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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사 연재 23. 19세기 유럽의 정치철학 (Continued 9)/PhD. Hugo W. Kim

양곡(陽谷) 2023. 9. 5. 16:58

문명사 연재 23. 19세기 유럽의 정치철학 (Continued 9)

(h) 공리주의와 영국의 관념주의

제러미 벤담(1748-1832): 런던의 성공한 변호사 가정에 태어난 신동으로 옥스퍼드대학에서 1763년에 학사, 1766년에 석사, 그리고 1769년에 변호사 자격을 받았다. 그는 정치에서 급진주의를 옹호하고 보수주의 정치와 보수적 법철학을 반대했으며, [최대다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를 주장하였다. 다음에서 벤담의 철학사상을 살펴본다.

영국의 정치개혁: 정치개혁은 완전히 공개되고 빈번한 보통선거를 통해 성취할 수 있다고 믿고, 벤담은 의회의 정치세력이 전통적 토지 귀족으로부터 상업자본가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도록 노력하였다. 정치개혁을 위해 그는 4방향에서 노력하였다. (1) 정부의 기본 임무는 질서 있고 합리적 법체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법이 시민의 책임과 권한을 결정할 때에, 가능한 한 명확성과 일관성이 절대적으로 필수이다. (2) 정부가 시민의 부와 번영을 보장해야 한다. 각 개인은 일한 만큼 보상받고 그들 소유를 즐기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 외에 정부는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 (3) 경제적 정치적 지적 도덕적 불평등이 불가피할지라도, 정부는 극단적인 차이를 완화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항상 효용의 원칙과 사유재산에 대한 존중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4) 정부는 시민들이 자비심의 정신을 개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회의 행복은 시민들이 다른 사람에게 봉사를 나누려고 하는 그 심도를 증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종교적 분파적 편견과 싸우고, 자선 조직들을 설립하고, 모든 학교와 교회에서 공공정신의 도덕성을 가르쳐서 조장된다. 각 경우의 목표는 항상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증대하는 것이다. 벤담은 정부가 하루하루의 운영을 개선하는 방법에 초점을 두고 점진적 정치 사회적 개혁을 하도록 시도하였다.

공리주의의 원칙: 저술 도덕과 입법의 소개(1780)에서 벤담은 쾌락과 고통을 선과 악에 관련하여, 인간이 쾌락(선)을 극대화하고 고통(악)을 최소화하여 개인의 효용 가치를 증대하고, 사회 전체의 공공이익(공리)을 극대화한다는 공리주의를 주장하였다. 쾌락과 고통의 개념은 육체적 정신적인 것으로, 어떤 불필요한 법과 처벌은 새롭고 보다 위험한 악으로 유도할 수 있으며, 입법자들은 법과 관련된 쾌락과 고통을 측정해야 하고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창출하기 위하여 법을 제정해야 한다. 개인이 추구하는 행복의 개념은 꼭 옳거나 정의로울 필요는 없다, 그는 12 고통과 14 쾌락을 제시하였다. 공리주의는 제임스 스튜어트 밀에서 정립되었고, 공리주의의 개념은 현대 경제학에서 제약조건을 전제로 목적함수(효용 가치)를 극대화하는 효용 가치이론에서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정부의 단편(1776): 윌리엄 블랙스톤의 영국의 법에 관한 논평(1765-70)에 대하여, 벤담은 영국법이 바르고 개혁이 필요 없다는 저자의 입장을 사실과 법률 사이의 논리적 구분이 무시되었다는 관점에서 비판하였다. 블랙스톤은 정부가 사회계약으로 수립되어 통치자는 권력을 가지고 시민은 계약대로 통치자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하였으나, 벤담은 사회질서의 원칙은 이기적 쾌락의 개인적 욕망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도덕과 법의 원리(1789): (1) 정책이 산출하는 특정 쾌락의 양은 외부환경--강도, 기간, 확실성, 근접성, 생산성, 순수성, 영향의 범위--에 의존한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각자의 감수성이 달라 개인별 쾌락의 양은 상이하다. 벤담은 개인의 감수성에 영향을 주는 32요소로 건강, 체력, 성별, 나이, 지위, 교육, 기후, 종교 등을 포함하였다. (2) 정부가 취할 가용수단으로 고통과 쾌락의 근원에 대해 신체적, 정치적, 도덕적, 종교적 제재를 포함하며, 결과적으로 정부는 체벌의 위협을 통하여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일반 시민의 행복을 증진할 수 있다. (3) 자연에서 권리가 존재하지 않고 권리는 의무에서부터 온다. 의무는 자연에 없고 처벌의 위협이 만들었다. 처벌의 위협이 없으면 의무도 없고, 의무가 없으면 권리도 없다고 하여 공리주의가 정치적 질서를 위해 필요 충분 수단이라 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1806-73): 그는 스코틀랜드의 (역사 경제 철학자이며 벤담의 조력자인)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태어난 신동으로 부친에게 교육을 받았다. 대학에서 공부하지 않고, 부친을 따라 영국 동인도회사에서 1823-58(35년) 기간에 근무하고 연구와 저술을 하였다. 그의 주요 저술은 논리학 체계(1843), 경제학 원리(1848), 자유론(1859), 여성의 종속(1861), 의회 통치론(1861), 공리주의론(1863) 등이 있다. 그는 1865-68년에 하원의원이 되었고 사회개혁 운동을 지원하였다. 다음에서 벤담의 정치철학을 분석한다. (경제학 원리는 연재24에서 별도논의)

논리학 체계(1843): 밀은 경험주의자로 모든 지식은 궁극적으로 경험에 달려있으며, 실제적 경우 별로 추정적인 이유(가설)를 수립하고 방법으로 과학적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회 발전의 전반적 상태를 발견하기 위하여 반 연역적인 역사적 방법을 추천하였다. 사회적 지식의 최상 형태는 역사적 고찰로부터 얻는다. 따라서 인간의 이성은 물질적 효율적 인과관계는 알 수 있으나 형식적 최종적 원인은 알 수 없다. 인간의 번영은 역사의 발전과 지적인 향상으로 이루어지고, 이는 개인의 자유와 지적인 합의에서 오는 진화주의적 믿음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보았다.

