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삶의 지혜/慾望.욕망)ㅡ1791회.
聖人(성인)이나 哲學者(철학자)들은 자신을 억누르고 욕망을 절제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지요.
그러나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킬 능력이 있는 동시에 부적절한 욕망을 제어할 줄 안다면 괴테가 "愛情(애정)과 慾望(욕망)은 偉大(위대)한 行爲(행위)로 향하는 精神(정신)의 날개다"라고 했듯이 우리 삶의 活力(활력)을 주는 주요 요소가 되겠지요
우리는 聖人(성인)이 아닌 일반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기에 욕망을 억누르기만 하는 삶은 그저 ‘외곽을 겉도는 삶에 불과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욕망을 적당히 억누를 줄도, 적절히 놓아둘 줄도 알아야만 비로소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도승이 아닌 이상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되지만 모든 욕망을 끊고 감정 없는 나무처럼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滿足(만족)될 수 없는 것이 慾望(욕망)의 本質 (본질)이라고 하지만 욕망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 수 있을까요?
물론
"욕망은 항상 만족에 도달하지 못하고 끝까지 慾求(욕구)를 만족시키려는 무한한 노력 속에서 개인을 탕진시키는 바닥 없는 항아리이다"라고 E. 프롬이 '자유로부터 도피'에서 말하고 있지만,
욕망이 없다면 결코 社會的 動物(사회적 동물)로서의 意味(의미)가 상실되어 삶 자체가 더 이상 발전이 없겠지요.
만족될 수 없는 것이 욕망의 본질이며, 대부분 사람들이 그것의 충족을 위해 사는 이상
일단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되 끝까지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무한한 노력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며 자신의 정력을 탕진하여 건강을 해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인생에는 두 가지 悲劇(비극)이 있다.
하나는 자기 마음의 욕망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그것을 하는 것이다"리고 G.B. 쇼가 '人間(인긴)과 超人間(초인간)'에서 말했지요.
또한,
"마음은 작은 것이지만, 욕망은 큰 물건이다.
한마리 솔개로 저녁식사에 충분하지 않고, 게다가 세상 전체도 그것에 흡족하지 못한다"라고 F. 퀼즈가 '상징'에서 말했듯이,
욕망은 삶의 어쩔 수 없는 '必要惡(필요악)'이기 때문에 창조주 하느님의 도움으로 욕망을 즐기며 욕망으로부터 자유스럽고 억압당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돈, 권력, 명예 중 하나면 갖고 살기에도 힘든데 우리 인간은 모든 것을 갖고져 하기에 모든 것이 여러갈래로 쪼개져 관리할 수 없어 서로 갈등을 일으키여 나중에는 수습할 수 없는 단계에 빠져 욕망의 주인이 욕망의 하인이 되는 그림자 신세가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대부분 "행복하기 위해 산다"라는 말을 하지요.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다면, 동물적 즐거움의 과정을 통한 동물적 즐거움과 쾌락을 만끽한 후 고통과 수난이라는 과정으로 넘어가 깨달음을 통한 "기쁨과 환희"를 맛본다면 진정한 의미의 행복한 사람으로서 聖人(성인)이든 일반 평범한 사람이든 지극히 보람된 삶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인 감성과 감정을 민끽한 후 이성의 단계로 넘어가 함께 조화를 이루며 인간적.인격적 관계의 형성으로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즐겁고 기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육이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마음것 뛰어놀고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의 과정을 박탈된 가운데 오직 지식교육에만 빠지다 보니 감정이나 감성의 발달로 인한 인간적 화합이나 협동에 매우 미약한 동시에 삶의 사소하고 잔잔한 즐거움과 기쁨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잘 놀아본 사람이 결국 고도의 感性(감성)으로 理性(이성)과 調和(조화)를 아루며 지극히 人間的(인간적)이면서 人格的(인격적)인 관계를 잘 유지할 것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요.
감사합니다.
赤松. 許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