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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명사 8-(2)/ 재미 학자 Hugo W. Kim

양곡(陽谷) 2023. 6. 13. 09:11

세계문명사 연재 8. 중세 유럽(750-1400)의 정치철학 (계속 2)

(d) 13세기 기독교 정치철학

13세기는 스콜라철학의 황금시대로서 대학의 창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재생, 멘디칸트 교단의 출현으로 자극을 받았다. 대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로마법 연구는 국가의 새로운 개념을 염출하고 신권정치, 종교정치, 봉건제도가 상호작용하여 중세 정치사상의 전환점이 되며, 교황과 황제는 권력투쟁을 지속하였다. 12세기부터 교령서와 논쟁에 대한 교황의 유권적 서한을 통하여, 교황은 교황법률을 이용하는 정부 체제를 갖추려고 하였다. 정부의 권위가 교회 통제수단을 강화하였으나,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이원주의가 교황 직권을 방호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이 교회와 국가를 구분하고, 법률가들이 영토 주권 개념을 발전시켰다.

윌리엄(William of Auvergne, 1180-1249)은 파리대학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여 강의하고, 1220년에 신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1223년에 노트르담 사원의 사제, 1228년에 파리의 주교로서, 파리대학을 지원하고 이성과 학술연구를 신학에 이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의 저술(Magisterium Divinale, 1220s~1240s)은 이상 철학(삼위일체, 우주론, 심리학)과 이상 신학(신의 인간, 믿음과 법률, 성례, 덕성과 도덕)의 7개 부분을 포함한다. 윌리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자연철학 및 이슬람과 유대 사상을 연구하는 서방 최초의 학자였다. 파리대학은 1210-31 기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과 그 논평에 관한 강의를 금지하였다. 윌리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기독교 교리를 접목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로세테스테(Robert Grosseteste, 1175-1253)는 1215년에 옥스퍼드 대학 총장이 된 이후, 1229-35 기간에 프란시스칸 학생들에게 신학을 강의하였고, 여생은 린컨 주교로 봉직하였다. 그는 어거스틴의 영향을 받은 신플라톤주의자였으나 아리스토텔레스, 이븐시나, 이븐루시드의 사상을 적용하였다. 그는 철학, 신학, 기하학, 시력, 천문학, 성서 해설에 추가하여 희랍어로부터 많은 번역을 하였다. 그의 저술(On Free Decision)은 미래에 관한 신의 지식과 인간의 자유를 조율하는 문제에 이바지하였다. 인간 행위 자체는 자유롭지 않으나, 행동은 자유로운 사람의 의지에 지배된다. 인간은 이성으로 결정되는 의지에 의한 선택을 취한다. 신의 축복의 조력이 없이는, 인간은 도덕적으로 선한 선택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알렉산더(Alexander of Hales, 1185-1254)는 영국에서 태어나, 파리대학에서 문학석사를 1210년 이전에 취득하였고, 1231년에 프란시스칸 교단에 들어가 파리대학의 프란시스칸 교단의 최초 신학 교수로서 학과장이 되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공격하면서, 우상을 숭배하는 철학자들은 신의 계시가 없어 만족스러운 철학을 고안해낼 수 없다고 하였다. 그의 저술(A Gloss on the Four Books, 1220-27)은 신학의 기본교재로 사용되었다. 그는 신학대전(Summa Universe Theologiae, 1924-48)을 프란시스칸 학생들에게 강의하였다.

보나벤투라(St. Bonaventure, 1217-74)는 투스카니 태생으로 1243년에 프란시스칸 교단에 들어가, 1255년 파리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1265년에 요크 추기경에 선출되었으며, 다음 해에 사임하였다. 그는 신앙과 이성을 통합하는 신학을 시도하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대등한 학자였다. 그는 철학자가 진리를 체득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철학으로 만족하는 단순한 철학자는 필연적으로 착오에 떨어진다고 하였다. 우상숭배 철학자들은 착오에 빠지며,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나 플로티노스보다 더 많은 착오에 빠져있다고 하였다. 보나벤투라는 우상숭배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그는 다수 책과 논문을 저술하였다.