자유론(1859): (1) 정부 독재는 시민의 자유에 의하여 통제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다수의 횡포는 (정치 기능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절대군주의 독재보다 나쁘다. (2) 틀리거나 해롭다는 이유로 의견을 억압하지 말아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면 바로 모든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다. 표현의 자유를 무제한으로 허용해야 사회가 발전한다. (3) 개별성은 타고난 가치이다. 인간의 본성은 기계가 아니다. 사회는 창의성과 다양성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각 개인의 개별성을 증진해야 한다. (4) 한 개인이 다른 사람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자유롭게 두어야 한다. 자신의 의무 수행이 태만하여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만을 처벌해야 하고, 도덕과 종교는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의회 통치론(1860): 통치 엘리트의 성취를 감독하고 통제하기 위하여 인기로 선출된 의회가 수립되어야 한다. 의회는 아이디어와 선택을 위한 포럼으로 봉사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들의 입법 제안을 승인하거나 거부하여 직업 엘리트를 관찰하고 통제한다. 통치 권력은 의회와 전문가가 견제와 균형으로 숙련된 민주주의를 확립한다. 만일 의회가 노동당이 다수당으로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면 부유층의 재산권을 위태롭게 할 것이고, 자유당이 다수당이 되면 그 반대가 될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모두가 평등하게 대표되는 모두의 정부이다. 옳지 못한 민주주의는 부적당한 대표성과 비 대표성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에서 소수당이 다수당에 대하여 효과적 주장이 부재하면 경쟁력 없는 통치집단이 된다. 밀은 공공의 정신을 증진하여 정치적 지성의 역할을 강화하려고 노력하였다.

공리주의론(1863): 벤담의 공리주의는 계량적 개념으로 쾌락을 다루었으나, 밀은 지식과 감성의 쾌락 사이의 본질적인 질적 차이를 인정하고, 쾌락을 계량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하였다. 쾌락의 가치는 지적 활동이 존재하여 증가하므로, 밀은 지적 영역과 육체적 영역을 차별화하여 고전 정치철학의 기본적 주제를 다시 소개하였다. 따라서 선한 생활은 이성적 생활이며, 선한 사회는 시민들에게 이성적 생활을 유도하고 지원한다. 자연에 의해 주어지는 이성적 삶을 살려고 하는 인간성의 책무는 개인이 실제로 그들의 책무를 수행하였는가에 상관없이 존재한다. 밀은 이성은 실험적 경험주의이며 초자아적 합리주의가 아니라고 보았다. 밀은 덕성은 도구적 가치일 뿐만 아니라 선한 삶의 구성을 이루며 심미적 가치와 연계되고, 도덕성은 권리와 책임의 분야로 보존된다.

결론적으로, 존 스튜어트 밀의 사상은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역사주의와 합리주의의 교차점에 서 있었다. 그는 인간의 문제에 관하여 심각하고 문명된 방법으로 생각하는 모델이었고, 당대 최고의 학자이며 사상가로서 여성투표권을 요구하는 영국의회의 최초 의원이었다.

영국의 관념주의(Idealism): 칸트에서 시작한 독일 관념론은 피히테와 셸링을 거쳐 헤겔의 절대 관념론으로 완결되었다. 그러나 관념론의 경향에 반대하여 실증적, 자연주의적, 유물론적 실재론의 학파들이 헤겔 철학을 비판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칸트의 순수한 이성 비판으로 돌아가 철학적 기초를 재정립하려는 신 칸트학파가 19세기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영국은 토머스 힐 그린이 독일 관념론의 영향을 받아 경험론, 공리주의, 유물론에 대항하는 영국 관념주의 철학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20세기 초 케임브리지 중심의 조지 에드워드 무어와 버트런드 러셀이 영국의 실재론을 부흥하여 영국의 관념주의는 쇠퇴하였다.

토머스 힐 그린(1836-82)은 옥스퍼드의 도덕 철학 교수로 공리주의나 경험철학이 내포하는 모순을 독일 관념주의 이론으로 극복하려 하였다. 그는 형이상학에서 인간은 자아의식의 존재이며, 가장 단순한 정신적 행위는 자신과 관찰 목표 사이의 변화와 구별을 의식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허버트 브래들리(1846-1924)은 옥스퍼드에서 수학하고 생애 동안 저술을 하였다. 그는 논리학의 원리(1883)에서 경험주의의 결핍된 심리학을 비난하고, 외모와 현실(1893)에서 비판적 토론의 제 일 원칙은 질문과 의심을 자극하는 것이라 하였다. 버나드 보전켓(1848-1923)은 성직자 가정에 태어나 옥스퍼드에서 수학하고 연구와 저술을 통하여 영국 신헤겔주의 철학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국가의 철학 이론(1899)에서 국가가 시민을 사회적으로 통제를 하는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 하였다.

(문명사 연재 23. 19세기 유럽의 정치철학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