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그렇지 않다. 한국은 기부문화의 잠재적 선진국이다. 다만 모금 기술의 후진국일 뿐이다. 모금 기술의발달과비영리단체경영의합리화는한국을기부문화의선진국으로바꾸어놓을것이다. 국제적인 모금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의 기부문화 성장가능성에 대해서 낙관하고 있다. 세계적인 비영리단체들 또한 한국 진출을 서두르거나 한국에 조직이 있는 경우 모금 전략의 업그레이드를 서두르고 있다. 그만큼 한국의 기부문화 발전의 폭과 속도에 대해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에 진입하고 있다. 뉴질랜드에 7개의 대학이 있고 네덜란드에 20개의 대학이 있는 반면, 한국에는 200여 개의 대학이 있다. 이렇듯 한국은 역동적인 기부문화의 기초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에는 기부문화가 살아 있고, 그 문화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표출되었다. 국가 재난 시에는 요원의 불길 같이 일어날 줄 아는 것이 바로 한국인의 힘이다.
모금하기 위해서 돈을 쓰면 안 된다?
모금은‘목적사업’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한 수단이기에, 여기에 사용되는 돈은 낭비이므로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하지만 모금을 위해서는 돈을 써야 한다. 제대로 돈을 써야 모금이라는 행위가 가지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모금은 보조적 활동이 아니라 비영리 단체의 핵심목적사업이다. 모금은 돈을 모으는 수단일 뿐 아니라 비영리단체가 대표하는 철학적 가치가 확산되는 과정이고, 교육이다.
기부금품모집규제법과 2%의 모금비용 룰은 국제적으로는 가십거리이다. 모금문화의 표상으로 거론되는 하버드 대학교 등 미국 대학은 모금목표금액의 최소 20%는 모금비용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화된 상식이다. 이 20%를 아까와 했다면 하버드 대학이 가지고 있는 200억 달러 이상의 발전기금은 조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적으로비용부담이적은거액모금및집중거액모금캠페인 (Capital Campaign)을주력방법으로사용하는대학보다일반적인비영리단체는 더 많은 모금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돈을 쓰는 모금이 발달되지 않았다. 따라서 일반가구의 정기적인 기부참여율이 매우 저조하다. 편지, 전화 등을 통해서 일반가구와 개인에게 정기적인 기부를 요청하는 기술이 발달되지 않았다. 몇몇 소수의 모금단체만 일정수의 월정기 기부자를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비영리 단체의 경우 월정기기부자는 미미한 수준이다. 언론을 통한 비정기적인 기부가 아닌 문화화 되고 체계적인 기부가 이루어지려면 역설적으로 돈을 쓰는 모금이 발달해야 한다.
모금은 기발한 아이디어다?
그런 면이 있다. 그러나 모금은 과학이고, 전략이며, 조직이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선수들의 약점은 기술이 아니라 체력이라고 했던 말은 적절했다. 모금전략컨설턴트인 필자가 우리나라 모금조직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도 이와 같은 점이 있다. 한국모금조직의 기술이 발전하지 않는 것은 창의적인 생각이 없어서가 결코 아니다. 그 창의를 구조화해낼 수 있는 조직역량이 약한 것이 문제이다. 한국 사회가 미국 대학의 모금실적을 부러워하며 우리 대학들은 왜 그렇게 못하는가를 질책하다가 미국 대학들에 수백 명씩의 모금전담 직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한국 구세군의 모금실적과 미국 구세군의 모금실적을 비교하기 전에 모금전담 인력을 생각하면 한국에서 20억원이나마 모금되는 것이 기적이다. 500개 이상 있는 지역사회 종합복지관에 모금전담직원과 부서를 두고 있는 곳이 몇 곳이나 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모금조직의 역량 강화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때이다.
자원봉사자들이 하는 모금이 더 감동적이다? 전문적인 모금‘꾼’들이 하는 모금은 감동이 없다?
분명 자원봉사자들이 모금에 나서는 것은 감동을 준다. 그러나 그 감동이 지속되려면 전문적인 모금인력이 절대적으로 양성되어서 자원봉사자들을 도와야 한다. ‘나는 펀드레이저’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할 수 있는 문화가 되어야 비영리 조직이 발전한다. 분명 미국에서 펀드레이저는 촉망받는 직업이다. 미국의 펀드레이저 중에서 CFRE(Certified Fundraising Executive, 공인모금디렉트)는 박사 혹은 변호사의 칭호 보다 CFRE를 앞에 두는 경우가 많다. 한국 대학 내에 ‘나는 전문 펀드레이저다’는 강한 자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드물다. 비영리단체 내에서도 마찬가지 이다. 아직은 한 조직 내에서 모금부서로 이동하다가 다시 다른 부서로 가는 경우는 있어도 한 조직의 펀드레이저가 전혀 다른 조직의 펀드레이저로 이동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모금 전문가와 이들의 위상 확보가 한국의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