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1976~ )의「넥서스(김영사)」를 읽었습니다. 책 표지에 나와있는 바와 같이 '석기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 책인데, 이처럼 재미없을 것 같은 글감을 가지고 그토록 쉽고도 재미있게 썰을 풀어댔다는 것 자체로 충분히 경이로웠습니다.
저자의 이전 저작인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도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더 재미도 있고, 또 더 잘 썼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밑줄도 훨씬 더 많이 그어댄 것 같구요.
구전된 이야기, 문서, 인쇄술, 라디오, 신문, TV, 컴퓨터, AI 등의 도구들을 이용하여,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로마, 성경, 중세, 마녀사냥, 히틀러, 스탈린, 포퓰리즘, 전제주의, 전체주의, AI, 알고리즘 등에 관하여 그야말로 정신 없이 떠들어대면서 정보 네트워크의 지난 역사와 현 상황을 설명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과 함께 대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덕분에 그 동안 모르고 있었던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으며,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해 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가 자신의 남편 얘기를 하는 대목에서는 번역이 잘못 되었나 하고 잠시 의심했었는데, 번역 오류는 아니었고, 그냥 자신의 배우자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얘기였더군요.
읽다 보니 <사피엔스>나 <호모 데우스>에서 읽지 않았나 싶은 내용들도 간혹 만났는데, 위 두 책의 내용들 중에 기억나는 게 거의 없어서 좀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노래방의 등장으로 가사를 기억하지 못하고, 내비게이션의 등장으로 도로 지리를 익히지 못하며, 휴대폰의 등장으로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하고, 판례 검색이 쉬워지면서 대법원 판례를 숙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각종 지식에 대한 컴퓨터 검색이 가능해지면서 암기 근육이 갈수록 소실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강력한 지도자가 부패로 고발당했다고 생각해보자. 그의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은 당연히 그 혐의가 거짓이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권자가 지지한다고 해서 이들의 바람이 판사가 지도자의 혐의를 조사하여 진실을 밝히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과학적인 문제도 마찬가지다. 투표자의 다수가 기후 변화의 현실을 부정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과학적 진실을 좌지우지하거나, 과학자들이 불편한 사실을 조사하여 발표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의회와 달리, 환경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는 다수의 의사를 반영해서는 안 된다. (199쪽)
- 아타나시우스 주교와 같은 교부들이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를 [성경] 데이터세트에 포함시키고 <바울과 테클라의 행전>을 제외하기로 결정한 일은 수천 년 동안 우리가 사는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21세기까지 수십억 명의 기독교인이 <바울과 테클라의 행전>의 관용적인 태도 대신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의 여성 혐오 사상을 바탕으로 세계관을 형성했다. 지금도 방향을 되돌리기는 어려운데, 교부들이 [성경]에 아무런 자정장치를 포함시키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아타나시우스 주교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AI의 초기 코드를 작성하고 아기 AI가 학습할 데이터세트를 선택하는 개발자들이다. AI가 더 큰 힘과 권위를 가지면서 스스로 해석하는 거룩한 책이 되고 있는 지금, 개발자들이 내리는 결정은 수 세기 후까지 파장이 미칠 것이다. (5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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