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은 누구일까요?>
- 3 편 -
11. 한국 국사 교과서가 침묵하는 일본 패망 당시 일본의 군사력
당시 중국에 나가 있던 일본군을 관동군(关东军, 만리장성이 끝나는 山海关 동쪽에 주둔하다 쳐들어온 군대)이라 불렀는데 그 숫자가 많을 때 125만 명!!!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중국에 나가 있는 관동군(关东军) 병력을 동남아 남방전선으로 많이 빼돌렸을 때도 남은 관동군(关东军) 75만 명...!!!
그 외에 만주국군이 40만 명! 그러니 중국 땅에 남아 있던 일본군은 100만이 넘었습니다!
그 정도가 일본군 주력이 아니었습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은 항공 모함이 10여 척! 세계 최대의 전함 야마토함이 있었습니다!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할 때 함공모함에 싣고 다니는 함재기는 미군보다 많았습니다. 그 외에 각종 항공기, 탱크, 대포, 기관총, 차량들, 통신장비... 반자이!(만세!)"를 외치며 돌격하는 잘 훈련된 보병들... 무엇보다 일본 본토에 있는 일본군은 200만이 훨씬 넘었습니다.
12. 국사 교과서의 함정
그런 판국에 수백 명 광복군이 이 수백만 일본군을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고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헛소리!
이런 객관적인 사실을 한국 국사교과서에서는 전혀 말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침묵합니다. 소름 끼치는 침묵입니다
국사 교과서에는 누구 누구가 무슨 무슨 독립운동했다는 영웅전 내용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반일 감정과 독립운동에 대한 끓어오르는 찬양감정으로 충만한 책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에게 독립이라는 결과물을 안겨다 준 가장 큰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그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감춘 책이 되었습니다.
미국이 이 나라 독립에 가장 큰 역할을 해주었고 태평양전쟁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일제를 멸망시켰다는 사실에 침묵합니다. 광복군이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오로지 외국의 힘으로 광복을 맞이했다는 그 중요한 사실에 침묵합니다. 일본의 패망 소식에 임시정부 김구가 기뻐하지 못하고 미래애 대한 불안감에 탄식했던 내용이 백범일지에는 나오는데 국사책은 침묵합니다.
13. 중일전쟁 당시 중국의 형편
한 편, 당시 중국은 어떠했나요? 장졔스(张介石)의 국민당 군대도 일본 관동군(关东军)을 몰아낼 힘이 없었습니다. 일본 관동군(关东军)이 쳐들어오면 베이징을 내주고 샹하이를 내주고 난징을 내주고 늘 쫓겨다니던 형국이었습니다.
장졔스(张介石)의 국민당 중앙군(中央军)이 서류상으로 400만 대군, 실제로 170만 대군이었다고는 하나 그 무장과 훈련 상태는 일본 관동군(关东军)의 적수가 못 되었습니다. 장졔스(张介石)에게 강력한 힘이 있었다면 당장에 관동군(关东军)을 궤멸시키고 만주군도 격파했겠지만 전력을 비교해보면 머리 숫자만 많았지 무기에 있어서 훈련에 있어서 일본 관동군(关东军)이 훨씬 우위에 있었지요.
마오저똥(毛泽东)이 이끌던 홍군(红军)은 장졔스(张介石)에게 쫓겨 서북쪽 옌안(延安)까지 대패주의 길을 떠난 신세였으니 더 말할 것도 없던 형편이었습니다. 도망 가는 동안 출발할 때 10만의 병력은 7천으로 줄었고 그 과정에서 대부분은 죽거나 탈영했습니다...!!! 그 무슨 힘이 있어 일본군을 대적한단 말인가요?
14. 마오져똥(毛泽东)의 숨통을 열어준 일본군
일본군이 옌안(延安)까지 도망가서 다 망해가고 있는 마오(毛)를 살려준 사건이 바로 1937년 7월 7일 '루고우치아오(노구교, 卢沟桥) 사건'으로 촉발된 중일전쟁(1937~1945)이었습니다.
