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인류 세계사 살인 왕조 독재시대에 300년을 앞섰던 가장 진보한 자유 평등 반공 민주주의자였던 예수 그리스도인 위대한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사ㅡ
●<78 김일년간성의 5.18 공산주의 고정간첩 정치세력들의 반공 세력 죽이기 반공 대통령 죽이기 역사 날조 공작 대남 적화 공산화 공작, 반공안보해체 공작으로 근대사에서 독재 살인마로 날조 왜곡 선동한 위대한 대한민국 건국 수호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의 대한민국 건국사>
ㅡ대한민국은 한반도 조선인들 88%가 스탈린ㆍ김일성의 공산주의 국가를 지지하며 이승만의 자유 평등 민주주의 반공국가 수립 즉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할 때 위대한 이승만 건국대통령께서 혼자서 UN을 앞세워 세운 나라!ㅡ
7강 동영상
●ㅡ 위대한 이승만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께서는 왕조 독재 국가 체제와 스탈린 공산 독재 국가 체제를 완강하게 반대하며 1945년 8.15 일본의 식민지에서 광복후 6개월만에 1946년 2.8 한반도 38선 북쪽에 마적패 괴뢰 공산주의 김일성ㆍ스탈린의 정권이 수립되자 이를 강력하게 반대하며 기도와 친미외교와 UN을 앞세워 인류 세계 역사상 최초로 남녀 평등과 계급과 신분을 철폐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반공 자유 평등 민주주의 통일 국가 체제로 통일 대한민국을 건국을 하려다 5.18 공산주의 스탈린ㆍ김일성 세력의 반대로 광복후 3년후인 1948년 8.15에서야 38선 남쪽만의 UN에 의한 대한민국 정부를 세웠다. 또한 이승만은 미국에서 40년동안 피나는 친미 외교 독립운동의 혜택으로 1953.11월 미국과의 대등한 세계 유일의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맺을 수 있었으며 스탈린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반공 대한민국 체제를 수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승만의 40년 피나는 친미외교와 반공정책으로 대한민국은 박정희 ㆍ전두환 대통령 시대의 경제번영과 현재까지의 대한민국의 경제번영도 가능했다. ㅡ
ㅡ공산주의와 왕조독재체제를 반대하며 오로지 부강한 미국식 자유 평등 민주주의 체제로 조선을 부강하게 바꾸고자 노력했던 이승만은 1946년.12.5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서 40년 동안 미국에서 외교 독립활동을 하며 알게된 자신의 인맥을 일일히 찾아 다니며 한반도 자유 민주 총선거로 한반도 자유 평등 민주주의 통일 단일 정부 수립을 집요하고 피나는 설득과 요청을 하였고 1948.5.10 마침내 UN은 이승만의 요청대로 한반도에 자유민주주의 단독 통일정부인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자유 민주 총선거를 실시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1946년 2월에 공산주의 김일성 괴뢰 정권을 이미 수립한 38선 이북의 스탈린과 김일성 공산주의 세력들은 지령으로 UN의 5.10 자유 총선거를 무력으로 저지하였다.
그래서 1948년 5.10 남한만의 자유 민주 총선거로 남한만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UN은 남한만의 대한민국 정부만을 국가로 승인했다.
1.왕조 독재국가가 아닌 계급 신분제도를 철폐한 남녀평등의 자유 평등 민주주의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한성 감옥 사형수가 되다. https://youtu.be/M9LhEclrb-M
2.제2의 예수그리스도인 이승만
https://youtu.be/NmZTtLIG2cE
3.왕조독재국가와 공산독재국가가 아닌 세계 최초의 그리스도 이념의 자유 평등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반공국가 대한민국
https://youtu.be/JVSOkCagG1I
4.세계 유일의 계급철페 국민 주권의 자유 평등 민주주의 국민국가 수호를 위한 반공국가로 대한민국을 건국 https://youtu.be/N8ZYXzTo1hQ
5.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한국이 잘 살때까지 97%의 한국 방위비와 백지수표의 경제원조를 미국이 부담하게 한 경제안보 동맹체 이승만의 한미 상호 방위 조약. https://youtu.be/O9-SpPppG90
6.건국대통령의 마지막 임종 구국 기도.
https://youtu.be/b8qO5B6es_I
7.5.18 김일성 공산주의자들의 대한민국 반공안보해체 공작 이승만 폄하 선동 매장 공산화 공작.
https://youtu.be/GXhjqWJ3VPI
■ㅡ대한민국 건국사 이승만 건국대통령 동영상 4강ㅡ
1.늘상 굶어 죽는 백성의 시체가 거리에 즐비했던 5000년 왕조독재 국가체제가 아닌 미국과 같이 잘사는 민주주의 국가를 이승만은 염원했다.
https://m.youtube.com/watch?v=WG-i8E7J-SE&feature=share
2. 인민이 굶어죽고 총살당하는 제정 러시아보다 피폐하고 피비린내 풍기는 참혹한 모스크바 거리의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쏘련 스탈린 공산주의 독재 국가가 아닌 부유하고 행복한 미국식 크리스찬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를 이승만은 염원했다.
https://youtu.be/DbS6nHs9cWA
3."항공모함과 비행기까지 갖춘 780만명의 거대한 일본군을 대항하여 조선의 수백명 항일 무장독립군 투쟁은 아까운 조선 청년들의 목숨만 희생시킬 뿐이다. 친미 외교로 거대한 군사력을 가진 미국의 힘으로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자."(박용만의 무장독립투쟁노선과의 갈등)
https://m.youtube.com/watch?v=QShkhZqTcEQ
4. 이승만은 바이러스와 같은 살인 악마 독재 공산주의를 반대하며 신분철폐 남녀평등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 예수 그리스도의 크리스찬 국가 수호를 위해 반공국가로 대한민국을 건국.
https://youtu.be/Xdk8AB0EqhA .
고대로부터 8000년동안 조선인은 왕조 독재의 관료 정치제도하에서 99%의 백성은 1%의 양반 관료들의 핍박으로 희망도 없이 가난과 궁핍속에 인권도 말살당한 종과 노예로 살았다.
위대한 개혁가이며 선각자였던 이승만은 조선 왕조시대에 세종대왕의 형님이었던 양녕대군의 16대손이다.민주주의 선각자였던 19세 청년 이승만은 부패한 1%의 양반만이 잘먹고 잘사는 조선왕조 독재 체제를 대통령제로 바꾸려다 정치 사형수로 한성 감옥에서 5년 7개월을 갖은 고문을 받으며 복역하다 고종황제의 측근이던 미국 선교사들의 구명운동으로 석방되어 망국상황 조선의 고종황제의 미국 외교특사로 지명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루스벨트 대통령을 설득했으나 실패하고 미국의 조지 워싱턴대학과 하버드대학교와 프린스턴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모두 5년동안에 마친 세계적인 국제법 석학이 되었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대학과 하버드대학교와 프린스턴 대학에서 학사, 석사,국제법 박사 학위 과정을 5년 만에 끝내고 받은 이승만의 천재적인 국제법 박사학위 논문은 전미국과 전세계적으로도 현재까지도 아직도 깨지지않는 유일한 세계 신기록이며 세계적인 이승만 대통령의 국제법 박사논문은 프린스턴대학에서 대대적으로 출판되었다. 이승만 박사의 지도 교수였던 프린스턴 대학 총장 윌슨 대통령이 후에 미국 대통령이 되어 상하원의 의회 연설에서 이승만의 논문을 인용하여 연설한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정도였다.
세계적인 최고의 학벌가이며 유명 명사로 이름을 떨친 이승만은 40년전에 청일전쟁과 러일전쟁과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예언한 대 예언가였으며 미국내에서 그는 미국 국적을 취득해 주려는 미국 국무성의 조언도 단호히 거절한 무국적자로 오로지 조선 독립에만 미친 늙은이로 명망을 떨쳤던 조선의 40년 망명객이었다.
또한 이승만은 친미외교 독립활동중에도 반공주의자로 스탈린 살인 독재 공산주의를 반대하며 미국식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 평등 민주주의를 목표로 선교와 남녀 평등의 교육사업을 매진하며 공산주의와 투쟁했다.
광복된 1945년 조선반도 상황은 소련 공산당의 코민테른 조직에 의해 국민의 78%가 여운형의 조선 공산당과 김일성ㆍ박헌영의 남로당의 조직에 의해 스탈린 김일성 공산정권을 지지하며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알지 못했다.
광복후 불과 6개월만에 38선 이북을 점령한 소련군은 1946년 2월 38선 이북에 이미 소련 국적의 소련군 대위 김일성 괴뢰 정권을 수립하고 전국토와 전인민을 강탈하여 김일성의 1인 소유제와 김일성 1인의 노예제로 만들자 반공 자유 민주주의투사 이승만은 분개하고 초조한 나머지 38선 이남지역을 돌며 다급하게 반공 자유 민주주의 체제 정부수립을 위해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의 공작으로 2차대전에서 연합국의 일원으로 히틀러와 항전하며 3700만명의 사상자를 낸 소련 스탈린에 대해 매우 친소 우호적이던 미국정부는 군정책임자 하지 준장을 시켜 미국인들의 신적인 위대한 영웅 우상이었던 조선의 거인 이승만을 가택 연금시키고 이승만의 반공 자유 평등 민주주의 체제 국가 건국을 위한 정치 활동을 차단했다.
이에 격분한 한반도내에 공산정권 수립을 완강히 반대한 반공주의 위대한 대예언가요 세계적인 반공주의 최초 지도자 이승만은 한반도의 자유 평등 민주주의 체제 국가로의 건국을 위해 하지 중장을 설득해 자신을 조속히 미국으로 보내 줄것을 요청했다.
40년 동안 미국에서 친미외교 독립운동과 선교 활동으로 미국내에서 종교계, 정치계,학계,재계 인사들의 추앙을 받는 거인이 된 위대한 조선인 거인 이승만의 반공주의 노선은 친소 친공적이었던 미국정부와 극동 맥아더 사령관 휘하의 미군정 조선반도 사령관이었던 하지 준장에게 매우 심각한 골칫거리였다.
