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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세 어머에게 아들과의 통화 도청

양곡(陽谷) 2024. 3. 20. 18:41

♡♡오세호 친구와 모친♡♡
오늘도 어머님과 통화를 했다.
몇 년 전부터 매일 10분 정도 통화를 한다.
올해로 98세가 되셨다.
큰아들로서 직접 모시지 못하는 것이 죄송스럽기만 하다.
죄책감에 매일 통화를 하고 있고 최대한 찾아 뵈려 노력하고 있으나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다..

오늘은 100세 생신잔치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 이제 2년 후면 100세가 되시네요. 100세 축하 잔치를 하려고 해요. 장수상과 상금도 드리고~"
"내가 올해 몇 살인데? 100세까지 사는 게 쉽겠냐? 대한민국 전체에 몇 명 안될걸?"
"왜요. 우리나라에 100세 이상 인구가 1만명이 넘는대요.
엄마도 이제 정확히 1년 9개월 남았어요.
100세 잔치 때 한 말씀도 하셔야 할텐데 자신 있으시죠?"
"그럼 자신있지. 언제 태어나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 되는거 아냐?" 라고 하신다.

"그러면 제가 몇가지 질문을 할테니 대답해 보세요."

"언제 어디서 태어나셨나요?"
"1927년 황해도 벽성군 송림면 내동리에서 태어났지."
"부모님 이름을 기억하시나요?"
"당연하지. 내가 바보냐?
아버지는 이자 준자 재자, 어머니는 안자 이자 동자"
"형제는 어떻게 되시나요?"
"1남 5녀, 내가 셋째 딸이고"
"시아버지, 시어머니 이름도 기억하시나요?"
"글쎄... 시아버님은 오자 봉자 근자, 시어머님은 박자 상자 선자 같은데..."
(정확하시다 ㅎㅎ)

"아버지와 결혼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으신가요?"
"왜. 꽤 많았지.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함께 살며 극복해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겨냈어. 네 아버지는 좀 까다로운 분이었지만 남편으로서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어."
"ㅋㅋ 아닌데.. 내가 가끔 싸우는거 본 적도 있는데.. 바람을 피우시는 것도 같았고.."
"너희들은 잘 모른다. 부부의 일은 부부밖에 모르는거야."
"어때요. 애인 하나 얻어드릴까? ㅋㅋ"
"큰일 날 소리.. 뒷산에 계신 네 아버지가 가만히 계시겠니?"
"아버지는 바람도 피우셨는데?"
"그건 남자니까.. 여자는 남자와 다른 법이다."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떠나신지 26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조강지처로서의 자세를 지키고 계신다.

"시동생과 올케, 동서들에게 하실 말씀은 없나요?"
"모두 고맙지. 그만하면 좋은 시동생들이었지. 특히 네 작은 어머니(공주 숙모)는 참으로 좋은 사람이었다. 피난 나와서 전쟁을 겪으며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도 그랬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우리 둘 간 생각이 달랐던 적이 없었어."

"자식들에게는 어떤 말씀을 하실건가요?"
"모두 고맙다. 세 아들, 두 딸 모두 건강하게 자라 주었고 어른이 되어서 제 때 가정을 이루어 손주들 잘 기르며 남 부끄럽지 않게 살아들 줘서..."
"내가 이 나이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식들 덕분이지..
떠나면서도 결코 잊지 않을거야.
고맙고 또 고맙다."

"아참 꼭 당부할 것이 있다. 100세 때 기념 식사자리를 꼭 만들어야겠다면 잔치보다는 조촐한 식사 자리로 하는게 좋겠고, 절대로 참석자들에게 봉투를 받으면 안된다. 자칫 돈을 바라고 잔치를 한다는 오해를 줄 수 있으니..."
(참으로 대단하시다. 또 배운다.)

"2년 후 지금처럼 인사말씀을 하셔야 하니 가끔 연습을 하세요.
식사 잘하셔야 건강하실 수 있으니 꼭 세 끼 챙겨드시고~~
최대한 자주 내려갈께요."

통화를 마쳤다.
꽤 긴 통화였는데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으시고 점점 목소리가 또렷해지시는 것을 느꼈다.
말씀을 하실수록 에너지가 생기시는 모양이다.

더 자주 내려가야 한다.
형제자매들과 아예 어머님 찾아뵙는 날을 정해야겠다.

어머님!
지금처럼 건강 잘 지키셔서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셔주세요.
100세 잔치 때
"장수상"(구순잔치때 드렸던 "최고엄마상"처럼)과 함께 상금도 준비할께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