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3. 근세초기 유럽(1400-1715)의 정치철학 (Continued 1)
(b) 종교개혁의 정치철학
루터가 성공한 신학적 배경에는 3가지 중요한 발전이 있었다. 첫째 그루테와 켐피스 등에 의한 신비주의의 급속한 발전으로,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강조하고 개인주의, 의지주의, 민족주의 같은 개신교 요소를 발견하였다. 둘째 아퀴나스는 철학과 신학을 구분하여 각각 완전히 독립된 학문으로 보았고, 오컴은 인간의 이성은 신의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셋째 교회 대분열 기간에 조정주의(Conciliarism)가 출현하여, 콘스탄스 위원회(1414-18)가 교황에 우선한다는 것을 선언하였다. 추기경 니콜라스는, 1448년 주교의 일반위원회를 통합된 기독교도의 화합으로 보고, 교황의 절대주의를 부정하였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므로 정부는 피지배자의 동의에 따라 설립된다고 하였다. 교회분열이 봉합된 이후에 로마는 교황 정부의 군주제를 확립하였다.
루터와 칼뱅의 정치사상: 신과 인간 간의 관계: 루터와 칼뱅은 신과 인간과의 관계는 개인적이며 직접적인 것으로, 교회는 신자들의 집합체로 존재하며, 각 기독교인은 신의 계명에 복종하는 자신의 믿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 지상에서 신의 대표가 된다고 주장하는 제도적 교회가 있는 곳은 없다. 루터의 신과 인간관계의 정의는 세속적 왕국으로부터 제도적 교회를 제거하는데 큰 충격을 주었다. 신앙의 정당화: 루터와 칼뱅은 중세의 스콜라주의에서 탈피하여 선행 없이 믿음만이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인간의 부패는 자기 책임이며, 선행이나 면죄부에 의하여 죄가 정당화되거나 구원이 오는 것이 아니며, 신의 무료선물인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연옥과 면죄부를 부인하여 교황의 재정에 근본적인 위협이 되었고, 독일의 돈이 외국(로마)으로 흘러가는데 저항하는 제후들의 분노에 불을 댕겼다. 성경의 권위: 루터와 칼뱅은 기독교도의 권위는 성경으로부터 온다고 설교하였다. 신학적 진리의 유일한 기준은 신약과 구약을 통하여 표현된 하느님의 말씀이다. 루터는, 성경은 이성, 전통, 역사로부터 찾아지는 긍정적 안내의 범위를 설정한다고 보았다. 칼뱅은 성경을 생활과 행위의 긍정적 모형으로 보았다. 루터와 칼뱅은 다 같이 성경은 신민들이 모든 통치자에게 수동적 복종해야 한다는 절대주의와 같은 선상에 있다고 가르쳤다.
교회와 국가 관계: 루터와 칼뱅에 의하면, 인간은 2개의 왕국, 즉 지상과 천국, 임시와 영원, 법과 복음, 이성과 믿음에 속한다. 정신적 정부는 우리가 신을 사랑하도록 인도하고, 세속적 정부는 우리가 이웃에 봉사하도록 인도한다. 법과 복음, 철학과 성경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 교회와 국가는 서로 독립적이다. 루터는, 교회는 교리 설교 연설 등 교회의 내적인 투명성에 중점을 두고, 세속적 정부는 교회의 외적 업무를 강조하였다. 칼뱅은 교회의 외적인 투명성을 강조하였다. 교회에 권한 부여: 칼뱅은 특성상 루터보다 법적이고 권위적이며, 그의 교회와 국가 관계는 제네바에서 나타나고 있다. 칼뱅은 양검이론을 선호하나, 규율을 집행하면서 세속적 권력보다 정신적 권위의 독립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따라서 정부의 일차적 임무는 신의 경배를 유지하는 것과 우상숭배 신성모독 이단을 뿌리 뽑는 것이다. 실제로 제네바에서 성직자의 힘은 무제한이며, 스코틀랜드와는 달리, 장로들에 의하여 모호하게 대표되었다. 그 자신의 정치적 신념은 군주적이기보다는 귀족적이었다. 국가와 법: 루터와 칼뱅은 정부에 대한 수동적 복종을 따랐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초하리라.”(로마서 13장) 이론적으로 루터와 칼뱅의 가르침에는 사회계약이 없다. 국가는 신의 종이며 지상의 일꾼이다. 실제에서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은 종교적으로 순수하고, 독일의 제후들이 루터를 지원하여, 농민반란의 시기에 (보답으로) 제후들의 편에서 반란을 거부하였다. 한편 존 녹스 (1514-72)는 스코틀랜드 종교개혁 지도자로 사형선고를 받고 망명하여 영국의 왕실교회에서 봉사하였고, 스코틀랜드에 돌아와 장로교회를 창립하였다. 그는 통치자에 대한 수동적 복종의 교리를 거부하고, 저항을 응원하며, 종교개혁을 지속하기 위한 의무 일부로서 반란의 사용을 정당화하였다.
