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일본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다. 이 책은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올바른 의사가 되기까지 정신병자들에 대한 편견을 부수기 위해 싸운 과정을 적어놓은 책이다. 출판사는 예영 커뮤니케이션에서 출판되었다. 이 책을 잃고 소외받는 정신병자들에 대한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1. 푸코의 사상과 정신병원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났던 것은 푸코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가 그의 책들에서 지적한 것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푸코는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인간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통제하는 기술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가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인간을 권력이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하는 문제에 천착해서 역사를 통해 그 변천을 살핀다. 에를들어 중세시대의 절대왕정 아래에서 모든 권력은 왕에게 집중되어있기 때문에, 왕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에게 단호하였다. 끓는 물로 고문하기, 말이 끌게 해서 사지를 절단하기, 단두대와 같이 전안하고 끔직한 형벌을 가하므로써 감히 도전하지 못하게 하였다. 중세시대에 통치 기술은 본보기였다.
그러나 근대 사회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증가하면서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모든 사회조직을 재구성해야 했고, 통치방법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었다.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유럽사회에서 푸코는 통치방법의 변화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공포스러운 본보기를 통해 범죄를 억제해 나가던 절대왕정체제에서, 상호감시를 통해 자발적으로 체제에 순응하도록 하는 근대적 방법으로의 변화이다.
푸코의 저서 [감시와 처벌]의 부제가 감옥의 탄생이다. 감옥을 통해 근대 사회에서의 통치 기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감옥은 감시와 처벌이라는 두 가지 방법으로 범법자들을 외부세계와 차단시켜서 엄격한 통제하는 곳이 되었다. 푸코는 이런 감시와 처벌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체제를 '감금사회/조직'라고 하였다.
감금사회의 대표적인 예는 교도소뿐 아니라 정신병원, 군대를 들 수 있다. 이들 조직의 목적은 내부 구성원들의 행동을 최대한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감시와 처벌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감시와 처벌이 근대 사회를 저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사회적 장치라고 푸코는 말한다. 현대 사회의 대부분의 통제는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모든 회사에서 높은 계급은 항상 부하직원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는데, 그 이유는 한 눈에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봉건시대만 하더라도 정신병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정신병원이나 교도소가 생긴 것은 18세기 들어서지만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100년 뒤였는데, 둘 다 'Hospital'을 모델로 한 것이다. 당시의 하스피톨은 지금의 용어와는 다르다. 그 당시에 하스피톨은 부랑아, 심약자 정신병자들을 격리 수용하는 곳이다. 이것의 설립 목적은 수용자들로 하여금 재활할 수 있도록 최저의 임금을 지급하면서 강제노역을 시키는 것이었다.
저자 역시 구미정신병원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근대적 정신병원의 탄생에서 근대적이란 말은 근대적 의료 서비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정신질환자라는 국가의 골칫거리를 근대 의학의 이름으로 수용관리하게 됐다는 뜻에서 '근대적'이라고 한다.
2. 정신병원의 모습
이 책에서 보이는 정신병원의 모습이 바로 푸코가 말한 근대사회의 통제 기술의 발전이 이룩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정신병원은 대부분 격리하여 치료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있다. 정신병원에 격리된 환자들은 격리와 통제를 통해 그들을 치료한다고 생각한다.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정신병원에서 폐쇄병동을 운영하며, 광범위하게 쇠창살로 막고 통제하는 것은 모두 근대사회의 통제 기법인 감시와 처벌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신병자를 대하는 사회의 입장은 그들을 환자로 보기보다는 위험인물이나 사회에 해를 끼치려고 하는 자들이라고 여긴다.
이 책의 1부에서 보이는 참혹한 정신병원의 모습이 바로 이러한 통제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일본 역시 근대화하면서 서구의 병원의 개념을 받아들여 이룩한 정신병원의 모습은 치료보다는 감금과 폭력을 통한 통제 바로 그것이었다. 간호사들은 환자들에게는 왕같은 존재이며,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 가운데 치료는 불가능하고 오직 감시와 격리와 폭력만이 난무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1964년 마츠자와 병원에 간 저자가 본 것은 무엇일까? 다른 병원보다는 나았지만 그곳에서 그는 자물쇠를 통해 치료를 망치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 있는 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자물쇠는 그 자유를 빼앗는다. 환자들은 자물쇠 앞에서 순응하고 좌절한다. 환자들은 자물쇠와 쇠창살을 볼 때마다 괴롭고 힘들다. 저자는 자신이 그 안에서 치료자라기 보다는 감옥을 관리하는 형리로서의 모습이 더 크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병원에서 사용하는 치료기법은 생활요법인데, 이는 생활지도, 작업, 오락을 세 기둥으로 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활동을 말한다. 그런데 이 치료의 문제는 환자가 감금당한 상태에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3. 사람들의 의식
정신병자라는 말이 일반인들에게 가지게 하는 의미는 우선 위험하다는 것이다. 즉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생각이 우선 든다. 그래서 근대 사회에서부터 정신병자는 감금과 처벌이 정당화되었다. 프로이드 이후 정신의 문제를 보다 새로운 각도에서 탐구하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병은 귀신의 장난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각에서 정신분석은 발전하였지만 아직 정신분열증의 원인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프로이드 이후 새로운 정신의학의 발전으로 치료가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정신병자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병원에서 정신병동은 아직도 쇠창살과 자물쇠를 근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저자는 정신병자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위험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라이샤워 사건과 같은 우발적인 한 사건을 통해 정신병자를 모두 위험인물로 처리하여 감금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이 사건은 1965년 미국 대사를 한 정신병 한자가 칼로 지른 사건인데, 이 사건을 계기로 정신위생법이 개정되어 정신병자들을 가두어두는 데 열중한다. 이러한 모습은 정신병자는 모두 위험인물이며, 사회로부터 반드시 격리시켜야 한다는 국민적 함의가 깔려있다. 이런 보이지 않는 국민의 합의가 정신병자들을 치료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금시키는 것으로 만족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가 말하는 자유를 주어 지역에서 치료하자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즉 저자의 기본 생각은 다음과 같다.
