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와 관련된 정치와 시사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 본 미래 사회전망)--

양곡(陽谷) 2025. 6. 17. 23:35

르상티망'(ressentiment).
---공감가는 글이라 퍼왔습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 본 미래 사회전망)--

향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나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 우리가 맞게될 사회를 조망하였다.
내가 올라선 거인은 니이체이다.
니이체의 어깨에 올라서서 내가 본 다가올 사회는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세상이다.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보자.

당신이 동창회 갔다가 같은 대학을 졸업한 동창이 강남아파트를 샀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자기보다  공부를 못했는데도 시집을 잘가서 남편이 돈을 잘벌고 잘살고 있다는걸 알게되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앞에서는 축하해 주었지만 (물론 이것도 자기 절제와 교양이 있는 사람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뒤돌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패배감과 열등감에 정신을 가누기 힘들다.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기 어렵죠?
그런데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당신도 강남아파트와 부가 좋다는 걸 마음속으로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겉으론 강남 별것 아니다고 말하지만 그런 패배감 질투심이란 감정이 생긴 것은 속마음 깊은 곳에 강남이 성공과 부를 나타낸다는 걸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맞지 않다고 부인하기 힘들죠?
그렇다.

그래서 당신이 우울했던 것이다.
패배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건 당신만 그런게 아니라 인간의 본능이다.
누구나 그렇게 되기 쉽다.
인간은 언제나 그래왔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기보다 잘사는 부자를 보았을 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은 인류의 역사상 그 어떤 시대보다 더 강하다.
왜 그럴까?
우리가 신분제가 아닌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노예로 태어났으니 또는 천민으로 태어났으니 못살아도 핑계될 수가 있었다.
그때는 가난함이 자기 탓이 아니였다.
그런데, 신분제인 봉건제와 달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노력하고 재능이 있고 또 운이 따른다면 성공하고 부자가 될수 있다.
지금 우리는 자신의 가난함을 핑계대기가 쉽지 않은 사회를 살고 있다.
당신이 그렇게 똑똑하고 재능이 있다면 또 돈을 좋아한다면
왜 부자가 못되었는지에 대해서 필사적으로 해명해야 하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렇지 않은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하게 사는 것은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사회에서보다 정신적으로 더 고통스럽다.

가난 그 자체가 가져다주는 고통보다 실패자와 루저로 낙인찍는 타인의 눈초리를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런 괴로운 상황에서 부자가 아닌 대중은 어떻게 행동할까?
이제 나의 거인 니이체가 등장해서 예언해 줄 타이밍이다.

니이체의  '르상티망'(ressentiment).
르상티망이 뭔가?
‘원한(怨恨)감정’이다.
다수의 실패자와 루저는 소수의 성공자에 대해서 원한, 시기심, 질투심, 증오심을 가지게 된다고 니이체는 말하였다.
니이체는 이런 감정을 ‘르상티망’이라고 칭했다.
니이체는 ‘르상티망’(원한감정)을 가진 열등한 다수는 ‘가치 전복’을 꾀한다고 주장한다.

가치전복(價値顚覆)?
열등한 다수가 가치를 뒤집는다는 것이다.
좋은 것을 나쁜 것으로 만들고,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뒤집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통찰력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니이체를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른다.
니이체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관념을 사정없이 망치로 때려 부순다.
좀 더 쉽게 설명해보자.
니이체는 열등한 다수의 무리들이 ‘가치전복’을 통해서 ‘노예의 도덕’을 창조하고 이를 통해서 정신승리를 한다고 했다.
조금 더 쉽게 예를 들어보자!
아름다운 것, 강한 것, 부유한 것, 풍요로운 것이 원래 좋은 가치이다.
맞지 아니한가?
그런데 아름다운 사람, 강한 사람, 부유한 사람은 소수이다.

다수의 무리는 아름답지 못하고, 약하고, 가난하다.
이들 다수의 무리는 기존 가치체계 상으론 열등감에 시달리면서 살아야 하니까 괴롭다.
그래서 다수의 열등한 무리는 ‘가치 전복’을 시도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다.

“예쁜 것이 다가 아니다.”
“부자는 탐욕스럽고 지독하다.”
“부자는 지옥간다.”
“가난한 사람이 천국간다.”
“겸손해야 한다.”
“양보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니이체가 말하는 ‘노예의 도덕’인 것이다.
다수의 실패자인 대중들은 노예의 도덕인 겸손, 양보, 청렴 같은 덕목을 내세우며 정신승리 한다.

성공한 사람에게 잡을 트집이 없으면 가장 흔한 지적질은 겸손하라는 충고가 될 것이다.
이런 게 바로 ‘가치전복’이고 ‘노예의 도덕’이라고 니이체는 말한다.
노예의 도덕은 무엇이 문제인가?
니이체는 노예의 도덕이 횡행하는 사회는 타락하고 망한다고 보았다,

원래 강하고 고귀한 것들이 박해받기 때문이다.
엘리트, 강함, 고귀함,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회는 발전하지만,
노예의 도덕을 추구하는 사회는 퇴보하고 타락하게 될 것이라고 니이체는 주장했다.
노예의 도덕을 강조하는 정치세력이 바로 좌파 포퓰리즘 정권이다.
그들은 뛰어남보다 평등의 가치를 더 강조한다.
그래서 사회는 병들고 퇴보하게 된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