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명사 연재 8. 중세 유럽(750-1400)의 정치철학 (계속 3)
(e) 14세기 기독교 정치철학
13세기에 보나벤투라와 아퀴나스는 철학과 신학을 조화시키는 공통된 틀에서 신학은 외적 규범으로 존재하면서, 전자는 신학 범주 내에서의 철학을, 후자는 철학과 신학이 독립되고 대등한 학문으로 정의하였다. 국가체제가 정립되고 왕권이 강화되면서, 교황과 황제의 권력투쟁이 일어나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이원주의가 교황의 직권을 방호하였다. 14세기는 유럽의 전 분야에서 전환점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기후 한랭화에 의한 흉작-기근-질병으로 10% 인구가 감소하였고, 흑사병으로 25~50%가 추가 사망하여, 임금상승과 임대료 하락으로 봉건제도가 붕괴하고 왕권이 강화되었다. 정치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은 토지와 인구의 유린으로 산업 잠재력을 파괴하였고, 세금증가를 위해 의회 기능이 작동하였다. 사회적으로 흑사병은 법과 질서를 파괴하고, 농부들은 사회적 역할을 자각하고, 임금인상은 귀족과 갈등을 증폭시켜 농민반란의 근원이 되었다. 종교적으로 수도사와 수녀들이 질병을 피해 도망하여 교회는 구원을 준비하는 데 실패하였다. 13세기를 창의적 본원적 사상가의 시대라고 한다면 14세기는 학교(Schools)의 시대로서 철학과 신학이 변화하였다.
오컴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 1287-1347)은 토마스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와 함께 중세철학과 신학에서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런던에서 태어나 프란시스칸 수도원에서 기본교육을 마치고 1310년부터 런던수도원과 옥스퍼드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롬바르드를 강의하였고, 신학석사 과정을 미완성하였으나, 그의 논단은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주교 회의가 그의 논단을 이단이라 단정하고 1324년 아비뇽 교황이 그를 소환하였다. 당시 논쟁의 초점은, 예수나 그의 제자들은 개인이나 공동으로 재산을 소유하지 아니하였고, 성 프란시스의 규칙은 교단의 회원들이 이 관행을 따르도록 지시하였다는 것이었다. 이에 반하는 교황 존 22세와 마찰로 인하여, 오컴과 그의 일행은 1328년 뮌헨으로 도주하여 황제 루이 4세의 보호를 받았다. 오컴은 황제가 신성로마제국에서 교회와 국가를 최고 권위로 통치한다는 논문을 발표하였고, 교황은 허락 없이 아비뇽을 떠난 그를 파문하였다. 오컴은 선대 교황들이 지지한 사도 청빈의 교리와 성 프란시스의 규칙을 공격하는 교황이 오히려 이단자라고 대항하였다.
(1) 논리학(Logic and Semantics): 그의 저술(Summa of Logic, 1323)에서 1부는 용어, 2부는 가정, 3부는 삼단논법에 관하여 기술하였다. 물체는 그것이 개체로서 존재하며. 일반개념은 개체 간에 유사성이 존재하여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에 동의하였다. (2) 인식론(Theory of Knowledge)에서 직관의 지식은 초보적이며 기본적인 것으로,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는 것처럼, 인간이 사물의 존재를 즉시 이해하는 것이다. 신은 존재하지 않은 물체에 대해 직관적 지식을 일으키는 힘을 가졌다고 하였다. 세상의 질서는 개개의 우연적 존재에 대한 신의 선택 이후의 일이다. (3) 존재론(Metaphysics): 한 물체는 그것이 개체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개체이다. 공통개념(Universals)은 개체 간 유사성 때문에 발생한다. 그는 명목론자(Nominalist)로 공통개념을 거부한다. 오컴은 (4) 자연철학 (5) 심리학 (6) 윤리학 (Ethics) 등에 관하여도 창조적 저술을 하였다. (7) 정치철학: 아담과 이브는 모든 것을 사용하는 자연적 권리를 가졌으며, 아무도 개인의 재산권을 법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통치 권력은 선거를 통하여 군왕에게 이전한다. 재산분쟁의 재판권은 국가의 업무이며 교회의 소관이 아니다.
