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한 사람
외국의 한 잡지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幸福)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주제(主題)로 조사를 했습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의견을 모아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순위(順位)를 매겼습니다.
4위는 위독한 환자의 수술에 성공하여 생명을 살려낸 의사였습니다.
3위는 섬세한 공예품을 세심하게 완성하고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부는 목공이었습니다.
2위는 아기를 깨끗하게 목욕시키고 몸에 분을 발라주며 웃는 어머니였습니다.
그리고 대망(待望)의 1위는 모래성을 막 완성(完成)한 어린아이였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 보람 있는 일에 열중(熱中)하고 해냈을 때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렇듯 행복(幸福)은 마음의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보람을 느끼는 것에 열정(熱情)을 쏟는 사람은 더없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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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은
손녀 하나만 바라보고
그녀를양육하며,일생을 살아온 90세의 미국 인 할아버지의
이야기 이다.
아들과 며느리는 이혼 하고 아들과 손녀 셋이서 단란하게 살았 는데 아들이 먼저 하늘 나라로 가면서 어린 손녀를 할아버지 혼자 양육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늘 건강하시던 할아버지가 최근들어 옆구리를 잡고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며 왜 그러시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할아버지가 20대에 6.25 한국 전쟁에 파병이 되어 중공군과 싸우다가 옆구리에 총을 맞아서 당시 의술로는 그냥 총알을 몸에 지닌채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사의 권유로 지금까지 그냥 지내 오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이가 들고 면연력이 약해지니 그로 인한 여러가지 몸의 상태가 안 좋으시다는 말씀을 들은 손녀는 수술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미국 병원비는 아마 집한채 값을 들여야 할 것 같아 마음 뿐이었지 어찌 할 수가 없었 습니다.
한국은 의술도 좋고 병원비가 저렴하다는 소문을 들은 손녀는 할아버지가 평생 자신을 위해 희생하신 것에 보답하기 위해서 치료를 해 드려야겠다 는 결심을 하고 할아버지를 모시고 한국으로 왔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고 모든 검사를 마친 후 담당 의사는 "몸에 총알을 담고 어찌 지금까지 사셨습니까?"하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로 중공군과 싸울 때 얻은 훈장이라고 설명을 하자 담당 의사가
"저희 할아버지도 6.25참전 용사셨는데 총을 맞고 후송이 되었지만 결국 열악한 의료 시설과 낙후한 의술 때문에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의사가 되시려고 생각하셨지만 가난한 살림으로 의학공부를 할 수 없어서 아들인 제가 의사가되었다."
는 이야기를 하며
"염증이 생겨 그냥 두면 안되는상황인데 잘 오셨다."고 말하며 "저희 할아버지와 같은 참전 용사를 수술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수술이 순조롭게 끝 나고 회복한 후에 건강한 모습으로 완쾌 되어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원을 위해 수속을 준비하면서 그 손녀는 치료비가 어마어마 하게 많이 나왔을 것 이라 예상을 했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계산을 하러 창구로 갔는데 수납 창구에서 봉투 하나를 내어 주었습니다.
"얼마일까?"하며 봉투 를 열어보니 계산서엔
"진료비 0원"에 미화 $1,000이 들어있었 습니다.
동봉한 작은 쪽지에는 "당신이 흘린 피로 지켜진 우리나라의 자유는 영원할 것 입니다. 귀국하시거든 여생을 편안하게 오래 오래 사십시요"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이게 무슨일이냐?"고 물으니 병원측과 담당 의사가 치료비를 모두 부담 하였다는 것 이었습니다.
깜작 놀란 손녀는 집도의사를 찾았지만 의사는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퇴원하여 미국으로 귀국길에 할아버지는,
"전쟁 당시에도 한국 군인들은 듬직하였고 정이 많은 병사들이 었다.
한국이 놀랍도록 발전 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로 발전 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산(山)은 붉은 흙과 돌들 뿐이었고 참으로 가난한 나라였었는데,
울창한 산림과 빌딩 숲을보니 내가 한국의 자유를 위해 싸운 보람이 있다." 고 말씀을 하시며 기쁜 마음으로 미국으로 돌아 가셨다고 합니다.
국격을높인 젊은의사! 그에게 박수를 보냅 니다.
얼굴도 모르고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르는 우리나라를위해 15만 여명의 연합군이 죽거나 다치거나 또 실종되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 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평화가 있었을까요?
미국의 수도 워싱턴 의사당앞 한국공원엔 한국전에서 전사한 50,000명의 미군들 명단과 공원 바닥에 쓰여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문구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 다)"
(받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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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Going home)
누군가 주변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축복받고 감사한 일이지요.
뉴욕에서 플로리다 해변으로 가는 버스에 활달한 세쌍의 젊은 남녀가 탓습니다.
승객이 모두 타자 버스는 곧 바로 출발했습니다. 세쌍의 남녀들은 여행의 기분에 취해 한참을 떠들고 웃어 대다가 시간이 지나자 점점 조용해졌습니다.
