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한평생 시 / 반칠환

양곡(陽谷) 2024. 6. 18. 18:48

멋있는 시 한편 퍼 날랐습니다.

한평생    
                시 / 반칠환

요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 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칠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도 있었고 지음도 있었다."  

꼬박 이레 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 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

칠십 넘게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미뤄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뤄두고
모든 좋은 일은  
좋은 날 오면 하고 미뤘더니,
가뿐 숨만 남았구나."

그 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 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평생이다!"

**********************

재미있고 해학적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큰 詩다.  

하루를 살았건 천 년을 살았건  
한평생이다.  

하루살이는  
시궁창에서 태어나  
하루를 살았지만  
제 몫을 다하고 갔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간다고 외쳤다니,  
그 삶은 즐겁고 행복한  
삶이었을 것이다.

매미는 7년을 넘게  
땅 속에서 굼벵이로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7일을 살고 가지만  
득음도 있었고 지음도 있었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인간은 음을 알고  
이해하는데 10년은 걸리고  
소리를 얻어 자유자재로  
노래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자면  
한평생도 부족하다는데,  
매미는 짧은 生에서 다 이루었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사람은  
기쁘거나 즐거운 일이 있어도  
즐기지 못하고  
모두 다음으로 미룬다.
  
모든 좋은 일은  
좋은 날이 오면 하고 미뤘더니  
가뿐 숨만 남았다니  
이 얼마나 허망하고 황당한 일인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맹목적으로 허둥대며 살다가  

후회만 남기고 가는 게  
우리네 인생인가보다.

천 년을 산 거북이는  
모든 걸 달관한 듯  
세상에 바쁜 일이 없어 보인다.

느릿느릿 걸어도  
제 갈 길 다 가고  
제 할 일 다 하며  
건강까지 지키니  
천 년을 사나 보다.  

그러니까  
하루를 살던 천 년을 살던  
허긴 모두가 일평생이다.

이 詩에서 보면  

하루살이는 하루살이대로  
매미는 매미대로  
거북이는 거북이답게  
모두가 후회 없는 삶인데  
유독 인간만이  
후회를 남기는 것 같다.  

사람이 죽은 뒤 무덤에 가보면  
껄 껄 껄 하는 소리가 난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웃는 소리가 아니라  
좀 더 사랑할 껄
좀 더 즐길 껄
좀 더 베풀며 살 껄
이렇게 껄껄껄 하면서  
후회를 한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일인가.  

일면,  
재미있어 보이는 이 詩가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과  
깨달음을 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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