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등

마음을 움직이는 글( 2 )

양곡(陽谷) 2009. 11. 1. 17:29

5.강도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

소리칠 겨를도 없었다.

재빠른 동작으로 그는 우리 집에 침입을 했고나를 두꺼운 끈으로 묶어놓았다.

내 집에 도둑이 들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전날 밤 딸네 집에 간 아내에게 자고 오라 말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가진 돈… 돈 있는 대로 다 내…놔!안 그러면… 죽여 버리겠어."

20대 젊은이로 보이는 사내는 내게 칼을 들이댔다.

소름이 돋았다.

환갑이 넘었으니 죽음을 한 번쯤생각해보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내가 돈을 주면 날 죽이지 않을 거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순간 도둑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푸른색 마스크 위로 보이는그의 눈빛이 왜 그리 선량해 보였는지….

어디 가서 이렇게 말하면 미쳤다고 하겠지만내가 보기에 그는 도둑질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으니..

"젊은이, 언제부터 이랬나."

"늙은이가 말이 많아.이상한 소리 말고 돈이나 꺼내!"

그는 칼을 내 얼굴에 거의 닿을 정도로 들이댔다.

눈앞에 보이는 칼 뒤쪽으로 그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나는 죽음이 안 무서워. 자식들도 다 키워놨고내 손주도 자네 나이쯤 됐을걸."

"이 영감탱이… 빨리 돈 내놔!"

그의 목소리는 더 격양돼 있었는데왠지 모르게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돈 줄게. 자네가 원하는 것을 다 줄 테니우리 타협하세. 

강도질이 아니라 내가 빌려주는 것이면 어떻겠나?"

그의 동공이 커지는 것으로 보아내 말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내가 잔머리 굴리는 것으로 보이나?환갑이 넘은 내가 젊은 자네만큼 똑똑하겠나."

나는 침을 한번 꼴깍 삼키며 말을 다시 이었다.

"만약 이번이 처음이라면 자네 인생에 오점을 남기면

안 되잖아. 잡혀가지 않아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나는 살 만큼 살았으니 지금 죽어도 별 후회가 없지만자네는 너무 아까워.

내가 양보할 테니 빌려주는 것으로 하세.

"순간 내가 잘못 본 것인 줄 알았다.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륵….

마스크가 움씰움씰 움직이는 것이 그는 분명 울먹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간땡이가 부었지.칼을 쥔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순전히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내 생각처럼 그는 선량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에이 씨 못해 먹겠네."

그는 마스크를 벗더니 내 앞에 털썩 주저앉아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할아버지, 죄송합니다."나도 목이 메여 그의 등을 다독거렸다."도둑 체면이 말이 아니구먼.

이런 마음으로 어떻게 도둑질을 하려고....다 폼이었나? 허허허"

그는 제 손으로 묶었던 끈을 다시 풀어주었다."무슨 사연이 있는 거야. 그렇지?"

"…제 어머니가 혈액투석 중이신데병원비가 너무 밀려 있어서요.

한 달 후엔 저도 결혼을 해야 하는데돈에 너무 쪼들려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장롱 문을 열어 깊은 곳에서금반지와 목걸이를 꺼냈다.

그리고 손자 등록금에 보태주려고 찾아두었던돈을 그의 무릎 앞에 내밀었다.

"할아버지! 이러시면…""내가 약속하지 않았나. 빌려주겠다고"

"됐습니다. 그냥 나가겠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붙들었다.

"그냥 나가면 도둑이 되는 거야.

나는 도둑에게 이 돈을 빼앗긴 게 아니라앞길 창창한 청년에게 빌려주는 것이라네.

나중에 갚으면 되고."

그 시간. 청년도 울고 나도 울었다.

그는 돈과 패물을 받아들고 내 집을 얌전히 걸어 나갔다.

나는 그를 문밖까지 배웅해 주었다.

그는 "성실하게 벌어 반드시 이 빚을 갚겠다." 는

말을 남기고 가로등 불빛 사이로 사라져 갔다.


 

 

 

  6.어찌 당신뿐인가요?

 

       동토의 땅에 두고온 내 가족.

       어히 생각을 아니하리요?