오컴주의 운동: 오컴은 창의적 사상의 분출구로서, 오컴 운동은 그를 따르는 프란시스칸 및 도미니칸 학생들이었다. 명목론자 운동(Nominalist Movement)은 사물은 개체로서 존재하며, 일반개념(Universals)이란 개체로부터 오는 추상개념으로 실재하지 않는다; 유일종교는 믿음의 문제이며 철학적으로 증명되는 것은 아니며, 철학과 신학은 구별된다. 존(John of Mire court)은 확실한 지식은 두 가지, 즉 모순되지 않는 원칙과 즉각적인 직관이 있다고 하였다. 니콜라스(Nicholas of Autrecourt)는 인식론, 존재론, 자연철학 분야에서 회의주의적 입장으로 데이비드 흄에게 영향을 주었다. 명목론은 비엔나대학과 독일의 여러 대학이 이를 수강하도록 요구하였다. 15세기에는 파리대학, 옥스퍼드대학, 독일의 여러 대학에 널리 퍼졌다. [일반개념은 추상개념이며 실재하지 않는다; 신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믿음에서 오는 것이며 철학적으로 증명되지 않기 때문에 철학과 신학은 구별된다]고 하는 오컴의 명목론은 당대 학자들의 주류 사상으로 신학은 물론 논리학의 발전을 가져왔다.
마르실리우스(Marsilius of Padua, 1280-1342)는 이탈리아 태생으로 파리대학에서 수학하여 1312~14 기간에 총장을 역임한 후, 이탈리아에서 정치상담을 하였다. 그의 저술 평화의 방어(The Defense of Peace, 1320-24)는 교황정치를 비판한 것으로 1326년에 저자가 알려지자, 그는 루이 4세에 피신하였다. 교황은 이 책을 이단으로 보고 그를 파문하였다. 그는 제국의 양도(The Transfer of the Empire, 1340)에서, 로마제국 황제는 7명의 제국 고위관리에 의해 선출되어 최고위 성직자에 의하여 대관식을 하였다고 기술한다. 이두 저술은 교황 우위의 교리와 독립된 성직자의 재판권에 적대적이었다. 사제직은 국가의 부분이다. 정부의 형태에는 국민의 동의하에 존재하는 정부와 국민의 의지에 반하는 정부가 있으며, 후자는 독재정권이다. 입법자는 전체 국민을 합법적으로 대표해야 하고, 왕은 법과 규범에 따라 공동체를 통솔한다. 선거는 최소한 상속에 의한 왕위계승보다 바람직하다. 교회의 재산은 헌납자의 것이며, 교회는 오직 그 재산의 이용권리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신비주의(Speculative Mysticism)는 연재 6에서 논의하였다. 기독교에서 신비주의는 디오니시오스 위서에 의해 전파되었으며, 성 프란체스코의 체험에 생생하게 나타났다. 에크하르트 (Meister Eckhart, 1260-1328)에게 하느님은 이성으로도 감각으로도 파악할 수 없는 무한 자체였다. 인간의 영혼이 자기를 무(無)로 돌려 하느님의 무(無)와 합일하면 인간은 완전한 자유에 도달한다고 하였다. 그의 정신의 자유에 대한 이론은 후에 신플라톤주의와 루터에게 영향을 주었다. 타울러(John Tauler, 1300-1361)는 독일의 신비주의자이며 도미니칸 설교자로, 흑사병 이후에 병자와 사망자를 위하여 영웅적으로 목회하였다. 게르송(John Gerson, 1363-1429)은 파리대학 총장으로 공의회 운동(Conciliar Movement)을 지도하였다.
(f) 중세 정치철학: 원칙에 의한 개념 요약
법의 개념(Idea of Law): 보통법(Common Law)은 관습법 (Customary Law)으로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갖는 관습, 사회생활에서 습관이나 관행이 사회 일반에서 법으로서 효력을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며, 전형적 불문법(不文法)으로 성문법(成文法)에 대한 보충적인 효력을 갖는다. 중세의 봉건제도는 영주와 농노 사이에 불평등한 계약이 관습으로 이루어졌다. 자연법(Natural Law)은 인위적인 것에 대칭되는 자연히 존재하는 보편적 법칙이다. 12세기에 그라치아(Decretun Gratiana)는 교회법과 자연법이 같다고 하였고, 13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이 신의 지식을 추구하면, 인간의 법과 자연법이 같아진다고 하였다.
재산과 지배권(Property and Lordship): 중세 재산 소유권은 두 가지 형태로, 토지의 본원적 소유권은 영주에게 있고, 그 사용권은 봉신에게 있었다. 중세에 대중은 왕의 지배권과 봉신의 지배권이 관습법에 따라 적절히 정의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한편 중세의 법률가들은 시민의 법과 자연법은 다르지 않다고 보았고, 기독교 신앙은 도덕적 기준을 부가하였다. 기독교인들은 사유재산과 경제적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수용하였고, 지상에서의 선행이 기독교인의 생활이념과 같이 이용될 것을 주장하였다.
