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는 1869년 메이지 천황 시절
황군의 혼령을 위로한다는 목적으로 세은 것이다.
처음 이름은 '혼령을 부르는 곳’이란 뜻의 쇼콘샤(招魂社)였으나
1879년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인 지금의 이름인 야스쿠니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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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메이지 유신이후 제2차 세계대전까지
11차례 전쟁의 전몰자 246만 여명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이 신사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1급 전범 14명을 안치해 놓은 곳이라
일본 정치인들의 이 신사 참배 문제는
우리나라 언론에도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정문에 서 있는 오오도리이(大鳥居 : 신사 앞의 건조물)는
높이가 무려 25m나 되어서 내가 본 도리이 중에서는
가장 큰 것 같다.
안으로 들어서니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이레이노이즈미(慰靈の泉)', 즉 '위령의 샘'이다.
전장에서 싸우다가 물이 없어서 고통을 당한
병사들을 생각해서 만든 것이란다.
광장 한가운데는
오오무라 마스시로우(大村益次郞)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그는 근대 일본 육군 창설자로 이 야스쿠니 신사 창건에도
절대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니 일본의 군을 상징하는
인물로 동상을 세워놓은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어머니상이 있는가 하면 전장에서
죽은 말의 위령상, 비둘기상, 군견 위령상도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인상적인 것은 신사 뜰에 놀고 있는
하얀 비둘기들이었다. 영원한 평화를 위해서
일본 각지에서 기증해 온 비둘기들이란다.
하기야 '야스쿠니(靖國)'의 뜻이
'평화로운 나라'가 아니던가.
그런데도 이곳이 군국주의 일본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것은
어쩐 일일까.
야스쿠니신사는 제국주의 침탈의 향수로 가득 차 있었다.
거기에 있는 유슈간(遊就館)에는 청일, 러일 전쟁의 유품과
제1차 세계 대전, 만주, 지나 사변,
그리고 대동아 전쟁의 유품과 사료가 전시되어 있었고
2차 대전 때 활약하던 함상 폭격기 스이세이(彗星) 로켓 특공기
오우가(櫻花) 인간 어뢰 가이덴(回天) 등도 있었다.
그리고 일황에 충성을 다짐하는
군인칙유(軍人勅諭)의 비석이며
가미카제 자살 특공대원 동상 같은
전쟁기념물이 곳곳에 들어서 있었다.
한쪽 구역엔 전함 야마토의 46인치 포탄에서부터
오키나와에서 옥쇄한 포병대의 15인치 대포까지
옛 일본군 병기들이 전시돼 있었다.
***한국인 전사자와 생존자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주모자들이 안치되어 있는
야스쿠니신사에는 강제로 징용되어 죽었지만
‘일본을 위해 전사했다'는 이유로 제사를 지내는
한국인이 21,000명이나 안치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고종황제의 손자이자 의친왕 이강의 둘째 아들이었던
이우는 황실의 명맥을 이어갈 후계자로 지목받던 인물이었다.
더구나 서울의 김희종 할아버지처럼 일본군에 끌려가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일본의 패망으로 풀려났는데도
서류 착오로 포함된 생존자도 10여명이나 있다.
김 할아버지와 유족 10명은 야스쿠니 신사명부에서
이름을 삭제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 끝에
나온 판결은 황당했다.
일본 법원은
'불쾌하다고 법적으로 구제하면
종교적 행위를 제약한다.' 면서 청구를 기각했다.
종교의 자유가 더 중요하니
불쾌해도 참으라는 것이다.
일본은 조선인 94만명을
전쟁터로 끌어가 놓고도 단 한 푼의 배상도 거부했다.
그들은 강제 징용자가 '일본 국민이 아니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기들 제사상에는 마음대로
남의 나라 피해자들을 올려놓고는 영령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야스쿠니 신사 입구
정문에 서 있는 오오도리이
오오무라 마스시로우(大村益次郞)의 동상
정문
군견, 군마상
참배소
전사자 사진
유슈간(遊就館)
유슈간(遊就館) 앞에있는 자폭부대 영웅의 동상
유슈간 내부 전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