미국 정부와 극동사령관은 이화장에 가택연금된 이승만의 요구를 흔쾌히 수락하여 이승만을 미국으로 보내주었다.
공산주의와 왕조독재체제를 반대하며 오로지 부강한 미국식 자유 평등 민주주의 체제로 조선을 부강하게 바꾸고자 노력했던 이승만은 1946년.12.5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서 40년 동안 미국에서 외교 독립활동을 하며 알게된 자신의 인맥을 일일히 찾아 다니며 집요하고 피나는 설득과 요청을 하였고 1948.5.10 마침내 UN은 한반도에서 남북한 통일 자유민주주의 단독 정부인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자유 민주 총선거를 실시하도록 하였으나 1946년 2월에 공산주의 김일성 괴뢰 정권을 수립한 38선 이북의 스탈린과 김일성 공산주의 세력들은 UN의 5.10 자유 총선거를 무력으로 저지하여 1948년 5.10 남한만의 자유 민주 총선거로 남한만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UN은 남한만의 대한민국 정부만을 국가로 승인했다.
5.18 김일성 더불어 공산주의 좌익 빨갱이들의 민족이란 대한민국 국민들이 아니라 북한 김일성 공산주의자들과 북한식 공산혁명 통일을 목표로 한 주사파 김일성 세력만을 지칭하는 말이다.
●국민에 봉사한다는 국회의원과 시ㆍ도의원 모두 급료없이 회기중에만 근무하는 형태로 무보수 명예직으로 해야 한다!
상해 임정부터 100년 동안 대한민국을 파괴해온 공산주의 김일성의 5.18 좌파 조직은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교육ㆍ체육등 정부의 입법ㆍ사법ㆍ행정등 공기관 뿐만 아니라 사조직 시민ㆍ노동단체도 만들어 공작을 해왔다.
오로지 북한 정권과 지령에 맹종하고 충성하며 북한 정권을 찬양 비호하며 대한민국 건국수호 반공안보 애국세력들을 78년간 친일파 독재 살인마로 선동 몰이한 김일성의 5.18 주사파 좌익 대한민국 부정 대한민국 반공안보해체 세력들이 한국의 명문대인 서울대ㆍ연세대ㆍ고려대를 위시하여 유명 대학들과 교육계를 장악하고서 교육부를 5.18 김일성 공산주의 북한 김일성 세습 정권을 위한 대남 공산화 이념 학습 교육장으로 만들었고 또한 강남의 100억대 일타 강사들 학원들까지도 1980년대에 김일성의 지령으로 일본 조총련 자금으로 세운 고시원에 이어 좌익 공산주의 세력들의 대남 공산화 기지 즉 대남 공산화 이념 학당과 공산화 공작 정치 자금처로 만들었다!
KBS mbc YTN 공영방송사내에 북한의 고정간첩당 더불어 민주당이 1980년 5.18이후 40년동안 포진시켜 좌익 편파방송으로 남조선 공산화 통일 공작을 해온 5.18 김일성 3대세습 정권의 앞잡이 전사가 된 김일성ㆍ김대중의 5.18 좌익 노조 간부와 노조원들을 일망타진하고 해고 처벌하라!
#김일성의 5.18 좌익 주사파 막가파 고정간첩 반역자 활동가들 30만명의 억대 년봉가 노조원들이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지위를 악용하여 공사직에서 갖은 특권과 1년에 400조원 이상의 급료와 활동자금을 받으며 좌익화 공산화 공작 고정간첩 활동에 앞장서 왔다.
한마디로 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 대통령 세분이 일으킨 한국 경제가 김일성 주사파들 주머니 채워주는 남한 공산화 적화 공작금이 되어 북한 김일성 세습정권 유지에 사용되도록 78년 동안 토착 고정간첩 5.18 남한 좌익들이 국민이란 지위로 입법부 ㆍ사법부 ㆍ행정부의 요직을 장악하고 반역질 국정 농단을 하고 있었다.
●남한내 교활하고 악질적인 김일성의 5.18 극좌파 공산주의 앞잡이 정치 세력 더불어 민주당과 광복후 78년간 지속되고 있는 그들의 대한민국 공산화 공작의 실체!
광복후 77년동안 김일성의 대한민국 공산화 지령으로 간첩들과 남한 공산주의 좌익 세력들이 일으킨 반공안보해체 자유 평등 민주주의 대한민국 공산화 공작 제주 4.3, 4.19, 5.18 무력 살인 폭동 공산화 반란을 날조 미화 거짓 선동공작으로 민주화로 만든 반역자 정치 세력 부정부패집단 더불어 민주당!!
https://youtube.com/shorts/aOIPXP5_cXk?feature=share3
https://youtu.be/MGEOVbYHf3E
https://youtu.be/DLXJUKzfRso
https://youtu.be/3rN0ejDpBR4
https://youtu.be/l_zGh8roI3g
김일성의 4.3 공산화폭동, 5.18공산폭동을 민중 민주화로 선동하며 마각의 실체를 드러낸 5.18 북한 김일성 3대 세습 정권의 앞잡이 남한의 좌익 빨갱이 정치 세력들 5.18 고정간첩들은 지금도 이렇게 버젓이 역사까지 자신들의 입맛대로 사건의 원인과 진실은 감추고 대한민국에서 멍석을 깔고 종횡무진 치밀하게 유튜브까지 소설화 미화시킨 날조 각본으로 국민들을 이렇게 선동 세뇌시키며 김일성 공산화 찬양 선동 공작질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유시 참변
1. 1921년 6.28 자정 쏘련 공산당 레닌에게 순금궤 2마차를 받고 미국식 이승만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쏘련 공산당 김구 주석체제로 바꾼 후 소련 공산당체제 상해임정은 공산주의를 반대한 청산리 혈투의 조선 광복군을 조선 독립시 소련 공산당 상해임정의 정치적 장애요소라며 소련군으로 하여금 기관총살시켜 괘멸 시킨 소련 공산당이었던 상해임정의 조선 광복군을 학살한 자유시 참변사건!
김규식 여운형 이동휘 박헌영 김원봉 안창호 김구의 상해 임시정부는 소련 공산당 레닌의 세력이 되어 이승만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소련 공산당 김구 주석제로 바꾼 후 반공주의 민족파 노선 조선 무장 독립군과 조직원 111,700명을 일본과 중국ㆍ쏘련 공산당과 연대하여 쏘련령 자유시로 유인몰이하여 자유시(=연해주 쏘련령 스보보드니)에서 1928년 6.28.자정 막사에서 잠자는 반공 민족파노선 김좌진 지청천 홍범도의 조선 독립군을 기관총살로 괘멸시킨 레닌의 쏘련 공산당 상해임정의 공산당 김일성 세력들은 1921년 6.28부터 지금까지 120년간 위대한 대한민국 건국 수호자 반공안보 대통령들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들과 반공 대한민국을 폄하 선동 매장 탄핵 축출시키는 대한민국 반공안보해체 위장 민주화 대한민국 공산화 5.18 공작을 지속하고 있다.
<해방 공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 평등 반공 민주주의 국가로 대한민국을 건국하신 위대한 대한민국의 국부 이승만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을 78년간 독재자로 비하선동하여 역사에서 매장하고 레닌의 소련 공산당이었던 상해임정 공산당 주석 김구를 민족의 영웅 국부로 우상화 시킨 5.18 김일성 ㆍ스탈린의 좌익 공산주의 대한민국 반역 세력들의 대한민국 반공안보 해체 공산화 전략전술인 "100년 전쟁"은 현재도 진행중에 있다!>
■ 대한민국 헌법과 법치를 완전 파괴시킨 무뇌아 반역 매국노 고정간첩들과 김영삼이 만든 5.18 특별법은 김일성과 김대중을 위한 대한민국 공산화를 위한 법이며 공산주의자들의 살인폭력적인 인민재판법이다!
●광복후의 대한민국의 매국노는 광복전에 태생부터가 김일성과 북조선과 인공기를 위해 태어난 대한민국의 반역자로 대한민국과 태극기에 죽도록 거부감을 갖는 김일성의 전사들이며 폭동살인마들이며 김일성의 5.18 공산 세력이다.
●120년 동안 레닌의 세계 공산화 강령에 따라 공산화 확대 공산 살인폭동을 민주화로 선동하고 자유 평등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을 수호한 반공안보 세력을 공안독재자로 선동 공작한 스탈린ㆍ김일성의 5.18 공산 독재주의자들의 남한 공산화 공작 전략전술이 5.18 공산폭동이다.●
●광복후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에는 조선 왕조시대의 친일파 매국노는 대한민국의 매국노가 아니다.
광복후에 친일파는 대한민국 건국 수호자로 대한민국의 애국자이며 부패하여 망했던 과거 독재 살인 조선왕조 시대의 친일파 매국노는 시대가 바뀐 대한민국의 매국노가 아니며 광복후 친일파 애국자들을 매국노로 선동하는 김일성의 5.18 공산 좌익 세력들이 현재 대한민국시대에 친중파 종북 매국노인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 수호 반공 애국자들을 77년동안 친일파 매국노로 비하 선동 공작한 5.18 공산주의 김일성 공산 빨갱이 세력들이 반역 매국노이다.
과거 썩고 부패하여 겨우 일본 칼잡이 낭인 50여명에게 망한 살인 독재 조선 왕조시대의 왕족과 양반 관료들만의 시각과 관점에서는 조선 망국직후의 친일파가 매국노였겠지만 광복된 이후의 친일파는 매국노가 아니며 오히려 대한민국의 건국과 수호한 반공 수호 애국자들이다.
광복이후에 좌익 공산세력인 빨갱이들의 친일파 프레임은 북한 김일성도 포기한 반공세력만을 처단하는 스탈린과 김일성의 지령으로 한미일방위 안보동맹 파괴 목적의 반일 감정 선동은 반민족적 반역 범죄 행위로 친일파 청산이라는 북괴 김일성의 5.18 고정간첩들의 남한 공산화 전술 전략 공작으로 대한민국의 건국 수호 반공 애국 수호 세력만을 과거 조선왕조의 잣대로 친일파 누명을 씌우는 대한민국 반공안보해체 77년간의 공산화 공작 선동 전략 전술이었다. 1946년 9월 대구폭동과 1948년 2.8 사전 기획한 제주 4.3 폭동우 김일성과 박헌영의 지령에 의한 기획적인 공산주의자들의 시체팔이 선동극 공산화 살인 폭동이었으며 1980년 5.18은 광주 공산화 살인 폭동은 김일성과 김대중이 지령한 공산화 사전 공작이었다.