"원내 활동으로 그들을 변화시켜 자립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들이 지금의 모습 그대로 사회생활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그 구체적인 조건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우리의 노력을 기울여 가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요청되고 있지 않은가"(p.106)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의 모습 그대로 그들이 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어 그것을 실천해 보는 것이다. 저자는 정신병자들을 있는 그대로 보아서 그들이 그 모습으로 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런 저자의 입장은 정신병자가 무슨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 감기 환자와 마찬가지로 몸의 한 부분이 아픈 사람일뿐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정신병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편견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4. '지역화'를 향하여
저자는 정신병원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라고 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병원들은 병실에서 환자를 줄이고 사회에 복귀시키에 노력하였다. 프랑스의 바자리아의 예를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정신병자를 가두는 대신에 해방과 자유를 주었다. 그의 사상은 "중요한 것은 환자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를 용인하고 수용하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바자리아는 병원을 없애고 지역에 복귀시킴으로서 감금과 자물쇠로 그들을 고칠 수 있다는 기존의 정신의료체계를 완전히 뒤엎었다. 그의 노력으로 이탈리아는 1980년 이후 정신병원의 입원을 금지시키는 법을 통과시킨다. 이제는 낡은 병원에 써있던 "자유는 곧 치료다"라는 구호가 바로 정신치료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였다.
반대로 이러한 운동에 실패한 국가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1970년대 존슨판결로 '치료없는 구금은 위법'이 되어, 전국 정신병원에서 탈입원화가 시도되었다. 그러나 지역에서의 수용상태가 전혀 되어있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진 탈입원화로 말미암아 길거리에 노숙자나 부랑아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미국 LA의 경우 3-4만명의 노숙자가 있는데, 그 가운데 약 60%가 정신병자와 약물중독자라고 한다. 이것은 복지분야에 투자가 인색한 미국의 복지정책의 부재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서구의 새로운 정신의료체계로의 전환은 18세기에서 20세기초까지 이루어진 정신병치료의 체계는 광기의 역사이다. 정신병자에 대한 두려움의 공포가 일반인들에게 넘치면서 단절과 격리로 이어졌다. 이러한 전통은 1960년대 새로 들어오면서 병원에서 지역으로 내보내서 치료하려는 탈입원화와 같은 일대 개혁이 이루어졌다.
이제 정신병의 치료는 숨기거나 가두는 것으로 그들을 치료할 수 없다. 그들을 단순히 가두어 두는 것은 그들이 아무 죄도 없는데 감옥에 보내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들은 사회에서 일반인과 함께 치료되고 보호되어야 할 존재이다.
5. 맺으면서
일본이나 우리 나라는 서구의 의학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정신병자를 대하는 방식 역시 그대로 답습하였다. 푸코의 말대로 감시와 처벌을 근간으로 하는 폭력적 체계안에서 정신병자는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버리고 쓸모 없는 사람들로, 그리고 사회에 필요 없는 존재로 인식되어 온 곳이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가 일본 사회의 정신병원의 의료 체계에 대해 아직 변하려면 멀고 힘들다고 했지만, 우리 사회는 더 힘든 것 같다. 법률체계도 일본과 유사하고, 대부분의 법들을 주로 일본에서 베끼는 한국의 관행으로 보아서 우리 나라의 정신보건법 역시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대의 정신병 치료가, 최인훈의 말처럼,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오게 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정신병자들은 우리와 격리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할 존재라는 것이다.
푸코의 말처럼 광기의 시대를 접고 이성의 시대에 들어서기를 갈망하는 우리는 이제 동떨어져서 외롭게 살아가는 정신병자들을 우리 사회 안으로 불러서,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며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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