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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이해우 시인,정순영 박사, 시인, 권오득 같이 만났습니다

양곡(陽谷) 2024. 10. 5. 06:02

2024년 10월 4일

삶이 즐거운 건 어제와 오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너무 이른 시각에 비행기가 도착한 것부터 시작해서 모텔에 짐을 맡기면서 벌어진 조그만 사건, 그리고 전화 유심칩을 사러 퇴계로까지 갔다가 개천절이란 이유로 허탕을 친 일까지 다사다난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더군요. 마치 마른땅에 목마른 식물이 그냥 말라 기절을 할까 말 까 고민하던 순간, 그러지 말라고 선물처럼 내린 시원한 여름비 같다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어제 구입 못 한 유심칩을 쉽게 구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서울 방물을 할 결정을 하게 만든 의형님 정순영 시인과 작년에 만나 우정을 다진 권오득 선생님 두 분을 기쁘게 만났으니 말입니다.

명동의 국립극장 앞에서 만났습니다. 포옹하고 악수하고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점심 때 이기에 근처의 명동 칼국수 본점으로 갔습니다. 칼국수가 가장 맛있는 계절은 가을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공감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명동에는 명동 칼국수 본점과 분점이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의형님 가라사대 '본점이 분점보다 맛있어요'라 하시니 정말 그런 것 같더군요. 신기한 일입니다.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 갈갈 갈. 본점도 분점도 식당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우리도 줄을 섰는데 자리를 정해주시는 분이 3명은 줄을 벗어나 3층으로 가라 하더군요. 3층으로 가는 계단에는 '3인 이상은 3층으로'란 글이 써져 있었습니다. 명동 칼국수 식당에서 줄을 안 서는 방법은 3인 이상이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단체 손님 대접을 받습니다. 1층과 2층은 혼자 오거나 둘이 온 손님만을 위한 층이었습니다.

정순형 형님이 식사를 사셨습니다. 형님과 권오득 선생님과 서로 돈을 내겠단 실랑이를 하였지만 형님이 이기셨습니다. 우리 형님 참 장하십니다.

식당에서 근처의 메가 커피숍에 갔습니다. 뜨거운 커피를 앞에 놓고 세 사람은 거의 2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마치 LA에서의  반지회 모임처럼 말입니다. 주제는 사회, 경제, 정치, 삶과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지요. 정순영 형님은 이번에 새로 출간된 4인 시집 '금강산 가는 길'(조병기, 허형만, 임병호, 정순영)을 사인을 하여 선물로 주셨습니다.

커피숍에서 나왔을 때 권 선생님은 병원 약속이 있어 떠나셨고, 저와 형님은 명동에서부터 걸어서 광장시장까지 갔습니다. 먼 거리라 형님은 가끔 벤치에 앉아 다리의 피곤을 풀어주어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세월의 그림자가 형님 뒤에 서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광장시장의 '우리 집'이란 전을 파는 가게에서 음료와 전을 먹으며 의좋은 형제처럼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치 쌀을 지고 서로 오가는 그런 형제 말입니다.

이때 형님이 말 하시길 10일 10일 날 함께 할 여행에 대해 대략의 일정을 저에게 말해 주셨지요. 저는 그저 감사함으로 들을 수 밖에요. 돌아보니 누군가가 저를 획하여 이런 여행 계획을 주도하여 계획하고 준비하여 준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의 한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광장시장을 나오며 입구에서 꽈배기 5개를 샀습니다. 우습겠지만 두 사람의 저녁 식사입니다. 저는 하나만 먹어도 되었는데 형님은 내가 적어도 2개는 먹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꽈배기를 들고 나오다 근처의 커피숍에서 헤이즐넛 커피를 사고 조금 걸어 종묘가 보이는 세운상가의 앞 돌 평상에 자리를 잡고 헤어지기 서러운 사연 많은 연인들 처럼 이따금 생각나는 이야기를 하며 주변의 평화스런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지는 석양과 종묘를 구경하고 나오는 사람들의 발결음과 횡당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이 풍기는 하루의 삶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나면 툭툭 한마디를 무심히 하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은 전형적 가을 날씨로 선선하였고 종묘 앞에는 웬 평화와 사랑이 가득하였는지.... 내내 행복했습니다. 그건 형님도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알퐁스 도데의 '별'이란 단편 소설에 나오는 프로방스의 양치기 소년도 소녀와 하늘의 별을 보며 이런 사랑과 평화를 느꼈지 않을까 하는 논리적 연관이 힘든 미친 상상도 했으니 말입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릴 때쯤 두 사람은 다시 걸어 지하철 역에 도착했고 방향이 비슷하여 우리는 4호선을 탔습니다. 사당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야 했기에 제가 먼저 내렸고 거기에서 오늘의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긴 하루였는데, 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몸의 피곤이 길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더군요. 지금은 따스한 물에 목욕을 하고 나와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사실 보고 듣고 생각하고 정리해야 할 것들은 많지만 그것을 다 옮기며 꽤 많은 단편소설의 분량이 될 것이기에 줄이고 줄였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참 배가 부르다'란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음식 때문이 아니라 배려와 사랑 때문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