■3. 제주 4.3사건
ㅡ1948년 2.8부터 현재까지도 김일성의 5.18 공산 세력들은 스탈린과 김일성의 제주 4.3 지령과 사전공작 각본을 뺀채 전도본말로 제주 4.3을 단순 3.1절 친일경찰의 우발적 실수를 원인으로 미화하고 날조하고 가해자였던 4.3의 주체인 김일성의 5.18 빨치산 남로당 세력들의 천인공노할 악질 기획 살인 만행은 일절 숨기고 만행자들을 단순 억울한 희생자로 미화시켜 선동해온 김일성의 5.18 좌익 공산화 혁명 조직 세력들!ㅡ
1948년 한반도 조선인 88%가 공산주의 이념에 세뇌되었던 상황에서 이승만의 요청으로 UN에 의한 한반도 단독 대한민국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5.10 자유 민주주의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스탈린과 김일성의 공동 지령문 하달로 제주 남로당은 1948년 2.8월부터 6.25전쟁이 끝난후 1957년까지 10년동안 조선 로동당 인민군 사령관 김달삼의 주도하에 사전 폭동공작을 꾸미고 3.1절을 기해 폭발시킨 조선 로동당 남로당 제주지부 빨치산 15,000명이 1948년 5.10 대한민국정부수립 5.10선거를 방해 저지하기위한 공산화 무력 살인 폭동 공산 반란 사건은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종결처리했으나 김일성의 5.18 공산세력들은 지금도 대한민국 이념 공산화 공작을 계속 진행시키고 있다. ㅡ
1). 1998년 11월 23일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제주4·3은 공산당의 폭동으로 일어났다고 전 세계에 천명하였다.
2). 남로당 대정면당 위원장 이운방도 4·3의 주체는, 공산주의자이고 목적은 공산통일조국 건설이라고 증언했다.
3). 4·3주동자 김달삼은 스탈린ㆍ김일성 지령에 따라, 지하 선거를 통해 52,350명의 투표지를 가지고 월북하여 북한정권 수립에 앞장섰다. 김달삼은 북한으로부터 국기훈장 2급을 받았고,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혀있다.
4). 4·3폭동 주동자 김달삼 안세훈 강규찬 고진희 이정숙 문등용 등은 월북하여, 북한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북한정권 수립에 앞장섰다.
5). 1948년 10월 24일 남로당 인민유격대 2대 사령관 이덕구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전포고하였고, 국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6). 대한민국 건국 선거인 5.10선거 때 남로당은 인민공화국 건설을 주창하며 폭력으로 선거를 방해하여, 전국 200개 선거구 중 북제주 2개 선거구가 선거무효 되었다.
7). 4·3폭동 주동자들은 자칭 제주인민해방군이라 칭하면서, 적기가를 부르고 인공기를 흔들며 살인 방화 약탈을 자행했다.
8). 제주4·3 발발의 주체인 남로당은 조선공산당의 후계체이며, 남로당 강령은 마르크스.레닌 사상에 입각한 공산주의 체제 국가 건설을 목표로 했다.
9). 남로당 제주도당은 공식행사 때마다 항상 “스탈린 원수 만세” “김일성 장군 만세“라는 구호를 외치며, 그들이 공산당의 후예임을 밝혔다.
10).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됐음에도 남로당 폭도들은 건국된 대한민국을 상대로 6.25 전재이 끝난 1957년 4월 2일까지 10년 동안 항적했고, 국민과 군경 1,756명을 살해했다.
11). 4·3폭동 남로당 세력들이 남긴 유일한 문서인 에는, 1948년 3월 중순경 스탈린ㆍ김일성 상부로부터 무장반격 지령문을 받아 폭동을 일으켰다고 밝히고 있다.
12). 6.25가 터졌을 때 남로당 제주도 인민군지원환영회를 조직하고, 북한군이 상륙하면 그들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을 전복하려고 획책했다. -
ㅡ제주4.3 진실규명을 위한 도민연대ㅡ
제주 4.3은 1946년 2월에 세워진 38선 이북의 김일성 공산독재 살인 정권을 반대한 이승만 건국대통령께서 유엔과 미국에 요청하여 실시하게된 한반도 조선인들의 직접 보통 비밀 자유 민주 직접선거인 한반도 단일 자유 민주 통일 정부인 대한민국 정부수립 1948년 5.10 선거를 무력폭동으로 방해하기 위해서 UN 선거 감시시단의 38선 입북을 무력으로 저지했던 그리고 38선 이북에서 반공세력과 민족노선의 인사들을 인민재판 총살로 죽이고 1946년 2월에 스탈린의 소련군의해 세워진 김일성 괴뢰 정권을 지지하며 미군은 점령군이고 소련군을 해방군이라고 말하는 소위 김일성의 5.18 제주 남로당 공산주의 세력들이 스탈린과 김일성의 지령을 받아 인민군 사령관 김달삼 이덕구 안세훈 고진희 이정숙 문등용등 15000여명의 제주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이 1946년 2월 부터 치밀하게 음모 공작하고 제주도 선거구 선거 참관인 257명과 군경가족들 2750여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며 일으킨 10년동안 1948년 4.3부터 1957년 10월까지의 공산화 무장 살인 반란 폭동이었다.
제주 4.3 공산화 무력 폭동 반란 진압 사건을 진압한 미군과 국군을 무자비한 학살자 살인마로만 선동하면서 스탈린ㆍ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제주도민들을 선동하고 현혹시켜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하도록 피아를 구별할 수 없게 만드는 공산주의자들의 대중속의 게랄라 공산폭동 전술 전법에 의한 제주 4.3 공산화 무력 폭동을 민중 항쟁으로 선동하는 자들은 제주4·3의 악몽을 지우려는 제주4·3 피해자들이 아닌 북한 정권을 찬양 비호하는 반역 세력들이었다.
●남한의 좌익은 좌익이 아니라 뼈속까지 북한 김일성을 추종하는 공산주의를 민주주의라고 선동하는 공산주의자들이며 1948년 2.8 스탈린과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UN 감시하의 한반도 통일 단일 정부인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1948년 5.10 국민의 직접적인 자유 보통 비밀 민주 총선거를 살인 폭동으로 맞서며 국군에게 희생되었던 뼛속까지 대한민국과 국군에 원한맺힌 스탈린ㆍ김일성의 충복인 반역도들과 연관된 공산주의 세력들이다.
●<우리는 김일성과 고정간첩 김대중일당들이 음모공작한 광주 5.18 공산화 살인 무장 폭동 반란에 비무장 진압군으로 투입되었던 전라도 광주출신 계엄 공수 부대원들이었다.>
김일성과 김대중이 1960년대부터 제작 사전 각색하여 각본을 짠 광주 대한민국 공산화 공작 반공안보 국군 무장 해체를 위한 5.18 무장 살인폭동 반란.>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1448
■<1980년 5.18 직후부터 40여년 동안 대한민국 국민들을 사기친 북한의 공식적 거국적 전국가적인 추모 행사 "김일성의 광주 5.18 인민봉기" 5.18 민주화>
ㅡ김일성의 공산 통일 제2의 6.25 남침 전쟁을 위해서 무정부 공황 상태를 만드는 반공안보와 공권력해체 미군철수와 위장 평화와 민주화를 외치는 공산화 공작 살인마 폭력 전쟁광들이 남로당 박헌영의 후예들 5.18 김일성 주사파 공산세력들이다!ㅡ
북한의 대남 공작소가 1960년 제작한 북한 신천박물관의 상상력, 1980년 5.18 광주에서 실현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1448
남한보다 엄청 성대하게 거행하는 북한의 5.18 기념행사
북한이 발행한 두 개의 대남공작 역사책에는 5.18은 물론 남한에서 발생한 모든 소요사태가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이며, 남북한 역사는 북한이 주체적으로 주도한다는 판이 깔려 있다. 이러 하기에 북한은 이제까지 종주국 행세를 해온 것이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남북한이 모두 5.18 기념행사를 한다. 남한에서는 보훈처가 주최하여 광주에서 소규모의 행사를 하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통일부 '북한정세분석' 자료들이 증명했듯이 북한 전역에서, 당정 최고위 간부들이 참석하여 성대하게 거행한다. 아래 사진은 평양시에서 5.18 보고대회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 북한 평양 중앙노동자회관에서 광주인민봉기(5.18 민주화운동)30돌 기념 평양시 보고회가 열리고 있다(2010.5.17) ⓒ뉴스타운
통일부 정보분석실의 주간 북한동향 제73호(92.5.17-5.23) 5-7쪽
"북한은 최근 '5.18 민주화운동' 12주년을 맞아 평양시를 필두로 각지에서 군중집회를 개최하는 한편, 신문 방송 및 한민전 중앙위 명의의 '5월투쟁선언' 등을 통해 '과감한 반미-반파쇼 구국투쟁의 포문을 열라'는 등 연일 반미 반정부 투쟁을 극렬히 선동하고 있음."
"북한은 광주 민주화운동을 '광주인민봉기'라고 규정하여 매년 '평양시 군중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우리 국내 재야-운동권에 등에 대한 반미-반정부 투쟁선동의 계기로 활용해 오고 있는바, 올해에도 부총리 강희원, 조평통 부위원장 윤기복, 평양시 당책 강현수 등 고위 당-정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시 군중대회'를 개최하고 이를 각 시-도 군중집회로 확산시켰음. 5월 19일에는 평양, 평안남도, 황해남도, 황해북도, 개성 등 군중집회를 하였음."