만주를 집어 삼킨 일본은 가면 갈수록 중원 침략 의도를 드러내었고 그러자 중국 내에서는 반공(反共)보다는 항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사람들은 "中国人不打中国人(쫑궈런 뿌다 쫑궈런, 중국인은 중국인을 공격하지 않는다)"을 외쳤습니다.
그러자 장졔스의 군대 내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니 바로 1936년 12월 12일 밤에 일어난 시안사변(西安事变)이었습니다.
반란군의 수장인 장쉐량(张学良)은 장졔스(张介石)를 감금시키고 국공합작(国共合作)을 거듭 건의함으로 국민당과 공산당이 서로 합작(国共合作)하여 일본군과 싸우는 길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시안사변(西安事变) 직전에 장졔스의 군대는 옌안(延安)을 완전히 포위 정벌하려고 계획했으나 시안사변(西安事变, 1936년 12월)에 이어 중일전쟁(1937년 7월 7일)이 본격적으로 터지고 어쩔 수 없이 국공합작(国共合作, 1937)이 이루어지고 옌안(延安) 정벌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지요. 일본이 의도치 않게 마오져똥(毛泽东)을 살려준 셈이 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일본군은 절묘한 타이밍에 여러 차례 마오져똥(毛泽东)을 장졔스의 손에서 구해주었습니다!
마오(毛)는 이 사실을 놓고 훗날 일본에 매우 감사하단 표시를 했었지요.
중국 공산당의 항일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일본군의 절묘한 침략 타이밍이 장졔스의 발목을 잡아 여러 차례 의도치 않게 마오져똥(毛泽东)을 살려준 사실과 그리고 마오져똥(毛泽东)은 일본군을 향하여 단 한 발의 총도 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15. 국공합작(国共合作)과 '백단전투(百团大战)로도 일본군을 몰아낼 수 없었다.
이에 장졔스의 국민당군과 마오져동의 홍군(红军)이 힘을 합친 후 '백단전투(百团大战, 1940년 8월 20일~ 1941년 1월 24일)'가 벌어졌습니다. 무려 5개월 동안 계속되었던 이 전투는 중국의 항일전쟁에서 가장 큰 전투였지요. 백 개의 군부대가 동원된 전투였다는 의미에서 '백단전투(百团大战)'라고 부릅니다.
이 '백단전투(百团大战)'에서 마오(毛)의 휘하 장군 펑더화이(彭德怀)가 병력을 몰고나가 일본 관동군(关东军)과 대판 싸우자 마오져똥(毛泽东)은 격노했습니다! 훗날 장졔스와(张介石)의 한 판 승부를 염두에 두고 있는 상태에서 병력 손실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지요.
이 '백단전투(百团大战)'에서도 쌍방간 비슷하게 전사상자 약 25,000 명 씩을 냈을 뿐(백단전투의 전과에 대한 중국의 통계와 일본의 통계는 서로 완전히 다르다) 중국군은 일본 관동군을 전혀 몰아내지 못했습니다.
16. 대부분 한국인과 중국인 지식인들도 모르는 사실
필자가 중국에 13년 살면서 중국인 대학교수 대학생 지식인들에게 여러 번 질문했었습니다.
"누가 중국을 일본의 침략에서 구해냈습니까?"
그러면 중국인들 대부분은 "마오져똥"이라 대답합니다. 때로는 "장졔스 군대와 마오져똥 군대가 합작해서 일본군을 몰아냈다"고도 대답합니다.
그러면 필자는 짖궂게 또 물어봅니다. 중국 역사상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해하(垓下)의 일전'에서 항우를 물리쳤고 제갈량은 '적벽(赤壁)대전'에서 조조의 군대를 궤멸시켰다는데 장졔스와 마오져똥의 군대가 어느 전투에서 일본군을 물리쳤더니 일본군이 물러가던가요?
....
....
....!!!
그러면 아무도 대답을 못합니다! 그리고 상당히 당황합니다.
왜냐? 중국군이 일본군을 물리친 전투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필자의 질문을 통해서 그들이 TV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막연하게 알고 있는 항일전쟁에 관한 전설이 사실상 세뇌교육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었기에 당황하였으리라 생각됩니다.
