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인걷기모금운동

백만인걷기모금운동 회고( 73~79 이운동 준비위원장, 권오득 교수)

양곡(陽谷) 2008. 4. 18. 22:18
 

이 모금운동은 1973 년 3 월18 일 성남개발걷기운동( 이후는 백만인모금걷기운동으로 칭한다)이라는 프로그램명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공동모금운동 이었다. 이운동의 주관은 양친회한국지부( Foster Parents Plan)와 국제라이온스 309 지구, 그리고 동아일보의 후원하에 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자원봉사자들과 전문사회복지사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 했다

 

  이운동을 처음 소개한분은  양친회한국지부장 Mr. John G. Anderson이었다. 양친회는 카나다 걷기운동으로부터 1 만 5 천 달러를 기부 받아 성남에 사회복지관을 건축했다. 우리나라에서 걷기모금운동을 하여 그 복지관을 도와서 마무리 하자는 취지로 시작하게 되었다..당시 필자는 양친회한국지부 프로그램실장으로서 이 운동의 준비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백만인모금운동(Miles for Millions, 또는 Walkathon, 등으로 표시 한다)은 1965년 영국에서 젊은이들이 개발도상국의  불우한 아동들을 돕기 위하여 자신의 돈으로 돕기가 어려우나 그 대신 튼튼한 다리가 있어서 자기다리에 후원자를 주위에서 찾아 1 마일을 걷으면 얼마를 주겠다는 후원금을 확약 받아서 정해진 걷는 코스에 나와 걸으면서 확인을 받아 다시 후원자에게 가서 약속한 후원금을 받아 걷기운동본부에 입금하면 된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더 걷거나, 후원자를 많이 구하면 그만큼 후원금이 많아지게 된다. 그래서 자기 다리에 많은 후원자를 붙이면 걷는자의 다리가 비싸게 된다. 그리고 많이 걸으면 자기 건강상 지구력도 시험해볼 수도 있다. 보통 걷는 코스는 15 Km에서 40 Km 등 지역 실정에 맞게 정한다. 이때에 걷는자는 모금기관에서 보면 모금권유자가 된다. 그리고 걷는코스 길이가 길수록 많은 걷는자를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모금 행사장이 크게 된다. 걷는 코스에는 확인소가 있어서 얼마나 걸었다는 확인을 해주고, 기업체에서 음료수 와 과자를 나누어 주기도 하고 마지막 종착지점에는 걷는자들에게 위로행사를  주최 측이 마련하기도 한다. 당일 하루가 직장 팀으로 나와 도중에 식사를 하고 즐거운 단합대회도 한다. 따라서 행사당일은 축제분위기가 되기도 한다. 이 운동은 미국과 가나다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고,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전국적으로 변형된 걷기모금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필자는 최초걷기운동 이후 해마다 더 많은 사회복지기관. 단체를 회원으로 영입하여 연합모금(United Way-공동모금)형태로 발전 시켰다. 양친회가 주관하는 행사에서 15 개 사회복지기관들이 연합했다. 이 운동이 명실상부한 외국의 공동모금방법을 채택한 최초의 공동 모금형태였다. 그 당시 필자는 부산직할시 시장에게 걷기운동 방법을 브리핑한 일도 있고 전국적으로 보급했다. 이 운동으로 대구시에서는 어린이회관을 마련하기도 했다. 세계아동의 해를 기념하는 백만인모금걷기운동을 민.관이 공동으로 개최 한 바도 있다.


백만인모금걷기운동본부 조직은 1 년에 약 100여명의 각계각층의 순수자원봉사자들로 구성했다. 자원봉사자들은 본부장에서부터 각종위원회의 구성멤버를 말 하는데, 분석된 자료를 보면(성민선, 1979) 재계 22.8%, 사회단체 13.7%,학생 9.8%,사회사업가 9.6 %, 언론8.2 %, 양친회 6.1%, 의사 4.5%, 교수 4.1 %, 교사 3.3 %, 미8 군 3%, 기타 14.8 %로 구성되었다. 필자는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직장대표들과 걷는자들 중에서 준비위원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백만인걷기운동의 의의와 효과에 대해 나름대로 지적해 보면, 1) 걷는자는 땀을 흘리고 보

행을 하고 후원자는 땀을 성원함으로써 불행한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훌륭한 모금방법이다. 2) 시민 또는 주민들 스스로가 전체 지역사회의 문제해결에 자원으로, 그리고 그들의 노력은 수단으로 동원되고 조직화되고 있다.3) 하나의 목적 밑에 민간 각계가 연합노력을 더 조직적인 사회복지활동에 참여하는 바람직한 운동 이었다.4) 외원기관에서 상당액 맡아왔던 사회복지재원을 국내인들이 자연스럽게 부담할 기회가 되었다. 5)  참여자들이 정부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사회복지에 대한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함께 나누었다.

6)  사회부조 또는 사회봉사에 대한 좋은 사회교육이 되었다.7) 상부상조의 미덕이 우리사회에 살아 있다는 믿음이 생기고 있다.8) 건전한 오락을 야외에서 즐기면서 신체적 단련과 지구력을 시험해보는 운동이다.


필자는 1977년 이 운동덕분에 미국 국무성초청으로 크리브랜드주립대와 크리브랜드 공동모금회에서 연구와 연수의 기회를 얻었고. 자비로 카나다와 일본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도 연수했고 그리고 필리핀에서 개최된 재 5 회 국제사회복지공동모금대회(1979)에 한국 대표단장으로서 이 운동과 모금활동을 소개하는 기조강연도 한바있다. 그 이후 직업은 공직에 있으면서 모금자원봉사자로  한평생 사회복지관련 모금운동과 모금기술연구를 동시에 하게 되었다. 현재는 대학에서 모금기술강의도 하고, 비영리모금기술연구회를 만들어 저술과 기술전파에 힘쓰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분과위윈회부위원장으로 활동 하고 있다., .

  백만인걷기운동본부는 사회단체로 복지부에 등록되어 있으나 지도력 부재로 활동은 하지 아니 하고 있어서 이 운동을 처음부터 약 6 년간 주도한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그러나 최근 중앙일보사가  후원하고 몇 개 기관이 연합하여 옛날의 백만인모금걷기운동을 다시 한번 회생시켜 보겠다고 다문화가족을 위한 백만인걷기모금축제(대회장 최불암)가 5 월 17일 개최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필자도 참여하여 힘을 보태고자 한다. ( Social Worker ,한국사회복지사협회 기관지,2008.5)



사본 - 2[2]-Walk 연찬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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