북한에서 최고인 것에는 모두 '5.18' 호칭 붙여
북한에서 최고인 것에는 5.18 이라는 글자를 최고의 영예훈장으로 하사한다. '5.18 영화연구소'(2001년 09월 28일 연합뉴스 보도), '5.18 전진호', '5.18 누에고치반', '영예의 5.18 청년직장', '5.18 땅크호', '5.18 청년제철소', '5.18 청년호', '5.18 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 등등이다.
▲ 사진은 북한의 1만톤짜리 프레스, 이 장비는 대륙간 탄도탄 미사일 제작에 사용된다. 5.18 청년호 제1호 및 제2호의 사진이 있다. ⓒ뉴스타운
▲ 사진은 북한 기차역 플랫홈에 쓰인 천리마 운동 '5.18 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 ⓒ뉴스타운
김일성이 직접 제작한 대남 모략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
1989~91년 김일성은 황석영과 윤이상을 평양으로 불러 대남 모략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를 제작했다. 작품에 만족한 김일성은 황석영을 재간둥이라고 칭찬하고 25만 달러를 상금으로 주었고, 윤이상에게는 15층짜리 '윤이상 음악당'을 선사했다.
그런데 그 영화의 주인공은 광주 폭동 기간 내내 도망가 있던 박관현, 전남대 총확생회장이었다. 박관현은 이로 인해 좌파들에게 비겁자로 낙인찍혀 손가락질을 받았고,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감옥에서 단식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다. 5.18을 일으킨 주도세력이, 황장엽과 김덕홍이 증언한 바와 같이 북한의 대남공작부였기에, 광주인들 중에는 폭동을 지휘한 지도자가 없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북한에서 영화로 제작한 환각제를 빼갈에 타서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더불어 민주당 강령과 금속 노조 강령에 왜 북한 헌법 전문이 들어 있나?
<해방 공간에서 레닌의 소련 공산당 상해임정의 공산당 주석이었던 김구를 민족의 영웅 국부로 우상화 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 평등 반공 민주주의 나라로 대한민국을 건국하시고 수호하신 위대한 대한민국의 국부 이승만 건국 대통령 독재자 날조 폄하 비방 선동 매장 김일성 ㆍ스탈린의 5.18 반역 반란 세력들의 대한민국 반공안보해체 77년 공산화 공작>
●과거 조선왕조시대의 잣대로 대한민국 건국 수호 반공 애국 세력들을 죽창가 친일파 매국노 선동몰이한 김일성의 5.18 공산 반역도 세력들의 78년간의 대한민국 공산화 공작!
ㅡ로 광복후 대한민국 건국 수호 애국 반공 세력을 친일파 매국노로 비하 폄하 날조하여 선동한 5.18 레닌 스탈린 김일성 독재살인마 세력의 77년 대한민국 반공애국세력해체 반공안보해체 대한민국 공산화 공작●
조선왕조를 망하게한 진짜 매국노는 일제시대의 친일파와 을사오적이 아니라 개인 보신 이기주의와 부패로 조선을 망하게한 당시의 고종과 대원군 그리고 민비와 1%의 양반 관료들이었다.
국가의 모든 권한과 소유권이 국왕 1인에게만 있었던 살인 독재 전제 군주제시대였던 조선말기의 친일파 을사오적은 조선왕조의 매국노였을지라도 어떤 권한도 없이 왕과 양반관료들의 횡포에 핍박에 시달리며 살앗던 99%의 일반 백성과 종들에게는 당시의 친일파 을사오적은 자신들을 조선왕조의 종과 노예신분을 해방시켜준 은인이었다.
●ㅡ조선이 망한후에 일제시대에 일본국의 국민으로 살 수밖에 없게된 2천만 우리 민족 조선인들이 먹고 살아 남기 위해서는 모두 친일파가 아닌 충성된 일본국 국민으로 살 수 밖에 없었다. 일본국시대에 일본 관료로 살 수밖에 없었던 일제시대 관료들을 광복후에 그것도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에 친일파로 선동몰이하는 자들이 5.18 김일성ㆍ스탈린의 친중사대주의 북조선 빨갱이 매국노이며 반역자들이다.ㅡ
스탈린 레닌의 5.18김일성 괴뢰 공산주의자들은 광복후 공산화 반공세력 척결을 위해 북한 김일성도 포기한 친일파 청산이란 공산세력들만의 무소불위의 인민재판 칼을 만들어 위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철폐 남녀평등의 반공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기 위해 대한민국 반공안보를 군사 독재로 대한민국을 친일파 독재 국가로 위대한 대한민국 건국 수호 이승만 대통령과 반공 세력들을 모두 친일파 독재 살인마로 멍에를 씌우고 공산주의를 위해 타도해야할 인민재판 이념 투쟁 선동 목표로 만들고 77년간의 레닌의 세계 공산화 강령에 따라 대중 공산화 폭력 살인 투쟁을 민주화란 이념세뇌 공작으로 공산화 확장 공작 전술 전략 투쟁을 끊임없이 벌여왔다.
●광복전 레닌의 공산당인 상해임정때부터 지금까지 100년동안 살인악마 공작 공산주의자들은 미꾸라지 게릴라 민중 스파이 거짓 선동 전술로 조선인들을 공산주의 이념 세뇌공작으로 세뇌 시켰다.
●5.18 김일성의 좌익 빨갱이 세력들이 이승만 ㆍ박정희 ㆍ전두환 대통령을 살인마 독재자로 선동하며 죽도록 미쳐 날뛰며 증오하는 이유는 세계 최초의 세계적인 위대한 반공주의 지도자 이승만 대통령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뿐만 일백 수십개의 세계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과 건국도 없었을 것이며 또한 김일성과 김대중의 88%의 한반도 공산 세력들이 일으킨 3번의 1946년 대구폭동과 1960년 4.19와 1980.5.18 공산 살인 무력 폭동으로도 대한민국 공산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남북 분단의 원흉 5.18 스탈린ㆍ김일성과 좌익 공산주의 세력!
광복된 한반도에 왕조독재국가와 공산독재국가를 건국을 반대하며 프린스턴대학에서 국제법 박사였던 위대한 대한민국 건국 이승만 초대 대통령께서 미국과 UN에 주장하고 설득과 요청으로 1948년 5.10 UN의 감시하에 실시하게된 한반도 통일 정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무력 살인 폭동으로 방해 저지했던 스탈린ㆍ김일성 5.18 북한 공산주의 좌익 고정간첩 세력들은 대한민국 건국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반공안보해체 공산화 통일 공작 전술로 세계 최고 유일의 예수 그리스도의 평등 자유 반공 민주주의 국가인 위대한 대한민국의 국부인 위대한 이승만 대한민국 건국 수호 대통령과 그 세력을 친일파 미국의 앞잡이 독재자로 비하 날조 선동몰이 공산화 공작질을 하고 있다.
1946년 2월 38선 이북에 미리 김일성 공산독재 괴뢰정권을 먼저 세워놓고서 국제법 박사 이승만의 요청으로 1948년 5.10 UN이 실시한 한반도 단독 통일정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한반도 자유 민주 총선거를 친일파 독재로 선동 반대하며 방해한 악랄한 무력 살인 공산화 제주4·3 폭동과 여순 공산 반란군 사건과 6.25 공산화 남침 전쟁과 4.19,5.18 공산화 반란 살인 폭동공작을 민주화로 100년 동안 국민을 공산화 이념 세뇌시켜 대한민국 공산화 공작인 반공 안보 이념 해체 공작을 해온 반역도 스탈린ㆍ김일성 독재 공산주의 공산통일 5.18 좌익 빨갱이 세력들이다.
조선 최초의 왕족 예수 그리스도인으로 세계 최초의 반공주의 선각자였던 위대한 자유 평등 민주주의 수호자였던 위대한 이승만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은 왕조독재국가와 공산독재국가를 완강히 반대하며 대한민국을 신분제도를 철폐한 예수 그리스도의 평등 자유 민주주의 반공국가로 건국하시고 수호하신 위대한 이승만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의 끊임없는 신념과 임종시까지 통렬한 그의 일생의 기도는 은혜로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위대하신 기적이었다.
<대한민국 공산화 전략전술로 해방 공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 평등 반공 민주주의 국가로 대한민국을 건국하신 위대한 대한민국의 국부 이승만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을 독재자로 비하선동하여 역사에서 매장하고 레닌의 소련 공산당이었던 상해임정 공산당 주석 김구를 민족의 영웅 국부로 우상화 시킨 5.18 김일성 ㆍ스탈린의 좌익 공산주의 대한민국 반역 세력들의 대한민국 반공안보 해체 공산화 전략전술인 "100년 전쟁"은 현재도 진행중에 있다!>
■ 대한민국 헌법과 법치를 완전 파괴시킨 무뇌아 반역 매국노 고정간첩들과 김영삼이 만든 5.18 특별법은 김일성과 김대중을 위한 대한민국 공산화를 위한 법이며 공산주의자들의 살인폭력적인 인민재판법이다!
●광복후의 대한민국의 매국노는 광복전에 태생부터가 김일성과 북조선과 인공기를 위해 태어난 대한민국의 반역자로 대한민국과 태극기에 죽도록 거부감을 갖는 김일성의 전사들이며 폭동살인마들이며 김일성의 5.18 공산 세력이다.
●120년 동안 레닌의 세계 공산화 강령에 따라 공산화 확대 공산 살인폭동을 민주화로 선동하고 자유 평등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을 수호한 반공안보 세력을 공안독재자로 선동 공작한 스탈린ㆍ김일성의 5.18 공산 독재주의자들의 남한 공산화 공작 전략전술이 5.18 공산폭동이다.●
●광복후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에는 조선 왕조시대의 친일파 매국노는 대한민국의 매국노가 아니다.
광복후에 친일파는 대한민국 건국 수호자로 대한민국의 애국자이며 부패하여 망했던 과거 독재 살인 조선왕조 시대의 친일파 매국노는 시대가 바뀐 대한민국의 매국노가 아니며 광복후 친일파 애국자들을 매국노로 선동하는 김일성의 5.18 공산 좌익 세력들이 현재 대한민국시대에 친중파 종북 매국노인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 수호 반공 애국자들을 77년동안 친일파 매국노로 비하 선동 공작한 5.18 공산주의 김일성 공산 빨갱이 세력들이 반역 매국노이다.