알베르투스(Albertus Magnus, 1193-1280)는 바바리아 태생으로 1223년에 도미니칸 교단에 들어가 볼로나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콜론대학 등에서 수년간 신학을 가르쳤다. 1245년에 석사학위를 취득하여 파리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으며,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의 학생이었다. 1260년 그는 레겐스부르크 주교에 임명되어 3년 후에 사임하였다. 중세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바뀌면서 그의 저술(Magister Sententiarum)은 롬바르드의 저술에 대한 3권의 논평이다. 그는 철학과 신학을 구별하여, 철학자는 이성의 일반적 빛의 영향 아래에서 일하고, 신학자는 이미 나타난 교리를 통하여 믿음의 초자연적 빛에 의하여 일한다고 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74)는 나폴리에서 태어나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거쳐 나폴리 대학에 입교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접하였고 도미니칸 수도사의 길을 택하였다. 파리대학에서 3년간 수학하고, 1248년 쾰른대학으로 돌아와 4년간 알베르투스의 지도를 받았다. 이 시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디오니시우스의 신학을 심도 있게 연구하였다. 그는 1252-56 기간에 파리대학에서 롬바르드 명제집을 강의하였다. 프란시스칸의 보나벤투라와 도미니칸의 아퀴나스가 경쟁하는 가운데, 그는 파리대학 신학 교수에 임명되었다. 1260년 초 파리대학을 떠나, 이탈리아 수도원 등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을 집필하였다. 1268-72년 다시 파리대학 교수로 가르쳤다.

아퀴나스는 기독교의 교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결합하여 스콜라철학을 대성한 중세 최고의 신학자이다. 그는 철학과 신학의 차이를 그들의 출발점이 되는 원칙에 두고 있다. 그의 신학 논문은 세상을 창조하고 구원하는 신과 신의 행위에 관하여 신이 무엇을 계시하였는가로 시작하며, 세상은 그 빛으로 이해되고, 그의 철학 논문은 세상의 지식으로 시작한다. 만일 종교적 믿음이 사물을 인지하고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에 필요하지 않다면, 그것은 철학적 분석을 전제로 밝혀진다. 보나벤투라는 믿음의 빛이 없는 철학은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아퀴나스는 신의 본성이나 인간의 본성과 같은 어떤 논제들은 신학과 철학이 함께 연계하여 논의되어야 최상의 철학적 반응을 가져온다고 주장하였다.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를 운동, 제1 효율적 원인, 가능성과 필요성, 완전성, 자연의 설계 등 5가지 방법으로 증명하였다. 그는 신의 본성을 단순성, 완전성과 선, 무한성, 불변성, 단일성 등 5가지로 설명하였다. 창조에 관해 존재의 첫째 원인, 창조의 진행양식, 피조물의 시작과 기간을 고려하였다. 심리학에서 정신은 육체의 행위로서, 건강은 육체의 형태이며, 지식은 정신의 형태라고 하였다. 인식론에서 지식, 개념, 진리, 허위 등에 관하여 정의하였다. 도덕론에서 인생은 최종목표를 선에 두고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윤리학에서 목적과 행복을 향하여 이성과 자연법의 질서에 상응한 인간의 행위는 바르다고 하였다. 그는 성경(구약과 신약)과 신의 축복에 관해서도 자세히 논의하였다.

정치철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과 윤리학이 라틴어로 번역되어 서방에 최초로 나타나,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기독교 신부들의 철학(성경, 플라톤과 스토아 철학, 로마법의 요소를 결합)을 통합하였다. 기독교 신앙에 기초하여 아리스토텔레스를 재조명하고 자신의 철학으로 기독교 신학을 개혁하려는 아퀴나스의 노력은, 중세 이슬람과 유대교 철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우상숭배의 대철학자로 간주하며 그리스 철학과 그들의 종교를 조화시키려는 노력과 비교된다. 그의 자연철학, 윤리학, 정치절학은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의 영감을 받았으나, 이슬람과 그들 국가에 살고 있던 유대 공동체의 정치철학은 플라톤의 공화국과 법에 크게 의존하였다. 이슬람과 유대교의 최대학문은 법학이며 신학은 보조적이었으나, 기독교의 최대학문은 신학이며, 천국의 일은 교회법으로, 지상의 일은 민사법으로 다스렸다. 아퀴나스는 철학과 신학을 분명히 구분하여, 철학은 우주의 자연질서를 이해하는 것이며, 신학은 신의 계시로 사물의 시작과 끝에 관한 연구로 각각 완전하고 독립된 학문이라고 보았다.

