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와 관련된 정치와 시사

거인을 읽다》를 오늘의 정치에 비추어

양곡(陽谷) 2026. 2. 3. 19:03


거인을 잃은 정치, 사유를 잃은 사회
— 《거인을 읽다》를 오늘의 정치에 비추어
정치는 언제나 현실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방향은 결국 사유의 깊이에서 갈린다. 《거인을 읽다》를 덮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다. 오늘 우리의 정치에는 거인이 있는가. 안타깝게도 대답은 쉽지 않다.
오늘의 정치 공간은 시끄럽다. 말은 넘치고, 분노는 빠르며, 편 가르기는 일상화되었다. 그러나 정작 사유는 보이지 않는다. 거인들이 역사 속에서 보여준 것은 언변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다져진 원칙이었고, 타협이 아니라 감당할 각오가 선 결단이었다. 반면 오늘의 정치는 여론을 읽는 데는 능숙하지만, 역사를 읽는 데는 서툴다.
거인은 다수를 따르지 않았다. 다수가 틀릴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인은 다수의 박수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지지율은 판단 기준이 되고, 인기 없는 진실은 뒤로 밀린다. 그 결과 국가는 방향을 잃고, 정책은 임시방편으로 전락한다. 책임지는 정치 대신 회피하는 정치가 자리를 잡는다.
《거인을 읽다》가 던지는 경고는 분명하다. 리더십의 빈곤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라는 점이다. 제도가 아무리 정교해도, 그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이 원칙을 잃으면 국가는 흔들린다. 거인들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알았다. 오늘의 정치에서 가장 희귀해진 덕목이 바로 그 ‘선의 감각’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시민의 역할이다. 거인의 시대에도 군중은 존재했다. 그러나 군중이 역사를 주도하지는 못했다. 지금은 다르다. 감정의 정치가 시민을 소비하고, 시민은 다시 감정을 확대 재생산한다. 비판적 사고 대신 진영 논리가 판단을 대신한다. 거인을 잃은 정치에, 사유를 포기한 시민이 더해질 때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는다.
이 책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한다. 인문학은 정치의 적이 아니라 정치의 마지막 방파제라고. 거인을 읽는다는 것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논리를 얻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의 기준을 점검하는 일이다. 무엇이 국가의 이익인지, 어디까지가 타협이고 어디서부터가 붕괴인지 묻는 과정이다.
오늘의 정치는 새로운 기술이나 구호보다 먼저, 거인을 다시 불러내야 한다. 역사 속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그들이 지녔던 사유의 태도와 도덕적 용기를 말이다. 정치는 결국 인간의 선택이며, 그 선택의 질은 독서와 성찰의 깊이를 넘어서지 못한다.
거인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소음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깊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