과거 썩고 부패하여 겨우 일본 칼잡이 낭인 50여명에게 망한 살인 독재 조선 왕조시대의 왕족과 양반 관료들만의 시각과 관점에서는 조선 망국직후의 친일파가 매국노였겠지만 광복된 이후의 친일파는 매국노가 아니며 오히려 대한민국의 건국과 수호한 반공 수호 애국자들이다.
광복이후에 좌익 공산세력인 빨갱이들의 친일파 프레임은 북한 김일성도 포기한 반공세력만을 처단하는 스탈린과 김일성의 지령으로 한미일방위 안보동맹 파괴 목적의 반일 감정 선동은 반민족적 반역 범죄 행위로 친일파 청산이라는 북괴 김일성의 5.18 고정간첩들의 남한 공산화 전술 전략 공작으로 대한민국의 건국 수호 반공 애국 수호 세력만을 과거 조선왕조의 잣대로 친일파 누명을 씌우는 대한민국 반공안보해체 77년간의 공산화 공작 선동 전략 전술이었다. 1946년 9월 대구폭동과 1948년 2.8 사전 기획한 제주 4.3 폭동우 김일성과 박헌영의 지령에 의한 기획적인 공산주의자들의 시체팔이 선동극 공산화 살인 폭동이었으며 1980년 5.18은 광주 공산화 살인 폭동은 김일성과 김대중이 지령한 공산화 사전 공작이었다.
●5.18 특별법은 대한민국의 반공안보와 반공이념 세력과 헌법을 파괴한 위헌법 반헌법 인민재판법이다.
북한의 대남 공산화 5.18 특별법은 어떤 이유로든 무효이며 즉각 중지되고 폐기되어야 한다.
5.18 좌익 빨갱이들에게는 전시 군법도 아깝다.북한 김정은식 인민재판 으로 처형하라!민주팔이 김일성의 5.18을 추종하는 김영삼 정권이 하나회와 반공 애국 세력들을 독재세력으로 선동 몰이하여 궤멸시킨후 좌파 공산세력 시민단체들을 민주화 합법화 단체로 국고지원하여 우파 세력들은 괘멸되어 좌파눈치만 보는 정신무장이 얇팍한 조직체계도 없는 자유 분방한 개인 보신주의 복지부동 사리사욕 경제 이익만 추구하는 이합집산 세력이 되어
더불어 김일성ㆍ김대중ㆍ김영삼의 5.18 좌익 지리산 빨치산 조직들은 마파아보다 더 악마적인 부패하고 폭력 살인적인 헌법위의 무소불위의 세력이 되었고 목숨까지 바치며 헌신적인 김일성 공산주의 혁명 정신으로 무장한 소름끼치는 양산박 비밀 폭력 살인 마피아 공산화 연대 조직 세력이 되었다!
■좌익 대남 정치공작 공산화 자금이 된 민노총 조합원들의 조합비만 매월 3300억원이 3300명의 퇴사한 민노총 조합장 월급으로 최소 3300억원 소모! 정치 중립법으로 헌법을 위반한 전국 교직원 노조비 ㆍ 전국 공무원 노조비 각출 중단시켜야!
대한민국의 정치 세력으로 부상한 김일성의 5.18 공산화 반역도 고정간첩 무리들이 자유 평등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정치 체제를 악용하여 인권법과 정치 중립법과 5.18특별법을 만들어 대한민국 수호 반공안보의 권한과 의무를 가진 사법부 행정부 입법부와 군과 검찰의 반공안보의 의무와 권한을 박탈하고 족쇄를 채워 마취시켜놓고 대한민국 공산화 혁명 2단계로 가고 있다.
1946년 북한 김일성 괴뢰 정권을 수립한 스탈린과 김일성은 한반도 공산화 통일 전략 전술 한미일방위 동맹 파괴 공작의 일환으로 5.18 김일성 공산주의자가 아닌 대한민국 애국 반공 안보주의 세력에게만 무조건 친일파 프레임을 씌우는 공산화 강령 지령으로 77년동안 친미 친일 프레임 반미 반일투쟁 선동 공작을 해오고 있다 !
■광복후 77년간 쏘련 공산당과 북한의 지령으로 남한내 고정간첩 공산 세력들은 반공을 친일파 군부 독재로, 반공 안보 대한민국을 친일파 국가로, 반공 대한민국 헌법 파괴를 위장 민주화로 선동 몰이하여 대한민국 반공안보해체 공작으로 공직자 정치 중립법까지 만들어 공직자와 대한민국의 국가 안보 공권력에 족쇠를 채워 반공 애국 대한민국 수호 세력의 정치 활동을 묶어서 마비시키고 북한 공산주의 괴뢰 정권의 고정 간첩들의 공산화 선동 공작 활동만을 위한 5.18 공산화 특별법으로 "5.18 민주화 특별법을 만들어 남한에서 김일성의 고정간첩들과 공산주의자들은 5.18특별법으로 날개를 달고 40여년간 대한민국 공산화 공작 활동을 자유자재로 하고있다.
5.18 김일성의 남한 공산화 공작 선동 좌익 빨갱이 세력 핵심이 5.18 유공자 1만여명이며 이들을 철저히 재심사하여 이적 반역죄로 즉결 군사재판으로 총살 시켜야 한다!
처형시켜야 될 "5.18 인민봉기" 김일성의 북한 고정간첩 반역자들이 5.18 유공자로 모두 대한민국 국가 요직에 있다 !
지금 대한민국은 종전이 아닌 전시 정전 상황이기 때문에 여적죄로 일반 형법이 아닌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통수 명령으로 군법으로 모조리 즉결 총살시킬 수 있으며 즉결 총살시켜야 마땅하다.
정치파업 미군철수 반미 윤석열 타도 외치는 반국가 이적 5.18 세력들 더불어 민주당과 민노총은 주사파 5.18 김일성 김정은의 전사 방패들이며 문재인과 민노총은 전시 군법으로 총살시켜야 할 놈들이다.
광주 5.18 북한은 북한 김일성 고정간첩들과 남한 좌익들이 연대 공작한 남한 공산화 살인 폭동이다. 북한 관련 사항들을 공개 재조사하여 광주 5.18 당시의 사망자 112명외에(신원 미상 북한 인민군으로 추정자 11명 포함한 숫자) 희생자가 아닌 해마다 공훈된 가짜 유공자 1만여명 전원을 유공자 공훈 박탈하고 5.18 유공자법을 폐지하라!
■4. 김일성과 사전 각본을 짠 5.18 남한 공산화 살인 폭동 공산주의자 김대중의 실체■
ㅡ조선 로동당 남로당 목포시지부 청년동맹 선전부장 김대중ㅡ
의 5.18 민주화는 대한민국을 수호한 2500만 국군과 예비역 그리고 위대한 반공 자유 평등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수호한 위대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을 국민의 적으로 김일성이 사전 각색하고 고정간첩 김대중이 선동한 고려 연방제 공산화 통일을 위한 사전 단계 좌익 김대중 정권 세우기 대한민국 반공안보 해체 공산화 전술 살인 반란 공산혁명 폭동이었다ㅡ.
1945년 8월 7일 독립된 한국에는 많은 정당이 생겼는데 그중에서 제일 먼저 탄생된 정당은 조선 공산당 여운형이 주도하는 건국준비위원회로서 동년 8월 17일에 발족하였다. 김대중은 동월 26일 동회 전남지부에 입회하여 목포시지부 청년동맹 선전부장으로 임명되어 정치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한국의 정치상황은 극히 혼란한 상태였고, 미군정은 동년 9월 건국준비위원회를 좌익으로 단정하고 해산을 명했기 때문에 동회 그리고 청년동맹도 해산되었다. 김대중씨은 46년 3월 목포에서 결성된 신민당에 참가하여 조직부장이 되었다. 동시에 북조선의 지원으로 창설된 남로당(남한국공산당) 행동전위부대인 민주청년동맹 목포지부 부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김대중씨은 47년 6월 목포시내에 있는 大成(대성), 南橋(남교), 西橋(서교) 파출소 방화사건의 주범으로 경찰에 구속되었다. 이때부터 김대중씨은 미군정청과 경찰의 블랙 리스트에 올라 추적 당했다. 김대중은 48년 여름에도 전남 보성 경찰서 방화사건에 관여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한국 정부가 수립된 후, 한국내의 공산당 소탕작전이 전개 되면서 공산당에 가담한 자나 지지자들을 관리하는 보도연맹이라는 조직이 생겼다. 한국정부와 미군정보 기관은 보도연맹이 관리하고 있던 자들을 특별관리 하에 두었으나, 한국전쟁 발발시 북조선군의 공세에 밀려 후퇴하는 도중에 그 관리 하에 있던 자들을 체포하여 수만명을 총살했다. 그 중에 한사람이 김대중으로, 그 위기를 앞에 말한 바와 같이 김진하씨가 구하였던 것이다.
당시 서울 미군정보기관의 근무하고 있던 김진하씨는 좌익세력의 활동이 활발해진 전라남도에 파견되어 목포지구에 주둔하고 있던 미해군부대에 배속되었다. 김진하씨는 그곳에서 조사과정을 통하여 김대중씨가 좌익활동가로써 추적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김진하씨는 목포의 유력자이기도 한 김대중씨의 당시의 처 차용애(車容愛)의 아버지인 차보윤(車寶輪)씨를 만나 김대중씨에게 좌익운동에서 손을 떼도록 설득을 한 적도 있었다.
이때 마침 김대중씨가 공산주의자 임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49년 2월 20일, 김대중씨가 태어난 고향 근처의 신안군 임자면 출신의 북조선 스파이며 남로당 민족전선 부위원장인 兪在埴(유재식)이 체포되었다.
김진하씨가 털어놓은 바에 의하여, 북조선 왕래때마다 김대중씨에게 활동자금이 제공되었던 사실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김대중씨는 광주의 전남경찰국에 체포되었다.
이때에도 장인 차보윤씨가 상당한 로비자금을 사용하는 한편, 김진하씨는 목포지구 한국 해군대장(韓國海軍隊長)이던 朴城哲(박성철)씨에게 김대중씨의 보석 협력을 의뢰하는 동시에, 미해군 대장에게 설득해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한 보람이 있어 김대중씨는 박성철씨의 신원보증을 얻어서 보석되었다는 것이다.