아퀴나스에 의하면, 시민사회는 자연적이며 인간은 자신의 생존과 방호를 위해 필요한 물질을 취득한다. 도시는 이질적 요소의 복합이며, 각 요소가 자신의 독특한 기능을 가지며, 단일권력이 전체의 질서와 단합을 유지한다. 따라서 도시와 개인의 이해가 충돌하면, 도시가 추구하는 공통선은 개인의 이익에 우선한다. 도시의 공통선은 평화와 번영에 있으며, 이를 위하여 정권은 정치철학을 바르게 적용하여 효율적으로 도시의 역량을 극대화해야 한다. 최상의 정권은 지혜와 도덕을 가진 덕성 있는 사람이 다스리는 것이다. 왕은 자유인에 의하여 선출되며, 만일 왕이 독재자가 되면 국민은 그를 축출한다. 최상의 정권과 완벽한 사회 질서는 신의 축복과 함께 신의 법에 따라 인도된다. 인간은 이성과 양심으로 자신을 보존하는 자연적 존재이며, 이성을 이탈한 어떤 위반도 신이 준 자연법과 인간의 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자연법(Natural Law)은 지식과 도덕에 기초한 인간 행위의 일반적 규범으로. 인간은 덕성의 차이로 자연법보다 민법이 더 필요하다. 아퀴나스는 노예가 필요하며, 종교는 정치나 산업보다 우위에 있다고 하였다. 국가는 세속적 업무에 최상이지만, 만일 통치자가 도덕률을 위반하면, 교황은 개입할 권리가 있다고 하였다.

라틴 이븐루시드 주의(Latin Averroism)는 중세 스페인 철학자 이븐루시드의 영향으로 일어난 이슬람 철학의 한 학파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이슬람 철학을 조화시키려고 하였다. 철학 개념은 진리는 하나이며 이에 도달하는 길은 철학과 종교이다; 세계는 영원하다; 영혼은 개인과 신으로 구분된다; 개인의 영혼은 영원하지 않다; 모든 인간은 유일신을 공유한다; 사자의 부활은 불가능하다 등을 포함한다. 시게르(Siger of Brabant, 1240-84)는 본 학파로, 진리는 두 형태로 하나는 과학과 철학으로 얻어지는 사실적 진리(Factual Truth)이며, 다른 하나는 종교를 통하여 도달하는 종교적 진리(Religious Truth)라고 하였다. 이들은 이성과 철학이 믿음과 신앙에서 얻어지는 지식보다 우월하며, 이성의 독립적 사용을 주장하고, 철학과 종교적 세계가 별개의 실재라고 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믿음과 이성의 대등한 합성을 주장해 왔으므로, 철학이 신앙에 우선하는 이븐루시드 주의는 그가 특별히 반대하는 위험한 사상이었다. 그러나 16세기 르네상스 사상가들은 지력과 인간의 존엄성 관계에서 철학의 우월성을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바뤼흐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신념은 이븐루시드의 독신주의에서 흘러왔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로저 베이컨(Roger Bacon, 1220-92)은 영국태생으로 파리대학에서 물리학, 형이상학, 심리학을 공부하였고, 실험적 과학과 수학을 응용하는 과학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1237-45 기간에 파리대학에서 강의하였고, 1256년부터 프란시스칸 수도사가 되어 강의와 출판이 제한되었다. 교황 클레멘트 4세는 신학 내의 철학적 위상에 관하여 베이컨에게 저술을 요청하여, 1267년에 위대한 과업(Opus Majus)을 총 7부로 출간하였다. (1부) 인간의 무지와 진리를 얻는 데 실패하는 4가지 이유는 무가치한 권위에 종속, 습관의 영향, 통속적인 편견, 무지를 덮으려는 지혜의 전시이다. (2부) 과학에서 신학의 지배적 특성은 모든 진리가 성서에 내재한다는 것이며, 성서를 설명하기 위하여, 교회법과 철학의 도움이 필요하다. (3부) 과학의 연구에서 언어가 실질적으로 중요하다.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로 된 성서를 적절하게 번역하고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4부) 수학은 타 학문에 들어가는 문이며 열쇠이다. (5부) 시력을 형성하는 안구구조에 관하여, 시력의 원리, 시력의 조건, 반영, 굴절, 시력 과학의 실질적 적용을 논하였다. (6부) 실험적 과학은 신체적 감각을 통한 체험과 정신적 체험을 적용한다. (7부) 도덕철학은 철학, 수학, 실험과학보다 높은 수준에 있다. 이는 인간이 선하게 또는 악하게 되는 행위와 관련하여, 신과의 관계에서 인간에게 가르친다. 철학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인간은 신의 계시가 필요하며, 기독교인은 권위에 대한 믿음을 받아들였다.

길레스(Giles of Rome, 1247-1316)는 1269-72 기간에 파리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아우구스티누스 교단의 수도사로서 1270년대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대해 논평을 썼다. 1281년 이후 봉사하고, 필립 3세의 요청으로 왕자를 가르쳤다. 그는 1292년에 소주교로 1295년에 추기경이 되었다. 그의 사상은 (1)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으로 사물의 존재와 본질을 구분하였다. (2) 저술(On the Government)은 수 개 국어로 번역되어 중세 왕자교육에 이용되었다. 그는 중산층을 형성하여, 정의와 평등의 유지가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3) 저술(On Ecclesiastical Power)에서 1302년 보니파시오 8세가 교황의 교서를 발행하는 기초를 준비하였다.

