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생들이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 공부를 잘하면 사회에 진출해서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비교적 많다. 공부를 잘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다. 공부에 관해 잘하려면 다 아는 공부를 해야 한다. 느닷없이 다음 내용을 적어보니 공부에 국한시켜 생각해 보길 바란다.
비논리가 나 자신을 지배하게 되면 자신이 성장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의 구실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논리는 상대방에 내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합리적인 사고와 결정을 위한 근거 장치다.
가끔 공부에 흥미가 없거나 성적이 좋지 못한 학생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논리 - 수학은 너무 못해서 공부를 안 합니다.
논리 - 공부를 못해서 해야 한다.
이 충돌에서 대다수의 학생들은 비논리를 선택한다. 사람들은 논리와 비논리의 중요성보다 자신의 편익성을 그보다 더 중요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 자신들도 이 비논리가 틀리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논리적인 상황을 선택하면 무척 고통스러우니 자신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비논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더욱이 주변에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학생들이 차고 넘친다. 이런 다수화는 결국 다수결이란 합리화로 포장되어 미래의 비전보다 현실 안주를 선택하는데 근거의 바탕이 되어준다. 또한 가끔씩 공부 안 하는 것이 왜 나쁘냐는 명사들의 사회 지탄에 환호를 지르며 급기야 '그것이 옳다'로 생각 굳히기에 들어간다.
나는 본 글에서 왜 공부가 중요한가에 관해 논하지 않겠다. 나는 학생들은 그들의 보편적 의무가 공부라는 지극히 소소한 명제에서 이탈하지 말기를 바란다. 또한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공부를 못하는 이유를 묻는가? 그것의 답변은 상당히 명료하다. 공부를 안 해서 성적이 좋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공부를 해도 못하는 경우는 머리가 나쁠 확률도 있지만, 공부했다고 '착각'해서 그럴 경우가 상당수다. 공부를 안 하는 것과 공부했다고 착각하는 경우의 노선은 다르다. 하지만 '모른다'라는 귀착점은 동일하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을 비롯하여 모든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고 싶다. 그리고 자유주의 세계에선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므로 대기업이나 각 회사들은 자신들의 회사에서 열심히 일할 '똑똑한 인재'들을 선발하고 싶어 한다. 똑똑한 인재는과장된 자기 PR만 가지고는 어필이 어렵다. 사회와 기업은 자신들이 필요한 인재를 선발함에 여러 검증 필터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 가장 크게 보는 필터 중의 하나가 바로 학력이다. 비록 이력서란에 학력을 쓰지 말는 사회적인 요청이 있지만 기업 입장에선 본인들이 원하는 인재를 뽑겠다는 의지는 결코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공부를 잘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명백하다. 그렇다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인간은 존재 자체로 지극히 존엄하며 학력 여부에 관련 없이 무한한 행복추구권이 있다. 이것을 누가 부인하고 모를 수 있는가? 공부를 잘하라는 말속에 이런 의미는 없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 존중받을 권리는 보장받아야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라. 그리고 이왕이면 잘해라. 그렇다면 똑똑한 인재를 선호하는 기업들이 너희들에게 많은 기회를 줄 것이다. 공부를 할 때 모르면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공부를 해서 다 알면 재미있고 쉽다. 사실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데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가 '흥미와 결과' 때문이다. 흥미가 있으면 결과가 성적으로 나온다. 좋은 결과가 나오니 이에 더욱 흥미를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선순환으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계속 공부하게 된다.
만약 공부를 잘하고 싶다면 다 아는 공부를 해라. 자멸감에 빠져서 공부를 안 하면 결국 성적이 저조하게 된다. 학생으로서 공부를 못하면 반성해야 하는데 공부가 필요 없다느니 한국 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크다느니, 공부만이 살 길이냐는 항변은 다소 비겁하니 지양해라.