K씨는 김대중씨가 공산주의활동을 한 까닭에 미해군함정에서 총살형의 위기에 있었음을 발견하고 미군장교에게 자기의 친한 친구임을 보증하여 김대중씨의 목숨을 구하고 있다.
K씨는 김대중씨와 동향으로 보통학교와 목포상업학교의 동창이며 당시 K씨는 미군정보기기관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 후 쭉 2,3년 전까지 김대중씨와는 서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고 한다. K씨의 생생한 증언에 의하면, 목포에 주둔하고 있던 미해군에 부산으로 후퇴 명령이 내려진 것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이틀 후인 6월 27일 오전이었다. 그 때 공산주의자나 동조자 등 수백명이 경찰에 체포되어 미군함정에 수용되었다. 그 중에 K씨는 김대중을 발견하고 자기가 갖고 있던 메달을 건네면서 "김대중의 이름을 호명하더라도 절대 대답을 하지마라 대답을 하게 되면 총살된다"고 말해주었다. 그 후 미해군 장교가 체포자 명부를 갖고 확인작업에 들어갔으나, 김대중의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 장교는 이름이 호명되지 않은 자는 앞으로 나오라고 지시하였으며, 김대중은 K씨로부터 받은 메달을 손에 들고 앞으로 나왔다. 메달에는 미군정보부소속요원을 증명하는 K씨의 이름이 들어있었고, K씨는 그 장교에게 "이 사람은 나의 친구로 정보수집을 위해 메달을 건네주었다. 이 사람은 김대중이 아니다"라고 가짜로 신분보증을 했기 때문에 김대중은 총살을 면했다고 한다. 그런 김대중씨는 한국전쟁 휴전 후 정치가로 변신하여 어떤 뜻에서는 김진하씨에게 은혜를 갚게 되었다. https://levi.tistory.com/m/255
■5.ㅡ419 데모에 가담하지도 않은 김주열군을 납치 살해하여 눈깔에 경찰 최루탄을 망치로 때려 박아 밤에 몰래 바다에 던져 썩혀 한달후 처참해진 썩은 시체를 다시 건져올려 썩은 시체팔이 선동으로 공산혁명 4.19를 선동 공작한 남파 간첩들. ㅡ
518당시에도 북에서 남파된 게릴라 공작단들은 국군복장으로 여자 임산부를 죽이는 모습과 유방을 자르고 시체의 각을 뜨는 모습까지 촬영하여 북으로 전송하여 생중계하였고 1980. 5.18직후 북으로 탈출한 작가 황석영과 작곡가 윤이상이 김일성님을 위한 교향시로 영화까지 만들서 40년동안 북한 모든 북한 공식 기록과 교과서에까지 광주 5.18 인민봉기는 북한 김일성의 교시로 이루어진 대남 공산화 작전이었다고 증명하고 있으며 대남 공산화 선동 자료로 활용을 해왔다. 위대한 대한민국 반공 수호 전사들인 전두환 공수부대가 하였다면 그런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http://www.thetimes.kr/mobile/article.html?no=38895
■ㅡ6. 김일성의 간첩이었던 독일인 기자 힌츠 페터가 광주 5.18에 잠입하여 찍은 사진들의 인물들은 광주 5.18 직후 북한 5.18 기념식장에서 40여년 동안 김일성의 1급 국기훈장을 받고 영웅 렬사가 된 1200명의 광주 5.18 남파 공작원들의 활동 사진.
실탄 무장 계엄군이 투입되기 직전 1980.5.20 삼엄한 광주에서 1980.5.20 이전의 사진들을 만들어 일본으로 빠져나가 북으로 전송한 광주 5.18 인민봉기 선동용 사진속 인물들 1200여명은 지금까지 남한에는 없는 해마다 북한 평양의 5.18기념식 행사에서 수십년간 거행된 광주 5.18 인민봉기 기념식장에서 김일성의 1급 국기훈장을 받고 영웅렬사가 된 북한 정찰국 소속 광주 5.18 인민봉기 남파 공작원들. 해마다 보훈처가 아닌 광주시 빨갱이들이 남한 공산화를 위해 공훈하여 숫자를 늘려가는 조작된 남한 공산화 공작 자금 공급처가 된 518 당시 116명 사망자를 제외한 5.18이후의 가짜 5.18 유공자 5000여명은 공훈 무효화 되어야 한다. 계엄군의 광주 518 진압 작전이 종료된 5.27 사망자는 총116명과 가짜 부상자 합하여 사망 부상자 합계 총 437명.(당시 광주시민 보건과 담당 공무원의 증언과 공식 자료) 중 당시 국군 계엄 공수부대가 소지한 소총 M16에 의한 사망자는 30% 31명였으며, 국군 공수부대의 소총M16 아닌 대부분 시민군이 예비군 44개 무기고를 털어 탈취소지했던 카빈소총과 M1소총에 의한 총상 사망자수가 70% 85명이며 광주 폭도 시민군들이 학살한 계엄군 국군 사망자 27명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당시 연고대생이란 대학생 사망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무기고를 털며 중무장하고 장갑차와 군용트럭을 몰며 활개치던 전남도청을 장악했던 수백명 북괴군으로 추정된 이들 시민군들은 유공자라며 시체도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김일성에게 수시로 거액 자금을 받았던 위장 독일 기자 김일성의 간첩 힌츠 페터가 북으로 보낸 광주 518 사진속1200여명의 인물들은 지금까지도 단 한명도 5.18 유공자로 남한에서 나타나지 않는 북한 고위층으로 북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자들이다. https://m.youtube.com/watch?v=aJcJe7yetHs5
■7. 김일성의 지시로 광주 5.18 기획
ㅡ1980년 광주 5.18 인민봉기 기획자인 북한 김중린과 문제심은 5.18 당시 북한 대남 통일 선전부장겸 인민군 정찰 총국장이었으며 광주 5.18에 남파되어 전남 도청을 장악하고 통솔했던 문제심은 북한군 1010 부대 (중앙당 연락소 소장 중좌) 부대장이었다.ㅡ
당시 북한군 현역 중장(별/2) 이었다. 한국의 소장에 해당된다.(P101) 문제심은 김일성의 명령에 따라 '5.18작전'을 직접 기획했으며, 명령을 받고 50명을 대동하고 광주에 침투해서 전남도청까지 접수하고 작전을 지휘감독하다 전두환 계엄 공수부대의 실탄 무장 재투입 작전으로 철수해 돌아갔다. 김일성, 박정희 대통령 저격(1979년 10월26일) 직후부터 광주작전 세웠으며, 작전지시 6개월만에 실행 지령 내렸다. ㅡ교도지도국(저격, 경보병, 항공육전대)과 조선인민군 정찰국에 명령 하달. 정신적, 육체적으로 준비가 된 우수한 전투원들을 선발하라!(P102) 김일성이 조선노동당 군사위원들과 대남정책 관련 담당자들 앞에서 한 말 ㅡ "지금까지 남조선 해방을 위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지 동무들은 잘 알 거야. 우리는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내는 전쟁까지 했지만 남북 분단은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어. 지금은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는 방법으로는 통일을 할 수가 없어. 이제는 전략, 전술을 현시대에 맞게 바꿔야 해. 그래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남조선 혁명가들에게 통일자금을 보내주었어. 내가 돈이 남아돌아서 그렇게 한 줄 알아? 그들과 함께 남조선 괴뢰정부를 뒤엎을 결정적인 시기를 마련하기 위해서야."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고 나서 괴뢰정권 치안이 밑뿌리채 흔들리고 있어. 남조선 내부가 크게 혼란에 빠진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남조선을 해방시킬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남조선을 미국놈들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킬 수 없으며, 통일은 먼 훗날의 이야기로 될 거야."(P102) 작전이 실패하면, 김대중을 남조선 대통령으로 만들라! 그는 내가 공들여 키운 사람이다 "내가 그래서 이런 일을 미리 내다보고 김대중을 비롯한 남조선 혁명가들과 민주인사들에게 많은 투자를 해왔어. 우리가 남조선을 타고 앉든가 그렇게 안 되면 김대중을 남조선 대통령으로 만들어 내야 돼.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연방제식 통일국가를 만들 수가 있어. 그것이 내가 구상하고 있는 통일국가를 만들기 위한 전략이야. 김대중이 우리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도록 내가 물심양면의 많은 지원을 해놓았어." 북한특수군의 군사작전 요청은 김대중이 했다 "전라도는 김대중의 고향이야. 그가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는 곳이기도 해. 원래 전라도는 봉건시대부터 반란, 폭동을 많이 일으켜온 지역이야. 그 지역 백성 놈들의 민심을 잘 이용하라. 그러면 남북통일을 만들어내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어. 현 정세에 맞게 남조선 혁명가들과 합심하여 전라도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킬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야 해. 김대중은 나에게 그런 계기를 만들어 주겠다는 연락을 보내왔어. 한 마디로 광주에서 시위가 일어나면 폭동으로 확대시켜 남조선 괴뢰정권을 전복시킬 군사작전 계획을 세워 달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몇 달 전부터 동무들한테 작전계획을 만들라고 지시했던 거야. 계획대로 폭동이 일어나면 전라도뿐 아니라 남조선 전역으로 퍼져나가도록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만들어 보라. 주도세밀하고 가능성이 있는 계획은 작전 승리의 열쇠야. 청와대가 있는 서울과 남조선 전 지역으로 폭동이 확대되게 하라. 괴뢰정부 기능이 마비되면 우리는 피를 흘리지 않고도 남조선을 타고 앉을 수가 있어."(P103) 김일성, '5.18작전 지시' 전 주요 간부들과 3일간 릴레이 토론했다.(P104~111) =인민무력부장, 통일전선부, 교도지도국 산하 정찰국, 대남연락소 책임자들이 토론 대상= 김일성은 대남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김중린과 문제심을 따로 불러들였다. "김중린 부장, 문제심이 제출한 광주작전 계획안을 봤어?" "네, 봤습니다. 수령님." "어때?" "주도면밀하게 세운 작전안인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김 부장, 문제심의 작전안을 최고사령부 작전조 성원들과 함께 빈틈이 없는지 다시 한 번 검열해서 나한테 서면으로 제출하라." "알겠습니다."(P104) 아시아자동차, 무기고, 교도소 습격 작전계획은 김대중 하수인들과 북한 공작원들의 합작품이었다 "그리고 말이야 김대중이 보냈다는 소식을 다시 한 번 말해보라." "네. 수령님, 김대중 선생이 보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번 광주작전에 대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그럼 김대중이 우리한테 요구하는 것은 없어?" "그쪽에서 우리에게 요구한 것은 북조선에서 조선인민군 부대들을 남조선에 파견하여 시위를 폭동으로 만들어 달라는 요구입니다." "폭동이면 무장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옳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희 공작조들이 김대중 선생의 지시를 받고 온 사람들과 전라도 지역에 산개해 있는 무기고, 교도소, 아시아자동차에 대한 습격 작전 계획을 완성해 놓았습니다." "그 작전안은 누가 계획했어?" "문제심 소장이 제출한 작전안을 작전조에서 검토했습니다. 그 결과 1010군부대에서 제출한 작전 계획안대로 진행하기로 최종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래? 항상 설마가 일을 망치는 법이야. 만에 하나 실수가 있어서는 안 돼. 절대 자만하지 말고 빈틈없이 이번 광주작전을 밀고 나가라."(P105) 김대중은 내가 키운 사람, 그와 연계 잘 하면 광주작전 큰 도움 될 것 "김대중을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 놓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물론 김대중에게 돈을 비롯해 투자를 많이 했지. 이제는 대가를 받아낼 때가 된 거야." --- --- "김대중과 연계를 잘 가지면 이번 광주작전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승리의 요인은 심리전이야. 심리전을 잘만 하면 우리가 피를 흘리지 않고도 서울에 무혈입성 할 수 있어. 나에게 제출한 작전 계획에서 심리전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세워 다시 보고하라."(P105~106) ---- ---- https://m.youtube.com/watch?v=entYPrZxYvk&feature=share
8. 김일성과 김대중의 5.18 사전 각본
ㅡ고정간첩 김대중을 민주화 투사로 대한민국 수호 반공세력과 국군과 전두환 대통령을 국민의 적 독재살인마로 선동한 각본ㅡ
하며 사전에 미리 각본을 짠 북한 독재 공산주의 김일성과 남로당 김대중 세력들의 가짜 민주화 5.18 공산화 살인 폭력 무장 공산 폭동 반란.
