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모금기술

-기부금 제멋대로 쓰면 누가 기부하겠나

양곡(陽谷) 2009. 10. 15. 17:07
 2009-10-13 |   조회:86 

 

청바지업체 ㈜닉스는 1999년 인터넷사업에 진출하면서 인터넷 주소를 뜻하는 도메인을 공모했다. 1등에 당선된 것은 닉스의 협력업체였다. 네티즌들은 "사전에 수상자를 내정한 형식적 공모"라며 기업의 인터넷 마케팅활동을 감시하는 '사이버행동네트워크'를 만들었고 닉스사로부터 사과와 함께 상금 3억원 전액을 사회 환원금으로 받아냈다.

사이버행동네트워크는 이 돈으로 북한 어린이에게 컴퓨터를 사 보내라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에 기부했다. 그러나 이 돈은 기부자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북한에 비료를 보내는 데 쓰였다. 사이버행동네트워크는 다시 2년 만에 3억원을 돌려받아 2002년 염광여자정보교육고에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이번엔 학교측이 차명계좌를 만들어 3억원을 분산 예치하고 일부는 학교장 대출 담보에 쓴 것으로 드러나 지난주 3억원을 돌려받았다.

사이버행동네트워크는 결국 3억원을 국내 아름다운가게와 영국 자선단체 옥스팜을 통해 해외난민과 베트남 소수민족 어린이를 돕는 사업에 기부하기로 했다. 이 단체 대표는 "국내 단체는 믿을 수 없다. 앞으로 국내엔 기부하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는 기부문화 역사가 짧고 개인 기부자 비율이 겨우 50%를 넘는다. 미국은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같은 부호들이 거액을 내지만 개인 소액 기부자가 89%를 차지한다. 기부문화가 확립되려면 기부자 숫자와 기부금 액수를 늘리기에 앞서 기부자 뜻에 따라 정확하게 관리하고 전달하는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 그러지 못하니 기부금이 엉뚱한 사람만 배를 불리는 예가 허다하다. 전국 900여 장학재단과 1500여 복지법인, 10만여 복지시설이 기부를 받을 수 있게 돼 있지만 대부분 돈이 누구에게 어떻게 쓰였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3년마다 받도록 된 관할 관청 감사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감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다.

기부금 3억원이 10년을 유랑한 사연을 보면 우리나라에 과연 제대로 된 기부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인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내가 기부한 돈이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게 될 때 기부문화는 더 큰 신뢰를 받아 우리 사회에 든든한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