 

       헌신짝 동여매고 굶주린 몸으로.

       사선의 탈북을 하였는데.

       남녘땅에 좌파족이 득실되니.

       또한 이내몸 어히하면 좋으리요? 

 

 

 

 

 

단지 자유를 얻어 인간답게 살고 싶을 뿐인데...

그걸 얻기 위해선 너무도 많은 것과 큰 것을

버려야 하네요...

그래도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강을 건너고 담을 넘는 걸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쓰리고 아픕니다...

 

7.아빠의 도시락

 

미란인 오늘도 여전히 퉁퉁 불어터진

얼굴로 등교를 한다.



아침에 일찍 깨워주지 않아서

머리 끝까지 심통이 난 것이다.



'미란아, 그래도 아침은 먹고 가야지'

'됐어!' '학교가면 배고플 텐



데 조금이라도 먹고가'

'싫다고 했잖아! 아빠나 먹으란 말야!'



현관까지 미역국에 밥을 말아 들고

나와 한숟가락이라도 먹이려

하시는 아빠룰 짜증스런 말투로 쏘아 붙이고는

도망치듯 나와 버렸다.



학교로 뛰어 가는 내내 깨워주지 않은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30분만 일찍 깨워 줬으면 예쁘게 머리도 하고



옷도 깔끔하게 다림질



해서 입고 나올 수 있었을텐데...

요즘 미란인 한 학년 위의 태영이에



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한참 외모에

신경을 쓰고 있던 참이었다 .



어제는 아빠 주머니에서 만원짜리 한장을

훔쳐 큐빅이 촘촘히 박힌

예쁜 머리띠도 샀다.

물론 태영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였지만

같은 반의 진영이에게 뒤지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



미란인 학기초부터 진영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무조건 다 가 지고 싶었고

그래서 아빠 주머니에서 돈을 흄쳐서라도

결국엔 사고야 말았다.





가난한 집이 창피해서

부잣집 딸인 척하는 미란이에겐 등교 하면서

기사 아저씨가 모는 고급 승용차에서 내리는 진영이가

마냥 부러웠던것 이다.



그뒤로는 진영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얄밉고

심술이났다.



그러던 터에 좋아하는



태영 오빠도 은근히 진영이에게 관심이 있는 눈치였기에



미란의 진영에 대한 곱지 못한 시선은 날로 더해만 갔다.



미란인 교실 문을 들어서는 순간 머리띠가



너무 예쁘다며 모두들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자



자신이 진영이 못지않은 부자집 딸이 된 것 만 같아



우ㅉㅡㄹ하는 기분이 들었다 .



미란에겐 아빠에게 통명스럽게

대했던 기억은 아예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선생님께서 불러 교무실로 내려 간

미란인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아빠가 오신 것이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더러운 운동화.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두 볼

이 움푹 패인 파리한 얼굴에 한 쪽 다리를 절며...



막노동을 하시는 아빠에게서

나는 역한 땀냄새와 초라해 보이는

아빠의 모습이 미란인

너무나 창피했다.



고개만 푹 숙이고 누가 볼까 내내 불안하고

수치스러운 기분마저 들었던

미란인 교무실을 나와 현관으로 향하는 내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 저쪽에서 걸어오는 태영오빠가 보였



다.



태영 오빠와 눈이 마주친 순간



'기사 아저씨, 오늘은 먼저 가세요.'



미란이도 모르게ㅔ 내뱉은 말이었다.



순간 아 빠는 표정이 굳어지며

당황한 빛이 역력했지만 미란 에게 아

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현관을 나서는 순간 미란인

그런 아빠의 모습에 더 화가나 소리를 질렀다



.'여긴 뭐하러 와!누가 아빠보고 학교에 오랬어?' '...'



'얼른가'.애들이보면 창피하단 말야!

'미란아, 아빠가 그렇게 창피하니?'



'몰라서 물어? 얼른 나가기나해!'

아빠는 더이상 묻지 않으셨



고 미란인 누가 볼까 조마 조마한 마음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아빠는 여전히 새벽부터 준비하신 도시락 가방을 쥐어



주시며 아침밥을 먹으라고 하신다.