ㅡ미국 CIA 문건 ㅡ
중앙당에서 내려온 지도검열부장은 광주인민봉기는 남조선을 해방하고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확실한 계획에 따라 김일성과 김정일이 대남연락소가 아닌 조선인민군 정찰국과 특수부대들을 비롯한 전투무력들을 직접 광주에 파견하여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도울 데 대해서 특별히 지시하고 진두지휘까지 했다고 하였다 (pp. 357-358). 광주인민봉기에는 그 사람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특수부대 전투원들이 참가했는데 그 사람들은 광주인민봉기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남조선에 침투되어 들어가서 사전 준비 작업을 했었다고 했다. 광주에 참가했던 사람들마다 임무가 서로 달랐는데 그들이 광주에서 수행하여야 할 기본 임무는 남조선 인민들을 자극시켜서 봉기에 자각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특수 교란작전이었다고 하였다 (p. 361). 탈취한 장갑차는 시민군들이 기술부족으로 다룰 수 있는 수준이 안되기 때문에 북한에서 나간 특수부대 요원들의 몫이었고 군용트럭들도 일부는 북한요원들이 사용하면서 대부분은 시민군에게 나누어 주어 그들로 하여금 기동성을 보장하게 하는 한편 항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p. 300). 창고장의 일행이 광주에서 빠져나오는 날 공수부대를 비롯한 계엄군은 탱크와 장갑자들을 앞세우고 무력으로 다시 광주 시내를 무차별적으로 점령하였고 북한특수부대요원들의 주동적인 노력에 의해서 전국적인 무장봉기로 확산될 뻔했던 광주사건은 아쉽게 실패했다고 한다. 창고장 일행은 백령도로 건너가서 며칠 동안 잠복해 있다가 북한 대남연락소 소속의 잠수정에 의해서 남조선을 빠져나갔다고 하였다 (p. 302). 북한과 광주에서 동시에 일치한 구호 (원제: 5·18 굉주와 북한) "찢어죽이라"는 한국 말이나 전라도 사투리가 아니라, 북한 말이다. 북한군의 5.18 구호 ▲ 5월 21일 오전에 전남도청을 공격하는 북한군들이 탄 군용트럭 범퍼에 북한 말로 사람을 "찢어죽이라"는 살벌한 구호 현수막이 부착되어 있었다. 배후에서 조종하면서 전국적으로 광주인민항쟁의 여파가 퍼져나가게 만드는 것이 북한에서 파견된 사람들의 임무였지만 생각처럼 사건이 번지지 않자 북한에서는 현장에 파견된 특수부대 요원들에게 될수록 정체를 노출시키지 말고 주도적으로 폭동을 유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하였다. 북한으로부터 새로운 지시가 떨어지면서 특수작전요원들은 시민군들 속에 위장 침투하여 본격적인 살인, 파괴활동을 조작하면서 광주시민들을 자극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광주인민봉기에서 죽은 사람들 중에 실제로 진압군에게 맞아 죽은 사람은 얼마되지 않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북한에서 파견된 특수부대요원들에 의해서 무참하게 죽었다고 공화국영웅의 말을 빌어서 친구는 말했다. 북한에서 파견된 특수부대원들의 정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눈치를 채거나 이상한 기미를 보이기만 하면 그들은 두말없이 즉석에서 시체가 되어 처리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북한에서 파견된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르지 않거나 그들의 요구에 불응해서 도망가면 그 사람들 역시도 절대로 살려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pp. 361-362). 경찰 등을...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라는 멘트로 시간마다 반복하여 보여줬다. 광주가 진압되자 사진들을 광범위하게 전시 하였는데, 임산부 배를 가르는 장면과 어린 여자대학생의 옷을 벗기고 젖가슴을 도려내는 장면을 비롯한 끔찍한 살인 장면이 있었다. 테레비에서 보았다. 친구 한명이 텔레비에서 손에 기관총을 들고 발로 트럭을 운전하는 사람이 나오자 그 사람을 가리키면서 저 사람이 북한에서 파견된 특수부대 사람이라고 하였다 (p. 33). 큰 언니 형부가 북에서 특별훈련을 받은 미인 아가씨들도 광주봉기에 개입했고 그들이 뒤에서 조정했다고 하였다. 남조선에 숨어있는 지하조직들과 협동해서 무기고를 탈취하고, 또 사람들을 죽이면서 광주인민들을 자극했다고 하였다. 강원도 어느 탄광인지, 그곳에서 일어났던 봉기에도 참가했다고 하였다. 남조선에서 북한으로 귀순한 사람이 부대에 내려와서 강연하는 것을 보고 더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광주봉기 때 시민군 지휘부에 있었고 북한 특수부대와 혐동해서 통일을 위해 싸웠다 하였다. 남조선에 갔다가 부상을 당하고 온 공장 당 위원회 초급당 비서에게서 강연시간에 직접 들었다 (p. 34 당중앙위원회에서 간부들에게 보내는 지침서에서도 광주무장폭동에 참가한 동지들은 조국통일을 위하여 크게 헌신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공화국 영웅칭호를 수여하는 것은 당에서 응당 해야 할 일이고 영웅 전사들의 모범을 따라 배우기 위한 운동을 강력히 전개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1만 톤 프레스와 같은 이름 있는 대형기계에 까지도 5.18광주무장폭동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5.18청년호 라는 명칭을 달아주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희비극을 만들어 냈다 (p. 209). 김일성은 광주폭동이 성공해서 전국적인 인민항쟁으로 퍼져나갔다면 남조선괴뢰정권은 무너지고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새로운 혁명정권이 남조선에 수립될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것이 큰 실수라고 말한 적이 있다 (p. 209). 김정일도 자기의 생일날인 1981년 2월 16일 광주인민봉기는 수령님께 바치는 나의 생일 선물이었는데 우리의 역량이 너무 적어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수령님을 볼 면목이 없다고 일군들 앞에서 말했다 (p. 210). https://www.bookstore21.net/english/north-korea-evidence.html
■9. ㅡ 우리는 광주 5.18에 참전했던 전라도 광주 출신 공수부대원들과 대대장이었다.ㅡ
지난 2020년 1월 3일에 출범한 5∙18진상규명위의 조사 과제 중의 하나가 계엄군 성폭행 의혹이다. 그 의혹은 사실에 근거하는가 아니면 유언비어에서 비롯하는가? 1980년 5월 20일 아침에 광주에 도착한 3공수여단은 광주에 하루 남짓 있었고, 김치년씨는 12대대 작전병이었기에 그 날의 너무도 황당한 유언비어들을 사복경찰로부터 접수할 수 있었다: 게다가「경상도 군인만 내려왔다」는 유언비어가 전 광주지역에 퍼져 나가고 있으며 그 외에「공수 부대가 유부녀를 겁탈한다」느니「술을 먹거나 환각제를 맞았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사복 경찰로 부터 접수되기 시작했다. 이런 유언 비어는 결국 상대방의 감정을 극한 상황으로 끌고 가기에 충분했다. 전라도 출신인 대대장은 지역감정을 악용한 유언 비어를 보고 받고 『경상도 출신 군인은 대열 후미에 배치시켜 광주 시민을 자극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였다. 가까운 시위 진압 현장에 투입되지 않은 나는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허무 맹랑한 유언 비어를 들으면서 코웃음 쳤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우리가 유부녀를 겁탈한다? 전시와 똑같은 상황에서 대열을 이탈해 그런 행위를 저지른다는 것은 곧 자신의 죽음을 뜻하는 것인데 어느 정신 나간 친구가 대열을 이탈할까. 특히 일개 중대가 장교 2명 사병 10명으로 구성된 12명의 최소 인원 단위에서 그러한 행위가 가능할까. 더구나 그날 가장 과격한 시위가 벌어질 무렵 우리 부대원 대부분은 저녁식사를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급식차량이 시위대에 밀려 부대원에게 공급되지 못하고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지치고 피곤한 대원들에게 환각제나 술이 공급될 리 만무했다 (김치년 1996, 428). 김치년이 광주에서 들은 유언비어들은 “경상도 군인만 내려왔다” “공수부대가 유부녀를 겁탈한다” “술을 먹거나 환각제를 맞았다” 등 이었다. 그러면 5월 20일에 광주시민들은 무슨 근거로 이런 소문들을 퍼뜨렸는가? 전라도 군인은 없는 것을 누가 확인했는가? 