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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신평

양곡(陽谷) 2024. 1. 20. 12:19

[‘어둠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몇 해 전 일본의 쯔꾸바 대학에서 강연을 마친 다음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보는 사람은 손을 들어달라고 요청하였다. 놀랍게도 대다수의 학생이 손을 들었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된 것은 맞다. 이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봉건주의를 경험하지 않은 나라로서 선진국이 된 최초의 예이다. 그만큼 인류의 역사에서 지대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일반의 선진국에서 살며 느끼는 원칙이나 상식 혹은 공정의 의식이 우리 사회에서도 무르익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은 그렇지 않다는 데 동의하리라. 이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아직 뿌리 깊게 내린 현실에서도 잘 엿볼 수 있다. 가장 단적인 예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무자비한 폭행이나 중범죄가 ‘묻지마’ 형태로 자주 일어나는 것이다. 적어도 다른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현상이다.

여성혐오의 연원은, 아마 문명화되지 못한 의식을 가진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남성이 여성을 ‘엄마’ 혹은 ‘창녀’ 이외의 존재로 보지 못하는 성녀-창녀 컴플렉스 (Madonna–whore complex)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의식의 반면은 과도한 ‘남근숭배’일 것이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설명에 따라 우리가 ‘김건희 여사’에 대한 집요하고 비열하고 무자비한 공격을 바라보면 그 공격의 성격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말을 끄집어내기도 상스러운 ‘줄리설’이 조금 잦아들더니 요즘은 ‘명품백 사건’으로 그에 대한 공격이 다시 극을 달리고 있다. 그 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럴 수 있겠으나, 어느 국민의힘 비대위원까지 이 사건을 오해하여 그를 프랑스 혁명 당시의 ‘마리 앙뚜와네트’에 비유하고 당장 국민 앞에서 석고대죄하여야 한다고 다그친다.

‘명품백 사건’은 재미교포인 최 목사와 ‘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가 음습한 골방에서 오랜 시간 머리를 맞대고 치밀하게 계획한 일이다. 시나리오도 섬세하게 잘 짰다. 최 목사가 김 여사의 선친을 잘 아는 것으로 설정하여, 김 여사의 경계심을 우선 해제한 것도 특출한 계략이다. 그렇게 야금야금 접근하여 시가 300만원 한다는 파우치 하나를 떨구고 가버렸다. 김 여사는 그 후 남아있는 물건의 포장지를 직원에게 지시하여 뜯어보았으나 이를 사용한 일이 전혀 없고, 관련 법규정에 따라 소관기관에서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이를 반환하면 될 일이나, 지금 형사적으로 문제된 이상 법규상 반환할 수도 없다.

이것이 지금 세상을 뒤흔드는 ‘명품백 사건’의 전모이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줄리사건’에서처럼,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한 여성을 옹호하기는커녕 비난하기에 바쁘다. 일부 언론이 비난의 대열에 합류하더니 어느덧 여당의 일부까지 여기에 가담하였다.

이해하기 힘든 이 현상의 근저에는 ‘여성혐오’와 ‘남근숭배’의 어두운 모습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설명하지 않으면, 이성과 상식 혹은 공정의 관념에서 도저히 김 여사의 비난으로 편향적으로 향하는 ‘이상한 열기’를 감당할 길이 없다.

‘명품백 사건’에서 우리는 김 여사의 부주의를 나무랄 수는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아가서 더 무엇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반해 최 목사나 이명수의 흉측하고 야비한 음모의 실행은 문명사회의 범주를 훨씬 넘은 고약하고 더러운 소행이 아닌가? 우리가 이를 방치한다면 우리는 그들 세력이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어둠의 포로’가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들을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