헨리(Henry of Ghent, 1217-93)는 벨기에의 평민 태생으로 쾰른 대학에서 알베르투스 문하로 박사학위를 받고 겐트로 돌아와 철학과 신학을 강의하였다. 자신의 저술(Summa Theologica)에서 헨리는 (1) 본질적 존재 (The Being of Essence): 개개의 물체는 하나의 존재이며 상응하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 (2) 의도적 구별(Intentional Distinction): 같은 사물이 다른 방법에서 다른 개념으로 표현되는 경우이다. 이를테면, 이성적 비이성적인 것을 이성적 동물적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다. (3) 헨리는 실물의 지식과 신의 영감(사물과 신의 존재)을 구별하였다. (4) 그는 과학적 지식 (Scientific Knowledge)에 관하여 논하였다.

존(John of Paris, 1255-1306)는 파리대학에서 수학하고, 도미니칸 교단의 수도사가 되어, 학사로 롬바르드를 강의하면서, 신학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교황 보니파시오와 필립 4세와의 갈등에서 존은 왕과 교황의 중립적 입장을 선호하였다. 그는 (포도주에 의한) 실체변화에 대해 교리에 상치되는 논문을 쓴 이후에 파문되어 강의, 설교, 고해성사를 못 하였다. 신학, 물리학, 존재론에 관한 10여 개 저술이 아직 존재한다. 존은 기독교 세계에서 교회와 국가는 독립적이고, 각기 합법적 권한을 가지고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기술하였다. 그는 제왕의 권력은 교황으로부터 전달되는 것이 아니며, 인류의 본성은 사회의 공통된 선을 위하여 이성적이며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고민하는 사상가였다.

둔스 스코투스 (John Duns Scotus, 1266-1308):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프란시스칸 교단의 수도사가 되었고, 1290-1296 기간에 파리대학에서 수학하고, 옥스퍼드에서 롬바르드의 4책에 관하여 논평을 쓰고, 1302년 파리에 돌아가 보니파시오 8세와 필립 4세의 분쟁에서 교황 편에서 싸우고, 1303-04년 옥스퍼드에서 가르쳤고, 1305년에 파리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1307년에 쾰른대학에서 가르쳤다. 스코투스는 독창적이며 혁명적 사상가로, 오컴의 윌리엄과 루터의 선구자로 새로운 철학의 길을 준비하였다. (1) 인식론: 인간은 감각과 지식의 2종류의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다. 감각적 체험에서 오는 환상을 지식의 종류로 전환해야 한다. 직관적(Intuitive) 지식과 추상적(Abstractive) 지식을 구별하였다. 그는 인간이 신의 특별한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고 회의주의(Skepticism)를 거부하였다. (2) 존재론(Metaphysics)은 초자연을 연구하는 것으로, 존재를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으로 구분하고, 유한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10개 범주로 구분되고, 형태-물질과 함께 본질이 가장 중요하다. 일반화와 개체화(Universal & Individuation)에서, 개체의 존재는 실제를 이해하는 지배적 원칙이라고 하였다. (3) 자연신학(Natural Theology): 신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피조물로부터 시작되고, 원인을 가져오는 논리적 사고로부터 신의 존재와 본성을 증명할 수 있다고 하였다. (4) 심리학(The Soul): 인간의 정신을 지적 인지와 자발적 행동으로 구분하였다. 정신은 인간의 일부이며 정신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면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의지(Will)와 지력(Intellect)은 구별된다; 지력은 부자유로우나 의지는 자유롭다. (5) 윤리학(Ethics & Moral): 인간이 도덕적으로 선량하려면, 바른 이성에 일치하는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한다. 자선 행위가 이루어질 때 도덕적 의도로서 행해져야 한다. 그러나 의도가 좋건 나쁘건 간에, 자선이 행해지면 그 결과는 도덕적으로 다르지 않다. 신은 본성이 선하여 악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신의 의지는 항상 선하다. 그는 도덕률을 신의 의지에 의존하였다. 정치적 권력은 공통된 합의와 공동체에 의해 선택된 권리이다. 합법적인 권력은 입법부에서 요구되는 요소이며, 다른 요소는 사려 깊은 것(Prudence)으로서, 이성에 의해 법을 제정하는 능력이라고 하였다.

TO BE CONTINUED
(e) 14세기 기독교 정치철학
(f) 중세 정치철학: 원칙에 의한 개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