하물며 불과 수백 명에 불과한 광복군이 아니던가요? 그것도 중국 국민당 군대에 예속된 이 군대를 가지고서 일본군과 단 한 차례도 전투를 치른 적이 없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아니던가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독립을 얻을 수 있었단 말입니까?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관동군과 싸우면 늘 밀리던 중국이 어떻게 일본군의 군화발 밑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요?
17. 한국과 중국역사의 은인 미군! 더글라스 맥아더!
진주만 폭격, 미드웨이 해전, 산호초 해전, 솔로몬 제도 전투, 필리핀 전투, 이오지마 전투, 오키나와 전투... 태평양전쟁의 그 전투들 가운데 미군 196,543 명이 전사 및 실종되었고 240,000여 명이 부상, 민간인 16,000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반면, 한국 광복군은 단 한 차례의 전투도 없었고 단 한 명도 전사하지 않았습니다!
그 미군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중화인민공화국도 없고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없습니다!
또 한편 1차대전의 명장이요 2차대전의 명장인 더글라스 맥아더를 평생 친구로 두었던 이승만이 없었다면 이 나라 대한민국의 독립은 없습니다.
섬나라 일본이 조선과 만주를 잡아먹고 중국을 쳐들어간 후에는 장차 반드시 태평양을 건너와 미국과 전쟁을 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담은 책 <Japan insideout>을 쓴 이승만, 그가 없었으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결단코 없습니다.
18. 감정으로 충만한 역사책
이제 와서 이런 진실을 덮어버리는 순 엉터리 국사 교과서...!!! 이 엉터리 책에는 반일감정으로 충만하고 독립운동가 찬양하는 감정으로 충만해서 누가 독립운동했네~ 누가 독립운동 했네~ 그런 내용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그래서 그 독립운동으로 대한민국이 독립했는가요? 누가 독립운동을 했더니 일본군이 물러가던가요? 김구가? 이범석이? 김원봉이? 김일성이? 홍범도가?
1919년 기미년에 3.1 전국에서 만세 운동 일어나니 일본군이 물러가던가요?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오히로부미를 암살하니 일본군이 물러가던가요? 만주 땅의 깊숙한 골짜기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물리치니 일본군이 물러가던가요? 윤봉길 의사가 샹하이 홍코우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 던져서 일본군 장성들 팔 다리 떨어져 나가니 일본군이 물러가던가요? 김성주가 보천보 파출소 습격했더니 일본군대가 물러가던가요?
심지어 어떤 주사파 좌파들은 말하기를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랍니다.
아니? 소련이 일본군과 무슨 전투를 얼마나 별였단 말인가요? 원자폭탄 터지고 전쟁 다 끝나가는 마당에 선전포고하고 나타나 이삭 주워 먹었지요...!!!
국사 교과서에는 이승만의 책 <Japan insideout>과 이 책이 몰고 온 파장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나라는 이 책 한 권으로 독립을 얻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것이 fact입니다!
역사책은 이념에 치우치고 감정에 충만한 책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역사책이 소설책을 면하려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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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임시정부 의정원(국회에 해당함) 의원들 1942년 모습
사진 2. 일본항공 모함 아카기
사진 3. 일본 항공모함 류조, 일본은 태평양전쟁 당시 10여 척의 항공모함이 있었고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항공모함이 없습니다.
사진 4. 시안사변( 西安事变)을 일으킨 장쉐량(张学良)과 국민당 중앙군 총사령관 장제스(张介石). 시안사변으로 국공합작이 맺어지고 중국 내부 사정은 더욱 복잡하게 굴러갔습니다.
사진 5. 시안사변(西安事变)이 일어났던 현장은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사진 6. 시안사변(西安事变)을 일으킨 장쉐량(张学良). 그는 청나라가 망하자 동북 호랑이라 불리우던 동북 군벌 장쭤린(张作霖)의 아들입니다. 아버지 장쭤린(张作霖)이 일본군에 의해서 죽었기에 일본에 한이 맺힌 사람이 장쉐량(张学良)입니다.
사진 7. 항일전쟁 최대의 전투였던 백단대전. 항일전쟁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메뉴입니다.
사진 8. 백단전투에서 치열하게 싸웠지만 일본군을 몰아낼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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