입헌 군주주의: 후안 데 마리아나(1536-1624)는 그의 저술(The King and the Royal Institution, 1598)에서, 인간은 야생에서 동물과 같이 자연적 욕구를 따라 법이나 재산 없이 모든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살아왔다. 개인은 약하기 때문에 외부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회조직을 형성한다. 이들 구성원은 집단적 권리를 왕에게 위임하여 왕은 계속하여 국민과 함께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가 왕의 권력을 견제하고, 왕이 따라야 할 법을 제정하며, 세입과 세출을 통제한다. 개인은 능력이 다르므로, 평등에 기초한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상속 입헌군주제가 인간의 본성에 가장 적합한 정부 형태이며, 혼란 없이 안정을 유지하는 데 적합하다. 왕권은 법, 종교, 윤리, 국민 권리에 의하여 제한되어야 하고, 왕이 독재자가 되면 폐위시켜야 한다. 왕은 국민의 동의 없이 법을 바꾸거나 세금을 부과할 수 없으며, 교회가 국가에 우선하므로 종교에 반한 어떤 결정도 해서는 안 된다. 독재자는 폐위되어야 하고, 마땅히 사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프란시스 수아레스(1548-1617)는 그의 저술(Treatise of Law in the Legislator)에서, 자연법은 인류공동체와 관련되나, 인간 법은 법이 정의롭기 위하여 공동선과 신민을 위하고, 불평등이 없는 완전한 공동체에 적합하게 적용해야 하며, 인간의 권력은 자연법의 어떤 규칙도 폐지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모든 법과 혈연의 힘은 신에게서 나오며, 각 법의 권위는 신의 법 속에서 결정된다. 수아레스는 정부의 혈연적 이론과 신수설을 거부한다. 모두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인간의 본성에 의해, 권력은 한사람에 속하지 아니하고 다수에 속한다. 국가는 왕이나 어떤 다른 방법으로 통치하지만, 정치 권력은 공동체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어떤 정치형태도 절대적으로 될 수 없다. 따라서 한 정치적 사회가 형성되면, 그 본성은 국민에 의하여 선택되고, 그들은 자연적 입법 권한을 통치자에게 준다. 만일 통치자가 부당하게 행동하면(계약을 위반하면), 국민은 통치자에게 반란하여 권력을 되찾을 권리가 있다.
중세와 근세의 혼합: 장 보댕(1530-96)은 프랑스의 법학자이며 정치철학자로 자신의 저술(Six Books of the Commonwealth, 1576)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1) 종교적 인내: 성 바르톨로메오 학살 이후 완만한 사상가들은 국가 안에서 수 개의 종교를 관용하는 가능성을 포용하여 종파와 정당들의 국가적 단합을 희망하였다. 일반적으로 종교적 처형은 사회에 파멸이며 해로우므로 종교적 관용을 정책으로 지지하였다. (2) 국가와 사회: 그는 가족에 기초한 사회와 국가를 구별하였다. 자연에서 아버지가 가족과 재산을 지배하나, 문명사회에서는 가장의 권리는 감소하고 여성은 남성과 대등한 권리를 요구하며, 약화한 개인적 권위와 가족기강은 사회질서의 자연적 기초를 흔든다. 가족은 도덕과 질서의 기본단위로서 그 단결과 규율이 붕괴하면 어떤 법도 그들을 대치할 수 없다. 재산권은 자연법에 기초하며 사유재산은 개인보다 가족에 속한다. 공산주의는 개인 불평등의 본성 때문에 가능하지 않다. 마을 공동체는 사회계약에서 기원하지만, 국가는 타인을 정복하는 가족들의 강력한 집단이며, 승자의 지도자가 왕이 된다. (3) 통치권은 시민과 그 위에 있는 지상의 권력이며, 권력과 시간에서 법적으로 무제한이다. 법은 국민의 의지가 아니지만, 통치권을 지휘하며, 모든 신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조직된 힘이다. 왕국은 절대적이며 영구적 힘으로 국가를 다스린다. (4) 국가의 종류는 군주국가, 귀족국가, 민주주의국가이며, 최선의 정부 형태는 권력 계승 전쟁을 피하려고 상속되는 군주제도이다. 다수의 어리석은 유권자들 때문에 민주주의는 국가를 잠깐 통치할 뿐이다. 보댕은 독재자가 아무리 사악하고 잔인하더라도 (신과 자연법에 반하지 않는 한) 신민이 통치권자에게 저항하는 어떠한 시도도 허용하지 않았다.
