, 농업의 발전으로 잉여인력이 비농업 분야로 이동한다 (농촌 실업자들이 도시의 공장지대로 이주). (6) 사회 간접자본 건설: 농업발전은 도로, 교량, 시장, 창고, 철도, 우편 등을 위한 인프라 건설을 요구한다. (7) 자본 부족의 구제: 농업의 발전은 선진국들의 자본 부담을 감소해준다. (8 ) 자본형성에 기여: 경제발전의 초기 단계에서 농업은 자본형성의 근원이 된다.

공업발전에 농업의 영향: (1) 농업혁명과 인구: 고 출산 저 사망으로 인구가 증가하면 의식주의 수요가 늘어 농업의 생산이 증가한다. 영국의 경우 1700-1800 기간에 농부 1인당 생산량이 100% 프랑스는 75% 증가하였다. 1840-1900 기간에 농업 생산성이 러시아는 30% 오스트리아는 45% 독일은 190% 증가하였다. (2) 농업에 잉여가 생기면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 잉여로 공산품을 구매하려는 요구가 생겨 수요가 증가하고 따라서 제조업의 생산이 증가한다. (3) 농업과 철강산업: 농업혁명이 진행 중인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철제품의 수요가 현저히 증가하였으나, 비농업 분야의 철제품의 수요는 낮았으며 서서히 증가하였다. (4) 산업화의 재정지원: 산업혁명의 기업가 대부분은 농업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 유럽국가에서 소농과 대지주는 토지에서 오는 임대소득으로 자본을 축적하여 산업에 투자하였다. 일반적으로 자본은 농업 잉여로부터 축적되며, 투자 자산의 안전과 투자이윤의 관리를 위하여, 저축을 산업투자로 전환하기 전에, 금융 제도가 개선되고 확장될 필요가 있었다.

TO BE CONTINUED

(b) 기술 변화와 산업화
(c) 새 영토의 상업과 수송
(d) 재정 금융과 산업혁명
(e) 발전하는 시대의 대중사회

REFERENCES

Habakkuk, H. J. and M. Postan, eds. The Cambridge Economic History of Europe, Volume VI, The Industrial Revolutions and After (Part I & II).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5.

Kim, Hugo W. The Consolidation of Nation States and Industrialization From 1815 To 1914: Nationalism and Socialism. North Charleston, SC: CreateSpace, 2020, 229-418.

Mathias, Peter and M. M. Postan. The Cambridge Economic History of Europe, Volume VII, The Industrial Economies: Capital, Labor, and Enterprise (Part I & II). London,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8.

김휘국. 정치철학*경제사상과 함께 읽는 세계문명사. 서울: 한국전자도서출판, 2022, 531-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