정치 권력의 기원과 목적: 중세 유럽의 정치 권력은 시민 합의로 선출, 특정 가족에 의한 상속, 성직 기관에 의한 지명 등으로 왕권이 창출되었고, 국가는 사회정의와 평화를 유지하는 목적으로 존재하였다. 기독교 교리는 [신 외에는 다른 권력이 없으므로, 모든 사람이 신이 임명한 통치자에게 순종하여라. 이를 거역하면 심판을 받을 것이다]고 하였다. 신의 의지로 통치하는 왕은 질서와 정의를 세운다. 성직자 임명에 있어서, 교황 그레고리 7세와 헨리 4세(1076) 또는 교황 보니페이스 8세와 필립 4세 (1296) 의 관계에서 같이, 정치와 종교의 권력투쟁이 심화하였다. 오컴이나 마르실리우스는 교회는 국가의 부분이라고 하여 군왕의 통치권이 교황의 지배권에 우선함을 존중하였다.
개인과 공동체: (1) 중세의 왕은 왕국의 유일한 대표로서 전체로서 행동하는 권한을 가졌다. (2) 중세교회는 두 개의 개념이 발전하였다. 개인 영혼의 가치는 개인주의에 뿌리를 둔 도덕적 가치와 인간의 책임을 주장하였다. 기독교 공동체는 많은 회원으로 구성되었으나, 불평등한 기능과 지위를 가진 독립된 구성원으로서 한 몸체이다. (3) 기독교 신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 개체는 존재 단위이다. 우주는 일반적 형태로서 종류와 종으로 편성된다. 실재는 개체의 일반개념으로 개체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4) 중세의 집단 이론은 12세기부터 무역공동체나 추기경단처럼 사회조직의 집단적 형태로 발전하였다. (5) 결론적으로, 집단은 부분의 단순한 총화가 아니라, 잘 조직된 부분의 통합이다. 전체를 형성하는 부분은 소통과 협력으로 잠재적 가치를 형성하는 개체이다.
국가 정부의 구조(The Structure of Government in the State): 기본적인 법과 왕권은 공동체에 속하고, 공동체는 왕권에 의해 흡수되지 않는 집단의 권리를 가졌다. 기본적으로 왕은 국가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재판관이며 내우외환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보호자이다. 관습법에 따라 왕이 제약을 받는다는 것은 우선 국가 기본원칙을 변경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자연법과 국민의 법은 관습법보다 잠재적으로 크게 제한한다. 마르실리우스는 기본법을 만드는 권위는 정부의 형태를 결정하고, 최고 통치자 는 궁극적으로 시민의 조직체에 속하며, 정부의 실질적 통제는 본 입법기관에 의해 집행부서에 전달된다고 하였다.
교회의 권력 구조(Structure of Authority in the Church): 교회는 로마법을 적용하여 행정 조직구조를 세속적 왕조들 보다 훨씬 이전에 적용 개편하여, 교황의 통치력을 중앙에 집중하였고, 세속적 지배로부터 성직자들을 해방하였다. 이노센트 3세는 파문이나 성직 정지의 힘을 이용하여 유럽정치에 간여하였고, 제4 십자군 전쟁에서처럼 교황의 지배력을 군왕의 지배력 우위에 두었다. 추기경단(College of Cardinals)은 황제의 선거 개입을 방지하기 위하여 운영하였고, 조정위원회(Conciliarists)는 교황의 폭주나 독단을 견제하기 위하여 고안되었다.
국가와 교회(State & Church): 왕의 권력과 교황의 권력 사이의 관계는 중세 정치사상의 지배적 문제로서, 세속적-정신적 권력 사이에 지속적 분쟁을 초래하였다. (1) 교회 우선 이론 (High Church Theory): 왕은 교회로부터 통치 권력을 받기 때문에, 세속적 권력은 정신적 권력에 순종해야 한다. (2) 국가 우선 이론(High State Theory): 교회는 국가의 부분으로, 국가 권력이 교회 지배력에 우선한다. (3) 이원주의(Two Swords Theory): 교회와 국가는 서로 협력하는 권력으로, 각기 분야에서 독립된 역할을 한다. 이원주의 사상이 발전하게 된 요인으로 교회와 국가의 병행 발전, 법학 연구의 진전,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전파, 세속적 정신적 가치의 변화로 인해 인간의 태도에서 복합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 등이다. 속세와 접하는 멘디칸트 수도사와 이론가들의 역할이 공헌하였다.
(세계문명사 연재 8. 중세 유럽의 정치철학 끝)
'유익한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공지능 기술 활용 주식투자 단계 ☆ 덧: 우리말로 완역 해 두었음 (0) | 2023.06.15 |
---|---|
최근 발표한 창을 엽니다 (0) | 2023.06.14 |
세계문명사 8-(2)/ 재미 학자 Hugo W. Kim (0) | 2023.06.13 |
세계문명사 연재 8/ Hugo W. Kim 재미 학자 (0) | 2023.06.10 |
순간 행복만이 존재 (0) | 2023.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