리처드 후커(1554-1600)는 영국 신학자로 가톨릭교에 반하여 영국의 신교(later Anglicanism)를 방어하였으며, 칼뱅주의에 반대하였다. 그의 저술(Of the Laws of Ecclesiastical Polity. 1594, 1598)에서 동의이론과 교회와 정부 관계를 요약한다. (1) 동의: 자연에서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며, 인간 이성은 선을 받아들이고, 그의 의지는 이를 따른다. 이성이 완전무결을 지시하지만, 인간은 죄에 의하여 타락되어, 만일 추락한 인간이 이성으로 일어서지 못하면 초자연적 도움이 필요하다. 인간이 사회적이므로 서로 얽히어 경제 관계가 형성되고, 그 속에서 끝없는 투쟁과 고난에 직면하여,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공동의 동의를 대표자를 통하여 한사람에게 주고, 국가의 법을 적용한다. 일단 합의로 정부를 수립하면, 사회는 그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다. 그는 칼뱅주의나 교황 주의는 무질서를 초래한다고 반대하였다. (2) 교회와 국가 관계에서 후커는 세 가지 예외를 기술한다. 첫째, 아무 누구도 인간의 권력이 신의 권력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둘째, 만일 왕의 권력이 인간의 법으로 주어지면, 신의 법이 아닌 인간의 법으로 집행되어야 한다. 셋째, 군왕은 그가 통치하는 부분 공동체에서 최고이나, 정치 권력의 근원인 전체공동체의 최고는 아니다. 그리스도와 군왕을 비교하면, 군왕은 그리스도에 종속된다.
왕권신수설: 로버트 필머(1588-1653)는 저술(Patriarcha, 1635-42)에서 왕권신수설을 주장하였다. 신은 아담에게 그의 아내, 자녀, 그리고 지상의 모든 소유에 대하여 권한을 주어, 최초의 왕이 되었다. 아담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후손들까지도 부친의 권리와 국왕의 권한을 가졌다. 나는 아담의 자녀들이나 누구도 그들 부모에 대한 복종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을 보지 못하였다. 자녀들의 이러한 복종은, 모든 제왕 권위의 기초이다. 왕의 권한은 신이 주는 것이며 신민은 복종해야 한다. 재퀘 보수에트(1627-1704)는 프랑스 신학자이며 루이 14세의 궁전 설교자로, 저술 (Politics Drawn from the Very Words of Holy Scriptures, 1679) 에서 왕권신수설을 주장하였다. 신은 참된 왕이며, 신은 목회자로 왕을 세우고 그를 통하여 인간들을 지배함으로, 왕관은 인간의 관이 아니라 신 자신의 관이다. 그러므로 군왕의 인간성은 신성하며 그에 대항하는 어떤 것도 신성모독이므로, 종교와 양심의 이성으로 왕에게 복종해야 한다. 왕의 권위는 절대적이며 그와 대등하게 행동하는 세력을 허용하지 않지만, 왕들은 무적의 막강한 힘에도 불구하고, 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왕의 의무는 헌법을 유지하고, 약점을 보강하는 조력자를 사용하고, 문제 해결하는 적절한 치료법을 가져야 한다.