그 날 광주 시내에서 겁탈당한 유부녀가 있었는가? 군인들이 환각제 맞은 것을 시민이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퍼뜨린 소문이었는가? 아니다. 그 유언비어들을 광주인민봉기를 선동할 목적으로 북한의 대남방송이 퍼뜨린 유언비어 들이었으며, 제일 먼저 간첩들의 입을 통해 퍼져나간 유언비어 들이었다. 유언비어를 입으로 유포하면 증거가 남지 않지만 유인물로 유포하면 증거가 남는다. 오천 명의 5∙18 유공자들 중 상당수는 광주사태 때 광주에 간 적이 없었으나, 유언비어 유인물을 유포한 것을 공적의 근거로 유공자가 된 자들이다. 대표적인 유언비어 작가들 중에 현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특보 김현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제작한 악성 유언비어 유인물을 복사하여 배포한 것을 근거로 5∙18 유공자가 된 이들이 무수히 많다. 예를 들면, 박해전(용문중 교사), 김창근(천안경찰서 경찰관), 김현칠(대전지검 천안지청 직원), 이재권(금산새마을금고 직원)씨와 이들의 고교 은사 황보윤식(대전공고 교사, 이상 당시 직업)씨 등이 2005년에 추가로 5∙18 유공자가 되고 많은 보상금을 받으며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그들이 광주시민들이었는가? 아니다. 광주에 간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은 광주사태가 끝난 지 여러 달 후에 천안과 대전 등 타 도시들에서 ‘전두환 광주 살륙작전’란 제목의 유언비어 유인물을 퍼뜨린 것을 공적의 근거로 5∙18 유공자들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의 광주살륙작전」은 김현장의 순수 창작이 아니라, 북한의 대남선동방송을 표절한 내용들이 훨씬 더 많았다. 예를 들어, ‘광주 시민 70%는 죽여도 좋다” “전두환의 특별살륙 명령으로” “광주역 앞 분수대에 여학생을 발가벗겨 세워놓고 칼로 유방을 도려내어” “부마사태 때는 전라도 군인, 금번 광주 살륙에는 경상도 군인을 투입하여 지역 감정을 유발시키고” 등의 과격하게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문구들에 대해서 김현장은 순수하게 자신의 창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2017년 5월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래 5∙18 유공자들의 수가 부쩍 늘었는데, 2018년에 새로 5∙18 유공자가 된 자들 중에는 김상회도 있었다. 김상회는 광주시민군도 광주시민도 아니었으며, 광주사태 때 전라남도 광주에 간 적도 없었다. 그는 전라북도 전주에서 근무하던 전경이었다. 전주에서 전경으로 근무하였던 그가 무슨 공적으로 5∙18 유공자가 되었는가? 그는 1980년 5월 22일 광주사태 유언비어를 프로파간다하는 북한의 대남 방송을 들은 후 폭동을 선동하는 유언비어를 받아써서 가족에게 편지로 보내면서 북한의 광주인민봉기 중계방송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말하고 북한의 광주인민봉기 중계방송을 가족도 듣고 알리라고 했던 것을 근거로 5∙18 유공자가 되었다. 그런데 5∙18 유공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북한방송을 들었던 자는 5·18기념재단 설립자 윤한봉이다. 2006년 1월 24일자의 “윤한봉 구술녹취문”에서 윤한봉은 자신이 1976년에 북한방송을 듣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당시 북한은 대남방송을 통한 원격교육으로 남한 운동권을 교육시키고 있었다. http://mehansa.com/p253/30740
10..■5.18 김일성 주사파 공산주의자들의 세월호 수장 살인 촛불 공산화 혁명 공작!
● 헌정파괴 공산화 인민재판 박근혜 대통령 사기탄핵과 북조선 노동당 강령과 똑같은 더불어 민주당과 정의당 200석을 위한 5.18 공산세력의 4.15 부정 선거 ●
4.15 선거에서 48cm의 사전 투표용지는 접어야만 22cm 등기 우편 봉투에 넣을 수 있는데 접히지 않은 사전 우편 투표용지 1200만표가 지역 개표 선거구에서 왜 나왔나? (48cm 크기의 1200만장의 사전선거 비례투표용지를 한장도 접지 않고 어떻게 20cm 우편 봉투에 넣어서 선거구로 발송했다는 것은 투표지 바꿔치기 100% 조작된 부정선거였다.)
●ㅡ좌익정권 만들기 대한민국 공산화 세월호 수장 촛불혁명 인민재판 탄핵 공작 ㅡ
빨갱이 노무현 정권 시절 2000억원 국고로 청해진 해운 유병언의 부실채권 메워주고, 유병언일가의 재산은 한푼도 회수하지 않은 청해진 해운 채권 소유주를 왜 노무현 아들 노건호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변호사였던 문재인의 소유로 만들고,
ㅡ왜 더불어 민주당과 전교조는 세월호가 침몰되기도 한달전에 미리 세월호 침몰 특별법을 만들기 위한 간담회를 갖고 있었나?ㅡ
왜 청해진 해운과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은 좌파 공산화 광화문 촛불 광우병 시위 공작금까지 충당해주고, 20년 지난 고철 세월호를 일본에서 사들여 500명 단원고생 인신 공양배로 팽목항 바다에 수장시켰나?
전교조는 왜 채권자가 문재인 소유인 청해진 해운의 세월호에 왜 단원고생 500명 분산 탑승시키라는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 지침을 어겨가며 주사파 세력들은 왜 짙은 안개로 모든 선박 출항금지 명령을 어기고 문재인 주사파 송영길 인천시장과 통진당 소속 경기도 교육감 김상곤과 전교조 교사들과 좌파 해경 권력까지 주사파세력들이 총동원하여 박근혜 정권을 농락하며 문재인 소유의 세월호를 불법 출항시켰나?
왜 문재인 세월호의 전복을 방지 하기 위한 평형수도 모두 빼내고, 왜 배가 쉽게 침몰하도록 주인도 없는 목적지도 없는 철근 화물을 잔뜩 과적하였으며,
왜 정해진 항로를 이탈하며 어선도 안가는 위험한 물살 센 팽목항 쪽으로 갔으며,
왜 급회전 360도 강제 변침 회전을 하여 시동을 꺼서 세월호를 기울게 좌초시켰으며, 왜 화물 칸막이 철제벽도 뜯어내 화물이 쏠리게 하여 배를 강제로 뒤집어 업었으며,
왜 문재인의 전남 좌빨 해경 책임자는 학생과 승객들은 배에 가둬 놓고 구원파 선장과 승무원들만 몰래 빠져나오게 했으며,
왜 문재인 청해진 소속 정식 승무원들도 아닌 당일 알바 승무원들로 교체시켜 제주도에 도착해서 승무원으로 채용한다고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 하였으며,
왜 문재인 좌빨 구원파 좌빨 전남 해경은 박대통령의 육해공군과 한미연합군과 주위 어선들의 구조 작업 접근을 금지시켜 103분에 침몰시키고서
왜 좌빨세력과 언론들은 있지도 않았던 박근혜 대통령 거짓 세월호 7시간을 굿을 했다고 거짓 선동하였나! -
12.
● 대한민국 헌법을 파괴한 김일성의 5.18 세력들의 공산화 공작 *인민재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쑈!
ㅡ입법권ㆍ사법권(재판권,판결권,선고권)ㆍ행정권없는 위헌 심판 법률 심사 기구인 사법부 보조 기관 헌법 재판소ㅡ
헌법재판소는 국민이 직접 선거로 선출한 삼권 총수인 대통령의 상위기관이 아니다.
5.18 촛불 주사파 세력의 위협에 헌재의 위헌적인 헌법파괴 무소불위 월권 박대통령 파면 탄핵 인민재판 생쑈는 원천무효! 헌법 재판소는 입법부 국회에서 통과시킨 입법된 법률과 행정부 수반 대통령령과 국회의 탄핵소추안건에 대해서만 합헌여부를 심사하여 심판 결정하는 위헌심판 결정 기구일뿐이다.
헌재는 대법원까지만 가지고 있는 사법권은 (=재판권,판결권,선고권) 가지고 있지 않다.
헌재는 사법부의 보조기관이지 사법부와 삼권 위의(입법부,사법부,행정부) 수장인 대통령 위의 상위기관이 아니다.
그러므로 헌재의 권한은 국회에서 소추하여 통과시킨 박대통령 탄핵안 18건에 대해서만 합헌 여부를 심사 심판 결정하는 권한만을 가지며 헌재가 만장일치로 국회가 소추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건 18건에 대해서 만장 일치로 헌법 불합치 심판 판정을 내렸으므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기각된 심판이었다.
그러나 입법권ㆍ사법권이 없는 헌재가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18건 헌법 불합치 판정외에 별도로 헌법에 대통령 탄핵 조항에 명시되어 있지도 않은 직권남용죄와 헌법수호의지 박약죄란 죄명으로 유추하여 기고만장하여 인민재판으로 박대통령을 파면 선고한 것은 사법 권한인 재판권도 판결권도 선고권도 없는 헌법재판소의 월권 남용 인민재판 사기 헌법파괴 행위였으며 대국민 사기극 인민재판 여론 쑈였으며 이는 모두 원천 무효로 대한민국 헌법을 파괴한 5.18 좌파 공산주의 세력들의 공산화 인민재판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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