괜찮다. 다른 공부 외 당연히 다른 진로를 모색해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얼마든지 너의 장점으로 사회에 기여하며 자신의 인생을 꾸려 나가기에 우리 사회는 크게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여 그 길로 나가는 사람들의 노력도 인정해 주고 서로 존중하고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면 된다.
한국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2가지가 있다. 첫 번째 창의교육 지향과 두 번째는 수월성 교육 고수다.
서구 유럽은 장자르크 루소 (Rousseau) 등이 사상과 신체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며 유럽 인문주의 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를 토대로 발생한 시민혁명을 거치며 유럽엔 귀족교육과 더불어 일반교육이 서서히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카페에서 광장 등에서 사회 시스템의 지향점과 인간의 존엄 등에 관해 활발한 대화하였다. 하지만 사회적 과도기의 과정 속에 있던 유럽 역시 지나친 엄벌주의 교육의 폐단이 컸다. 영국 수상 처칠은 이튼 학교 시절 선생님께 피가 나도록 늘 종아리를 맞았다고 회상하였다.
과거 주입식 교육 일변도에서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은 전체주의에 대한 혐오감에 학생들에게 획일화된 교육을 지양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추구하는 교육을 실시하였다.
우리나라의 현대교육이 일제 치하의 군국주의적 환경과 군부시절의 반공교육의 배경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해 주입식 교육이 정착이 되어 줄 세우기라는 비판이 지금도 이어진다. 이에 1990년대에 들어서며 수능의 출현으로 다양한 교육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시대는 변한다. 또 변하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이 있다. 우리는 현세를 글로벌 시대라 일컫는다. 수많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또한 무한 경쟁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2023년에는 AI까지 출현하여 사람들의 사고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누구는 '무섭다' 하고 누구는 '혁신'이라 한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어떤 교육이 좋으니 그 방향으로 가자고 주장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의 길을 선택함에 부족함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즉, 한국 교육이 어떤 방향을 잡고 학생들을 이끌어 가든 충실히 그 시스템에 맞춰 학생들을 이끌어 갈 것이란 것을 다짐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생각조차 가두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수월성 교육의 강한 틀 속에서도 학생들의 사고를 보다 유연하게 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 중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최대의 자원이 사람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무한 경쟁의 시대에 교육철학의 깊이가 낮을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역사성을 인지한다. 이에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도록 더욱 열심히 노력해온 민족임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에 속한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그 누가 예측했었던가?
교육을 이해하는데 철학의 관점이나 시대의 요청이나 둘 다 무시할 수 없다. 복잡하고 머리 아프니 이런 토론을 멈추자는 것은 더욱 큰 오류를 초래할 것이다. 나는 우리 교육의 현실과 미래를 논하시는 분들의 담론을 경청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눈앞에 있는 학생들의 소소한 성적에도 연연할 것이다. 다 아는 공부를 하여 시대를 읽어갈 수 있는 길도 있으니 혹여 나의 이 관점이 다소 불편하실지라도 당면 현세에 충실하자는 논리도 존중하겠다고 양해해 주길 부탁한다.
학생들아 공부를 잘하거라. 너희들 살아갈 때 선택의 폭이 넓다.
다 아는 공부를 해라.
성적이 나쁘다 해서 너희들의 인격적 흠결은 전혀 없다. 다만 공부할 때 모르는 것이 없도록 해라.
내 부탁은 그뿐이다. 나는 다 아는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짐을 확인했다.
'유익한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세계 문명사 강의 / Hugo Kim 교수 / 재미원로 (0) | 2023.05.16 |
|---|---|
| 세계문명사 연재 4대요소/Hugo Kim (0) | 2023.05.12 |
| 숫자 4( 四 )의 깊은 뜻 (0) | 2023.05.11 |
| 박건형 태크 부장의 홀리테크 (0) | 2023.05.11 |
| 1분 경영특강 / 조태현 박사 (0) | 2023.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