관습법(Common Law)은 13세기에 대학에서 법학 교육이 발전하여 법 전문가 집단이 형성되고 법정이 세속화됨으로써, 모든 영국인에게 법정은 판례를 법으로 적용하였다. 관습법은 기술되어 있지 않아 로마의 민법과 상이하나, 지방의 습관이 아니며 일반적 법이라고 하였다. 에드워드 코우크는 저술(Institutes of the Laws of England, 1628-44)에서 두 가지 이론(관습법의 최고성에 관한 일반이론과 법에서 인위적 이성에 대한 논쟁)을 주장하고, 이성은 법의 생명이며, 관습법은 이성일 뿐이다고 하였다.
청교도 헌법주의(Puritan Constitutionalism ): 청교도들은 영국교회의 예배가 가톨릭교회와 별로 다르지 않아, 칼뱅주의를 따라서 교회가 순화되기를 원했다. 그들은 영국교회의 실천을 반대하는 비국교도나 반대자로서 세 개의 집단이 있었다. (1) 혁명의 우파로서 칼뱅 원칙에 따라 교회를 조직하고, 스코틀랜드와 협상을 원하는 조직을 지원하였다. (2) 독립주의자나 분리주의자들은 교회가 지방 신도단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3) 여러 좌파 급진주의자들은 군대에서 광범위한 민주개혁을 선호하는 세속적 급진주의나 재침례교도 같은 종교적 광신자나 교리 주의자를 포함하였다. 이들 모두는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한 약속에 유사한 확신을 공유하였다. 토마스 스미스는 그의 저술(Republica Anglorum, 1562-65)에서 영국 정부에서 행하는 모든 것에 대한 권위와 의회가 왕국의 최고 절대 권력이라는 것은 어떤 다른 왕실도 의회의 결정을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영국 내전에서 청교도가 주역을 하였고, 1655년 크롬웰은 의회를 해산하였다. 청교도들은 1620년에 플리머스에 이민하여 매사추세츠 등에 정착하였다.
개인의 자유: 인간은 다른 사람과 다르게 되기 위하여 자유를 추구하고, 다른 사람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려고 평등을 추구한다. 로저 윌리엄스는 청교도 목사로서 1636년 매사추세츠에 이민하였고, 종교적 관용과 교회 정부 간 분리를 주장하였다. 그는 영국인들이 원주민들의 땅을 탈취할 권리가 없으며, 종교적 선서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윌리엄은 1640년에 로드아일랜드에 이주하여 식민지를 세우고, 믿음으로 박해받는 사람들의 천국이 되게 하였다. 존 밀턴은 영국의 시인이며 작가로서 크롬웰 정부의 관리가 되었다. 1660년 왕정이 복원하여 잠시 투옥된 후에 석방되었다. 그는 정치 권력이 종교를 강요할 권리가 없으며, 신의 정신은 자유라고 하였다. 그의 실낙원(1667)은 서사시로 신의 영원한 통찰력과 인간의 자유의지 간에 일어나는 갈등을 나타낸다. 대중주의(Populism): 국민이 상당한 힘을 가지지 못하면 정예 그룹이 과도한 힘을 가져 체제가 부패한다고 하였다. 제임스 해링턴은 영국의 정치학자로 그는 해양 공화국(1656)에서 국가의 발전을 촉진하는 이상적 헌법을 설명하였다. 국가 권력의 결정 요소는 토지재산이며, 같은 사람이나 계층이 상당 기간 행정 권력을 갖지 않도록 순환 교체해야 한다고 하였다. 존 릴번은 영국 내전 전후에 정치적 평등파로서, 인간은 출생 시부터 평등하므로, 국가는 특권 신분의 표시를 없애고 평등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윌리엄 월윈은 그의 사랑의 힘(1643)에서 양심의 자유와 이성의 사용을 주장하였다.
TO BE CONTINUED
(c) 자연법의 정치철학
(d) 근세철학: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모든 공감:
Junghyun Suh, 곽노은 및 외 28명6
1
좋아요
댓글 달기
공유하기
'유익한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족에게도 금지해야할 10가지 말 (0) | 2023.07.07 |
|---|---|
| 고 박인 철 조종사 AI 로 재현 엄마와 친구들과 대화 모습 (0) | 2023.07.05 |
| 문화사연재12~계속3 -끝/ 재미학자 Hugo K. Kim (0) | 2023.07.03 |
| 문명사12- 계속2/재미학자 Hugo W.Kim (0) | 2023.07.03 |
| 남을 이해 한다는것 (0) | 2023.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