하지만 미란인 그날 아빠가 학교에



오신것에 대해서 너무나 화가 나서

도시락도 그냥 두고 나와버렸다.



아빠는 변변치 않은 살림에도 항상

내 도시락에만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점심시간 수위실에 기사 아저씨가

맞겨 놓으셨다며 친구가 도시락 가

방을 건내 주었다.



기사 아저씨란 말이 내심 걸리긴 했지만

미란인 그냥 친구가 그렇게

한 말이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도시락을 쳐다보기조차 싫었다.



그리고 수업을 거의 마칠 즈음이었다.



선생님께서 황급히 부르신다며

빨리 교무실로 내려오라는 친구의 말

에 미란인 덜컥 겁이났다.



또 아빠가 오신게 아닐까....



교무실로 들어선 순간 미란인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미란일

쳐다보는 선생님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미란아,아빠가 지금**



병원에 계신단다.얼른 가방 챙겨와라.선생님



이랑 같이 가자



'미란인 잠시 머리 속이 멍해지는 듯 했지만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하는 생각을 하고 잇었다.



'왜 선생님까지 가세요? 저 혼자 가도 돼요.

'그때까지 미란인 그리



큰일이 아닐꺼라고 생각했지만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선생님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미란인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가난때문에 미워하고 원망했던

아빠지만 안계신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다.



영안실에서 아빠의 얼굴을 확인하고

돌아서는 미란인 그토록 감추고



싶어했던 아빠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온통 상처와 시퍼런 멍으로 가득한 뼈만 남은

앙상한 팔과 다리,햇볕



에 그을려 거무티티하게 벗겨져 버린

아빠의 얼굴과 10개 중에 반이

상 손톱이 빠져버린,

새벽에 도시락을 싸시던 거친 손이 이제서야

미란이의 눈에 들어왔다.



간암말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아빠는 혼자서 그렇게

견뎌 내셨고 고통 속에 혼자 외롭게 떠나신 것이다.



그날 학교에 다녀가신 것도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미란이가



졸업할 때까지의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 였다는 선생님의 말에 미란인

그날 자신이 아빠를 향해 내뱉았던

싸늘한 말들과 아빠의 슬픈 얼

굴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주시던...

아침밥을 안먹는다고 잔소리를 하던



아빠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아빠가 미란이에게 남긴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막막했지만 이제는 혼자 모든 것을 이겨내야 한다는 걸

미란인 너무나 잘알고 있었다.



아빠의 모든 옷가지며 물건들을 정리한 후

이제 미란이도 학교에 가야 하는 날이 왔다.



도시락을 싸야 할 생각을 하니

아빠의 얼굴이 아른거리며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날 점심시간,

아빠가 수위실에 맡겨놓고 가신 도시락을 열어

보지도않았던 미란인 그제서야 도시락을 풀렀다.

그리고 도시락안에 들어있던



하얀 봉투를 발견했다...



아빠의 편지와 예금 통장...



'사랑하는 내딸 미란아!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너한테 해준 것도 없이 잃게 험한 세상에 널

혼자두고 가야 하는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병원에 갔더니 간암이라고 하더구나.



수술하면 조금 더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아빠는 ㄱㅡㅀ게 하지 않기로 결심

했단다.

아빠가 없는 미란이가 더 행복할 수 잇을 것 같아서...

그리고



수술할 때 써야 하는 돈으로

우리 미란이 더좋은옷,좋은 것 먹이고

싶었단다

혹시나 나중에라도 아빠한테 미안한 생각 갖고

후회하거나 하진 마.

그럼 아빠가 더 미안해지니까..아빠는 미란일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사랑해.

힘들 때마다 우리 미란이 생각하면서 그렇게 견뎌

왔단다.

너에게 부족한 아빠가 되어서...

이렇게 또 널 혼자 두고 가는게



너무나 미안해.우리 예쁜 딸 미란이...

한번 안아 보는게 소원이었는데....

후훗....

오늘 왠지 우리 딸 미란일 보았던 게 마지막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아빠 없다고 밥 굶지 말고 아침 밥 꼭!꼭!먹고다니고



귀찮더라도 조금만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 챙겨가지고 다녀.