그들 앞자리에 한 사내가 돌부처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무거운 침묵, 수염이 덥수룩한 표정 없는 얼굴…
젊은이들은 그 사내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누구일까? 배를 타던 선장?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퇴역 군인?
일행 중 한 여자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을 붙였 습니다.
그에게는 깊은 우수의 그림자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포도주 좀 드시겠어요?" "고맙소."
그는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 습니다.
그리곤 다시 무거운 침묵...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침이 되었습니다.
버스는 휴게소에 섰고 어젯밤 말을 붙였던 여자가 그 사내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는 수줍은 표정을 보이면서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고 젊은 여자는 그의 옆자리에 가 앉았습니다.
얼마 후 사내는 여자의 집요한 관심에 항복했다는 듯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빙고'였으며 지난 4년 동안 뉴욕의 교도소에서 징역살이하고 이제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소. "나는 부끄러운 죄를 짓고 오랜 시간 집에 돌아갈 수 없으니 만약 나를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되거나 혼자 사는 것이 고생된다고 생각되거든 나를 잊어 달라고 했소". 재혼해도 좋다고 했소.
편지를 안 해도 좋다고 했소.
그 뒤로 아내는 편지하지 않았소. 3년 반 동안이나…
석방을 앞두고 아내에게 다시 편지를 썼소.
우리가 살던 마을 어귀에 커다란 참나무 한 그루가 있소.
나는 편지에서 만일 나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 있다면 그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달아달라고 말했소.
만일 아내가 재혼했거나 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손수건을 달아놓지 마세요.
그러면 나는 그냥 버스를 타고 어디로든 가버릴 거요."
그의 얼굴이 그렇게 굳어져 있었던 것은 '거의 4년간이나 소식이 끊긴 아내가 자기를 받아줄 것인가? '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그 여자는 물론이고 그녀의 일행들도 이제 잠시후에 전개될 광경에 대해 궁금해하며 가슴을 조이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른 승객들에게도 전해져 버스 안은 설렘과 긴장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빙고는 흥분한 표정을 보이거나 창밖을 내다보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굳어진 얼굴에서 깊은 긴장감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마치 그는 이제 곧 눈앞에 나타날 실망의 순간을 대비하며 마음속으로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을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 졌습니다. 20마일, 15마일, 10마일...
물을 끼얹은 듯 버스 안은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만이 꿈결에서처럼 아스라하게 일정한 리듬으로 고막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승객들은 모두 창가로 몰려가 숨을 죽이고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버스가 마을을 향해 산모퉁이를 돌았습니다. 바로 그때
'와~~~!!!' 젊은이들의 함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습니다. 버스 승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얼싸 안았습니다.
참나무는 온통 노란 손수건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20개, 30개...
아니 수백 개의 노란 손수건이 물결치고 있었습니다.혹시라도 남편이 손수건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까봐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참나무를 온통 노란 손수건으로 장식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침묵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빙고 한사람뿐 ... 그는 넋잃은 사람처럼 자리에 멍하니 앉아 차창밖의 참나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이윽고 빙고는 자리에서 일어 났습니다.
그 나이든 전과자는 승객들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버스 앞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인 피트 하밀이 뉴욕포스트에 게재한 'Going home' 이란 제목의 글입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1973년
Tony Olando & Dawn이 만든 노래 '오래된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를 기록하면서 모두가 기억하는 감동 스토리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노란 손수건은"용서와 포용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용서해 주고 고달픈 세월을 마다하지 않고 남편을 기다려준 아내의 지극한 사랑입니다...
I'm coming home, I've done my time.(나 형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If you still want me.(당신이 아직도 나를 원한다면)
Tie a yellow ribbon around the old oak tree.(그 오래된 참나무에 노란 리본 을 달아주세요.)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9.11 사건의 피해자들이 마지막 순간에 남긴 메시지는 사업이나 회사의 프로 젝트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말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남긴 메시지는 하나같이 가족에게 남기는 사랑의 고백 이었습니다.
"여보, 난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을 다시 봤으면 좋겠어. 부디 애들하고 행복하게 살아."
많은 사람이 일에 치여 가족도 잊은듯 바쁘게 살아가지만 "목숨이 1분도 채 남아 있지 않을때는 결국 가족을 찾는다"는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 여보, 나의 아이들아!
그렇습니다. 인생의 가장 본질적인 보람은 일이나 성공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아무리 소중하고 가치가 있어도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소설가 신달자 씨가 어느 라디오 대담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9년간 시부모 병 시중하다가 24년 동안 남편 병 시중 했고, 끝내 남편은 그렇게 죽었습니다.
일생 도움이 되지 않는 남편인 줄로만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창밖에 비가와서
"어머! 비가 오네요."하고 뒤돌아보니
그 일상적인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제야 남편의 존재가 자기에게 무엇을 해 주어서가 아니라 그냥 존재함 그 자체만으로 고마운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가족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의 '家族'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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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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