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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 박규은

양곡(陽谷) 2023. 11. 11. 22:59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의 <마의 산(Der Zauerberg)>이라는 소설을 2005년에 읽어 본 뒤, 나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 작가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소설 속 대화 내용이 좀 어려워서 무슨 말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스토리 자체도 그다지 재미있는 편이 아니어서), 그 후로는 그의 작품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토마스 만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페친 여러분들의 포스팅을 접하고서는 호기심이 생겨서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 (안삼환 외 옮김 / 민음사)」을 읽게 되었습니다.

위 세 작품 외에도 <마리오와 마술사>, <타락>, <행복에의 의지>, <키 작은 프리데만 씨>, <어릿광대> 등 총 8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헤르만 헤세나 밀란 쿤데라의 작품들에 비해서는 냉소적이거나 느슨함, 낭만적인 면 같은 게 덜한 것이, 뭔가 좀 빡빡하고 고통스럽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모두 주옥 같은 작품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토마스 만이 왜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헤르만 헤세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인지(독일 문학 전공한 친구로부터 그렇다는 얘기를 오래 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약간은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시민성'과 '예술성', 삶과 예술, 도덕과 관능 등의 대립 관계에 대해서 조금은 치열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예술가를 꿈꿔보기도 했던 저의 학창 시절(초딩 3학년 때 화가, 고2때 소설가)을 다소 느긋한 마음으로 되돌아 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파우스트 박사>도 읽어 보고, <마의 산>도 다시 읽어볼까 합니다.

- 넌 우울한 시 나부랭이를 보다가 네 밝은 눈을 흐리게 하거나 어리석은 꿈에 잠기게 해서는 안 된다. 너처럼 되고 싶구나! 다시 한 번 시작하여, 너처럼 올바르고 즐겁고 순박하게, 규칙과 질서에 맞게, 하느님과 세계의 동의를 얻으면서 자라나서, 악의없고 행복한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으면서 잉에보르크 홀름, 너를 아내로 삼고, 한스 한젠, 너와 같은 아들을 두고 싶구나! 인식해야 하고 창작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저주로부터 벗어나 평범한 행복 속에서 살고 사랑하고 찬미하고 싶구나! 다시 한 번 시작한다? 그러나 아무 소용도 없으리라. 다시 이렇게 되고 말 것이리라 - 모든 것이 지금까지와 똑같이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종류의 인간한테는 올바른 길이란 원래부터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들이 길을 헤매는 것은 필연이니까 말이다. (98~99쪽, <토니오 크뢰거>)

- 더 말 할 게 뭐가 있을까? - 그는 죽었다. 결혼식 다음날 아침에 죽었다. - 거의 신혼 첫날밤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죽음을 눌러놓을 수 있었던 것, 그것은 의지, 행복에의 의지, 오로지 그 힘 때문이 아니었을까? 행복에의 의지가 충족되었을 때 그는 투쟁도 저항도 할 수 없이 죽어야만 했다. 그는 더 이상 살아야 할 구실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가 잘못 행동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자기가 결혼한 그녀에게 의식적으로 나쁘게 행동한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그러나 나는 장례식에서 그녀가 관의 머리맡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도 역시 그에게서 발견했던 바로 그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거기에는 엄숙하면서도 강력한 진지함, 승리에 찬 진지함이 서려 있었다. (259쪽, <행복에의 의지>)