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한 일 부자 비교

양곡(陽谷) 2011. 12. 31. 14:36

Cover Story] 이승재 전 신한종합연구소장이 본 ‘한·일 부자’ [중앙일보]

 

 

일본 부자, 금리 0.1%에도 정기예금

한국 부자, 한 번에 왕창 벌려고 투자

일본 부자의 재테크는 방어적이고, 한국 부자는 공격적이다. 일본 부자는 실용적으로 변했지만, 한국 부자는 아직도 명품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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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경제] Cover Story

한국과 일본의 부자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국민성은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재일동포 2세 이승재(62·사진) 전 신한종합연구소장이 분석한 두 나라 부자들의 특징은 이처럼 대조적이다.

그는 지난 24일 서울 화랑로 서울여대에서 부자학 특강을 하고 두 나라 부자들의 재테크 전략과 소비행태를 비교했다. 신한은행 창업을 주도한 이희건 명예회장의 장남인 그는 2001년 신한종합연구소가 해체된 뒤 그동안 한국에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 이번에 서울여대 경영학과 한동철 교수(부자학연구학회장)가 진행하는 ‘부자학’ 수업에 초청 받아 모처럼 공개 석상에 모습을 보였다.

이 소장에 따르면 일본 부자는 방어적이다. 자산을 운용할 때 적게 벌어도 손해 안 보게 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는 “금리가 연 0.1%여도 정기예금에 돈을 넣는 게 일본 부자”라며 “일본 전체의 개인예금 규모는 무려 540조 엔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금과 백금을 사들이는 일본 투자자도 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 부자는 상당히 공격적이다. 한꺼번에 왕창 벌기 위한 투기적 투자도 적지 않다. 그는 “지난해 금융위기 때 큰 손실을 본 것도 한국 부자들이 중국과 브릭스(BRICs) 펀드에 너무 큰돈을 투자했기 때문”이라며 “일본 부자 중에 중국 펀드를 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 정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인이지만 재테크 방식은 일본 부자처럼 방어적이다. 그는 “주식투자로 일반은행 이자의 두 배만 벌겠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자산 가치를 지키기 위해 경제 동향에도 민감하다. 그는 지난해 4월 인근 수퍼마켓에 버터가 동난 걸 보고 큰 경기 변동이 올 수 있다고 예감했다고 한다. “일용품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현상은 경제가 요동칠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후 그는 자산 포트폴리오를 대폭 조정했다. 우선 지난해 6월 한국에서 갖고 있던 주식을 몽땅 팔아 은행 보통예금에 넣었다. 하지만 ‘은행도 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 돈도 다 빼서 대여금고에 현금으로 쌓아뒀다. 지난해 8월 금값이 온스당 700달러대까지 떨어진 걸 보고는, 그 돈을 모조리 금으로 바꿔놨다. 덕분에 주가가 급락할 때 자산을 안전하게 지켰다고 한다.

그는 특강 전날 한국에 오자마자 금의 절반을 팔아 연 3.8%짜리 1년 만기 정기예금에 집어넣었다. 온스당 1000달러에 육박한 금값이 이미 오를 대로 올랐다고 본 것이다. 그는 “원화가치가 앞으로 20% 정도 오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정기예금 금리로 얻을 수 있는 이자 수익은 23.8%인 셈”이라며 “나에겐 결코 낮지 않은 금리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최근 바뀌고 있는 일본 부자들의 소비행태를 소개했다. 거품 경제 시절의 호화 소비는 사그라지고 실용적 소비가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요즘 일본 부자들은 샤넬 슈트나 루이뷔통 백 대신 1만 엔짜리 옷을 입고, 2만 엔짜리 백을 든다. 벼락부자나 조폭 간부, 연예인 등이 너도나도 고급 외제차를 타고 명품 백을 들고 다니며 있는 티를 내는 통에 정작 진짜 부자들은 그런 소비를 그만뒀다.”

일본에선 명품이 더 이상 신분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불황기에도 매출이 꾸준하던 명품업체들이 요즘 일본에서 고전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는 “나도 학생 땐 아버지가 주신 몽블랑 만년필과 20만 엔짜리 듀폰 라이터를 썼지만, 지금은 대한항공 기내에서 무료로 얻은 볼펜과 105엔짜리 일회용 라이터를 들고 다닌다”며 펜과 라이터를 꺼내 보여줬다. 그는 “우리나라(한국)에서도 3~4년만 지나면 진짜 부자들은 명품 백을 들지 않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신이 세운 현대조직연구소에서 조직론을 연구하고 있는 그는 이미 조직론 책 두 권을 펴내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했다. 지금은 세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책의 주제는 ‘마인드 조직론’으로 정했다”며 “내 마음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동시에 자서전도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부자는=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부자학연구학회는 재산이 30억~50억원 이상인 사람을 부자로 본다. 이런 조건에 맞는 부자는 한국엔 약 30만 명, 일본엔 약 150만 명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부동산을 뺀 순수 금융자산만 10억원 이상이면 부자로 보기도 한다. 지난해 컨설팅업체 캡제미니의 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부자는 한국에 11만8000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