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전, 단기전 둘 다 필요》간절한 호소 !
"그런데도 왜 우파는 계속 정권 타령만 할까?"
정권을 잃었을 때 좌우 누가 더 흔들리는가? 이것은 단순한 심리적 충격을 묻는 문제가 아니다. 진짜 권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느냐를 묻는 것이다.
좌파 진영은 정권을 내줘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구축해 온 문화, 교육, 언론, 예술, 시민 네트워크가 이미 사회의 기본 감각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는 5년 단위로 바뀌지만, 세계관은 교실과 스크린과 출판과 플랫폼을 통해 오랫동안 축적된다. 장기전을 택한 쪽은 단기 패배에 덜 흔들린다.
이건 전략의 차이다. 20세기 이탈리아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진지전’이라는 개념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국가는 전면전으로 무너뜨릴 대상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참호를 하나씩 점령해 가는 공간이다.
학교, 출판, 영화, 시민단체, 노동조합, 연구기관, 미디어. 이 공간에서 사회에서 통용되고 의심받지 않는 상식이 만들어진다. 상식은 표로 집계되기 전에 이미 사람의 판단 습관을 정해 둔다.
우파는 종종 정반대로 움직인다. 정권을 얻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기대하고, 정권을 잃으면 세상이 무너진 듯 반응한다. 이유는 사회의 기본 감각이 이미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정책을 바꾸려 해도 저항이 강하다. 공영방송의 편집 방향, 교과서의 서술 방식, 문화 지원금의 흐름, 대학의 담론 환경, 온라인 플랫폼의 분위기. 이런 요소가 바뀌지 않으면 정권은 사회와 마찰을 겪는다.
그런데도 왜 우파는 계속 정권 타령만 할까? 정치가 가장 그리고 당장 눈에 보이는 전쟁터라서 그렇다. 집회는 즉각적이다. 광장은 열광을 준다. 선거는 숫자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운동의 체감도가 높다.
반면 문화와 세계관을 바꾸는 일은 무척 느리다. 10년, 20년이 걸린다. 당장 박수도 없다. 후원금도 모이기 어렵다. 조직을 만들면 내부 갈등이 생긴다. 지루하다. 그래서 정치에 몰린다.
하지만 정치만 붙들면 생기는 역설이 있다. 정권은 얻어도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의 기본 감각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론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문화적 토대가 약하면 정책은 고립된다. 정권은 배가 아니라 돛이다. 바람이 다른 방향이면 돛은 찢어진다.
좌파가 강하다고 느껴지는 지점은 바로 ‘사회가 이미 우리 쪽’이라는 자신감이다. 영화 한 편, 드라마 한 시즌, 교과서 한 단원, 시민단체 보고서 하나, 온라인 해시태그 캠페인 하나. 이런 것들이 쌓이면 사람들의 판단 기준이 형성된다. 그 기준 위에서 선거가 열린다. 그러면 선거는 출발선이 아니라 이미 결승선다.
우파 시민운동이 정치집회 중심으로 흐르는 현상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집회는 동질성을 확인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사회의 세계관을 바꾸는 공간은 아니다. 세계관은 학교에서 배우고, 콘텐츠를 통해 체험하고, 책을 통해 사유하며, 일상 대화를 통해 굳어진다.
그 자리를 우파가 비워두니, 좌파가 채운 것이다. 담론은 진공을 허용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서 하나 경계해야 할 점이 있다. “사회가 완전히 좌파 사회가 되었다”는 단정은 물론 나의 우려섞인 과장법이다. 한국 사회는 다층적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지지, 안보 인식, 가족 가치, 개인의 성공 욕망 같은 요소는 여전히 강하다.
문제는 방향성이다. 어떤 가치가 ‘도덕적으로 더 고급’으로 인식되는가, 어떤 주장이 ‘상식’으로 불리는가가 중요하다. 상식이 되면 토론도 의심도 더 이상 필요없다. 반대자는 곧 반사회적 인간이 되고 만다. 현재 우파의 처지가 이렇다.
우파가 정신을 차려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다. 눈앞에는 정권이 보이지만, 실제 싸움은 사회의 기본 감각을 둘러싼 경쟁이다. 교육과 출판, 영상 콘텐츠, 학술 네트워크, 시민 플랫폼, 청년 조직, 문화 후원 구조. 이런 영역에 장기적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반복이 이어진다. 정권 획득과 상실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그때마다 충격을 받는다.
세계관은 한 세대가 걸려 만들어진다. 한 세대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기까지 15년 이상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는지가 정치보다 더 근본적인 힘이 된다. 조용한 영역이지만 영향은 정말 깊다.
정권은 수단이다. 사회는 토대다. 토대가 바뀌지 않으면 수단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운동의 맛과 실감은 광장 정치집회에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방향을 바꾸는 힘은 교실과 스튜디오와 연구실과 출판사에서 나온다.
그 지점에 조직과 자원과 인내를 배치하지 않으면 같은 고민을 되풀이하게 된다.
우리는 표를 얻고 싶은가? 아니면 상식을 만들고 싶은가? 표는 4년, 5년 단위로 움직인다. 상식은 30년을 간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정치라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사회다. 더 오래 남는 쪽은 후자다.
내 포스팅에 윤석열, 이재명, 한동훈 등의 이름이 자주 나타나지 않는 이유이다. 그런 포스팅을 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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