아빤 우리 공주가 밥 잘 먹고

건강한것 밖에는 바라는게 없단다.항상 아빠가

하늘 에서 지켜 볼꺼야.사랑한다.....



'눈물로 얼룩진 아빠의 편지.

그리고 도시락 안에 들어있는 통장에는



아빠가 입을 것 못 입고,먹을 것 못 먹고,

아픈걸 참아내며...그렇게



평생을 모으신 1억원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아빠,나도 많이 사랑해...'

미란인 그제서야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 거리면 흐느꼈다.





살아계실때 그렇게 아빠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8. 쓰러진 나라를 일으킨 소아마비 대통령 














미국의 제 32대 루즈벨트 대통령(1882.1.30-1945.4.12). 
그는 재임 중 단 한번도 초조해하거나 낙담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여유 있게 보낸 것으로 유명했다. 
어느 날 대통령에게 신문기자가 인터뷰를 했다. 
기자 ; 걱정스럽다 던가 마음이 초조할 때는 어떻게 마음을 
         가라앉히십니까? 
루스벨트; 휘파람을 붑니다. 
기자 ; 그렇지만 대통령께서 휘파람을 부는 것을 들었다는 사람이 
         없던데요? 
루스벨트 ; 당연하지요. 아직 휘파람을 불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1921년 어느 날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가족과 함께 별장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신문을 보고 있던 루즈벨트는 갑자기 통증을 느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통증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양쪽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소아마비 병을 얻게 됐다.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내가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힘을 내서 목발을 짚고 소아마비와 
싸웠다. 
나중에 그가 정치에 뛰어들려했으나 가족들조차 만류했다. 
그 몸으로 정치를 할 수 없으니 자신의 몸이나 돌보는 데 
힘쓰라고 가족들이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힘겨운 모든 과정을 이겨냈다. 
그 당시에는 약도 없고 원인도 알 수 없는 병이었다. 
루스벨트는 자기의 불굴의 의지로 노력했다. 
그는 절망을 이기고 자기 앞에 놓인 장애를 뛰어 넘었다. 
결국 불구의 몸이 된지 11년만인 1932년 
미국 제 32대 대통령에 당당히 당선되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도 물론 힘겨웠지만 
대통령이 되고난 이후에 만난 어려움은 더욱 컸다. 
주가가 폭락하면서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공장의 물건은 팔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나왔다. 가게도 하나 둘씩 문을 닫고 나라 살림이 
말이 아니었다 
이러한 불행의 원인을 밝히지도 못했고 방법도 찾지 못했다 
그때 루스벨트는 대통령 취임식에 이렇게 외쳤다 
"거짓 없이 솔직하게 해봅시다!  
겁을 내지 말고 현실을 똑바로 보면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 뿐입니다." 
그는 뉴딜 정책으로 나라의 가난을 몰아내고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주고 노인과 실업자를 위한 
보험제도를 만들었으며 국민들로 부터 무려 대통령을 
네 번이나 연속으로 당선되는 미국 역사상 없던 일도 
일어났다. 
귀뜸:김영삼.김대중은 장기집권이라 길길이 악따귀를 쳤을걸...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세계 국제연합(유엔) 창설을 
제안했다. 
"거짓 없이 솔직하게 봅시다." 
장애를 장애로 여기지 않고 고난을 딛고 일어서서 
인류를 위해 헌신한 소아마비 장애자 대통령 루스벨트. 
그는 쓰러진 나라를 걷게 만들었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지금도 많은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혼돈의 현실에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루스벨트의 용기와 지혜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분명히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리라는 
기대감과 함께....

  

9.반백의 아들 울려버린 8旬 노모      

 

  

취재를 위해 경찰서 서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서장은 화들짝 놀라 무언가를 책상 밑으로 감췄다. 중요한 수사자료인가 싶어 “뭐기에 감추냐”고 캐묻자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손사래치는 서장의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한참을 실랑이하다 그가 마지못해 꺼내놓은 것은 여든을 훌쩍 넘긴 노모의 편지였다.

