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각성기
오래된 나의 페친들은 내가 기본 요리와 쉬운 요리에 대한 부심이 있음을 다 아신다. 그중 김치 부심은 대단하고 5년이 넘었다. 하지만 열심히 만들었지만 맛있는 김치를 만들지 못하였다. 물론 평범한 주부들 정도는 만들지만 난 더 맛있는 김치를 원한다.
배추가 세일을 하면 한 박스 씩 (대충 11~13 포기) 사다 김치를 만드는데 이게 쉬운 일은 아니다. 썰고 절이는데 하루, 그리고 양념을 만들어 섞어 통에 넣는데 하루가 걸린다. 24시간 짜리 하루가 아니라 2~3 시간 짜리 하루다. 게을르고 피곤해서 천천히 한다.
정말 맛있는 김치를 만들기 위해 여러 방법을 써 보았다. 그리고 그 김치들을 먹으며 곰곰히 생각했다. 왜 실패하였을까? 알다시피 실패는 성공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김치는 두 단계가 아주 중요하다. 김치 절이기. 이걸 잘 해야 김치의 기본 맛이 난다. 절인 김치를 씹어 먹으며 '이것 만으로도 밥 한공기를 먹겠다' 정도가 되어야 한다. 두 번째, 김치 양념장 만들기. 이 관문을 잘 통과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다이아먼드가 되느냐, 돌덩이가 되느냐의 단계다. 알다시피 난 김치를 혼자서 배웠기에 질문할 스승이 없었기에 각성에 이르기 까지 시간이 걸린 것이다. 울 엄니는 내가 스승으로 모시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ㅠㅠ
그러다 이번 달 11월 초, 갑자기 난 김치 각성을 하였다. 내가 배추가 된 느낌이 들더니 절여져 소금이 배이는 것 부터 어떤 양념장이 들어와야 맛이 나는지 까지 .... 뚜르르르... 관통을 한 것이다. 소위 각성이란 것을 경험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만든 김치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고추 가루를 김치 고춧가루와 청양 고추의 10배나 맵다는 카이옌 고추 가루를 3 : 1의 비율로 넣었다는 것이다. 절이고 나니 얼얼하게 매웠다. 그때 '실패' 란 구름이 떠가는 걸 보았다. 하지만 어디선가 '아니다, 모른다. 기다려 봐라.' 라는 자상한 어머니의 말씀이 들렸다.
김치는 익으면서 풍미가 변한다는 그간의 경험에서 얻은 진리가 어머니의 목소리로 들려온 것이다.
역시 하늘나라에서 텔레파시로 보내 주신 울 엄니 말이 맞았다. 익고 나니 맵기는 덜해지고 아주 맛있는 매운 맛으로 변하였다.
추수감사절에 딸이 내려왔을 때 한 병을 싸서 보냈다. 캐리어에 넣어 비행기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간 이 김치가 인기였단다. 대학 친구들이 김치를 먹으러 딸이 지내는 아파트에 주말마다 왔단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끝낸 막내 딸이 모레 다시 올라간다. 이번에도 그 김치를 갖고 가겠다고 한다.
이제 김치 탐구의 긴 여행이 한 번의 각성으로 끝나가는 것 같다.
김치 루야 ~ !
혹은 김치 타불 ~ !
조금 전에는 작년 여름에 만든 묵은지로 김치 전을 만들었다. 사실 묵은 지와 묵은 깍두기다. 묵은 지는 씻어서 김치찌게나 전을 부치면 맛있는데, 묵은 깍두기는 별로다. 그래서 둘을 반반식 다져서 김치 전을 부쳤다. (전을 부칠 땐 튜나 깡통 하나 넣으면 맛이 배가 된다.)
고마워유, 엄니. 잘 지내시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