      그는 “오전 6시쯤 출근 준비를 하는데 안방 문틈에 작은 메모지가 끼어 있어 펼쳐보니 어머니의 편지였다”고 했다. 새벽 같이 출근해 밤 늦게야 귀가하는 아들의 얼굴조차 보기 어렵자 어머니 김영애(86)씨가 평소 아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글로 적어 ‘출근 길목’에 놓아둔 것이다. '아들,내 말 좀 들어보소’라고 시작하는 편지는 비뚤비뚤한 글씨에 여기저기 맞춤법이 틀려 있었지만 5살 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듯 간절한 염려와 사랑이 구절구절 담겨 있었다. 환갑을 바라보는 아들이 외출할 때 “차 조심해라”고 하는 한국 어머니들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글이었다. 서장은 “편지를 들고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현관 앞까지 따라나와 '다른 사람 눈치도 봐야겠지만 건강도 챙겨라’라고 하셨다”며 “감정이 복받쳐서 ‘이제 일찍 들어오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출근 후 사무실에서 다시 편지를 꺼내 읽으며 눈시울을 붉히다 마침 방에 들어선 기자와 마주친 것이었다. 그는 “경찰서장에 부임한 뒤 어머니와 대면한 것은 밤 늦게 귀가해 어머니 방 문을 열고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성경을 보는 어머니께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게 전부였다”며 “시민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서장 아들도 어머니에겐 철부지로만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서장이 초등학교 6학년 때 남편을 여의고 농사를 지으며 8남매를 홀로 키웠다. 8남매 중 일곱째인 손 서장이 대학에 입학하자 서울로 이사해 식당일 등을 하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다. 눈이 어둡고 거동도 불편해 거의 외출을 못하게 된 7년 전부터는 집에서 성경을 베껴쓰며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서장은 6일 어머니의 편지를 기사로 쓰겠다고 다시 찾아간 기자의 요청을 한사코 거절하다

마지못해 품에 넣고 다니던 편지를 꺼냈다.

그는 “개천절.추석날에도 출근해야 하는데 그 날 만큼은 일찍 들어가

어머니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겠다”고 했다.

 

 

10.나폴레옹과 사과

 

프랑스 소년 사관학교 앞에 있는 사과가게에는 휴식 시간마다

사과를 사먹는 학생들로 늘 붐볐다.

그러나 그 많은 학생들과는 달리 돈이 없어서 저만치 떨어진

곳에 혼자 서 있는 학생 하나가 있었다.

 

" 학생, 이리와요. 사과 하나 줄 테니 와서 먹어요. "

가게의 여주인은 가난한 그 학생의 사정을 알고 만날 때마마다

불러서 이렇게 사과 하나씩을 주었다.

 

그 뒤 30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사과가게 여주인은 그 사이에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서 사과를 팔고 있었다.

 

어느 날 장교 한 사람이 그 사과가게를 찾아왔다.

"' 할머니, 사과 한개만 주세요. "

장교는 사과를 맛있게 먹으면서 말했다.

" 할머니, 이 사과 맛이 참 좋습니다. "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그 장교에게 앉으라고 의자를 권하였다.

" 군인 양반, 자랑 같지만 지금의 황제이신 나폴레옹 황제께서도

소년사관학교 시절에 우리 가게에서 가끔 사과를 사서 그렇게

맛있게 드셨지요. 벌써 30년이란 지난 이야기지만……."

 

" 내가 듣기로는 그 때 그 학생은 가난해서 늘 할머니께서 사과를

그냥 주셔서 얻어먹었다고 하던데요. "

 

이 말을 들은 할머니는 펄쩍 뛰면서

" 아니오, 그건 군인 양반이 잘못들은 거예요.

그때 그 학생은 받듯이 돈을 꼭 꼭 내고 사먹었지요.

한 번도 그냥 얻어먹은 일은 절대로 없었어요. "

 

할머니는 나폴레옹 황제가 소년 시절에 겪은 어려웠던 일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은 듯 이렇게 극구 부인하였다.

그러자 장교는 다시 물었다.

 

"할머니는 지금도 황제의 소년시절 얼굴을 기억하십니까? "

할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옆으로 저으면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난했던 그 학생에게 동정을 베풀던 옛날의 추억을 더듬는 듯 했다.

 

그런데 이때 장교는 갑자기 먹든 사과를 의자에 놓고 일어나

할머니 손을 두 손으로 꽉 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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